달력

42024  이전 다음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사진/한국'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9.12.21 설악산 대청봉 7

설악산 대청봉

사진/한국 2009. 12. 21. 16:06

설악산 대청봉을 다녀왔습니다. 전국의 기온이 영하 10도 안팎이었던 날, 대청봉에서 칼바람을 맞으며 자연앞에 한 없이 나약한 인간의 존재를 다시한번 깨닫고 왔습니다.


대청봉을 향해 3-4시간쯤 걸었을 때 어떤 아저씨께서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으시는 모습을 봤지요. 순간 '아! 디카라도 가져올걸...' 안타까워하며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을 꺼내들고 찍었습니다. 맨 왼쪽 끝에 보이는 봉우리가 대청봉이 아닌가 싶은데요. ^^;; 갈길이 너무 멀어 한숨만 푹푹 내쉬었죠.


사실 겨울 산행은 처음이었습니다. 몇년 전부터 산을 좋아하기 시작했고, 북한산, 월악산, 속리산부터 가까운 청계산, 운길산을 다녔죠. 이번에 새로산 아이젠을 끼고 산으로 올라가는데 뼛속까지 스며드는 바람을 정말 오랜만에 느꼈습니다. 장갑에서 손을 꺼내면 손이 얼어붙어서 핸드폰으로 사진을 오래 찍을 수가 없었습니다. 체감온도가 영하 30도는 넘었던 것 같습니다. 바람이 어찌나 매섭게 불던지, 정상을 향해 올라가면 갈수록 바람의 강도가 더 거세게 느껴졌습니다.


바람때문에 옆으로 자란 소나무, 번개를 맞고도 생명력을 잃지 않은 나무들을 보면서 모진 비바람과 눈보라를 이겨내는 자연에 고개를 숙였습니다. 바람에 흔들리고 꺾이지 않기 위해 더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리는 나무들 처럼, 긴 겨울을 이겨내는 그 나무들 처럼 그런 뿌리깊은 나무가 되어보고 싶었습니다.


여기는 끝청이네요. 해발 1610m에서 안내 표지판을 보는 순간 중청까지 40분, 대청까지 1시간 10분정도 더 가야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헬기라도 불러 타고 내려가고싶은 심정이었죠.


끝청에서 중청으로 가는 길에는 정 중앙에 보이는 작은 집같이 생긴 '중청대피소'를 발견하고는 기쁨의 함성을 질렀습니다. 오른쪽 끝에보이는 대청봉도 정말 감격적이었죠. 대청봉에 오르면 더 멋진 나무들이 있겠지, 지금까지 봤던 것보다 더 아름다운 자연이 펼쳐져있겠지 기대를하며 저 곳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중청대피소앞에서 셀카를 찍었습니다. 휴대폰이 안터져서 전화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뒤편으로는 속초시와 바다가 보였는데, 아쉽게도 이 사진을 찍고 베터리를 교체하느라 더 많은 사진을 담진 못했네요. 중청대피소에서 대청봉을 바라봤을 때는 정말 '평온' 그 자체였습니다. 이제 고생은 끝났구나 싶었는데, 역시 생각 처럼 쉽진 않았죠.


산 뒤에 펼쳐진 푸른 빛이 모두 동해바다 풍경입니다. 참 멋지죠. 중청에서 대청봉까지는 약 15분정도 걸렸습니다. 대청봉 정상에서 기념 사진을 찍으려고 올라갔으나 바람이너무 거세게 불어닥쳐 3번이나 넘어졌지요. 등에 진 짐이 그렇게 고마웠던 순간이 또있었을까요. 거센 바람이 등산복을 뚫고 온 몸을 파고드는데 바람 소리에 겁먹고, 바람 세기에 놀라서 쓰러지고 일어서고를 반복했습니다. 네발로 기다가 난간에 얇은 줄을 잡고 올라가는데 "여기서 바람에 휩쓸리면 떨어져 죽는다"는 생각 뿐이었죠. 마치 파도에 사람이 휩쓸려가듯 산에서는 거센 바람에 쓸려내려가겠더라고요. 결국 대청봉 앞에서 뜨거운 눈물을 마시고 내려와야했습니다. 사진요?... 휴대폰을 꺼낼 엄두도 못냈습니다. 내가 바위 뒤에숨어도 바람이 계속해서 나를 밀어내려하는데, '살아서 내려가야한다'는 생각 뿐이었죠. 정상에서 바위에 새겨진 '대청봉'이란 큰 글씨를 보는데,' 전설의 고향'을 보는 것 같은 공포가 밀려왔죠.


내려오는 길도 5-6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오후 4시쯤 해가 저물었고, 어두컴컴한 길을 손전등에 의지하며 내려왔지만 정말 귀한 경험이었습니다.
 
대청봉을 오르며 얻은 깨달음은 삶의 정상이라는 자리가 멀리서 보기에는 별거 아닌 것 같고, 쉬워보여도 막상 그 곳에 오르기 위해서는 정말 눈물나는 노력이 없으면 얻어지는 게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때론 내 삶에 주어지는 고통과 마음의 무거운 짐들이 위기와 어려움 속에서 나를 구해줄 수 있다는 생각에 감사하게 됐고요.

이번 산행에 함께했던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나무 숲 사이로 계단 밑에 아이젠을 거내고 있는 후배 '채희선양'도 고생 많았습니다.

Posted by mosquee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