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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인터뷰] 세계 최초 여성 우주인 「발렌티나 테레시코바」
『죽기 전에 꼭 한 번 화성에 가보고 싶어요. 돌아오지 못해도 상관없어요』

803일간 우주에 체류한 「세르게이 크리칼료프」
『무중력을 견디는 건 처음 간 사람이나 800일 머문 사람이나 똑같이 어려워』

임현주 경향신문 사회부 기자

한국 최초의 우주인 탄생
이소연씨와 러시아 우주인 세르게이 볼코프, 올레그 코노넨코(왼쪽부터).
  한국 최초 우주인 탄생을 현장에서 지켜봤다. 황량한 벌판에서 소유즈 TMA 12호가 하늘을 향해 용솟음칠 때 땅이 갈라질 듯이 움직이고 건물이 흔들렸지만 현장을 지켜보는 내 몸에는 더 큰 전율과 진동이 울려 퍼졌다. 사람이 표현할 수 있는 단어의 한계를 느꼈다. 경이로운 감동 그 자체였다. 47년 전 유리 가가린이 처음으로 有人 우주선 시대를 열었던 곳에서 대한민국의 딸 이소연(30)씨가 우주를 향한 첫발을 내디뎠다.
 
  8박9일간 모스크바-바이코누르-모스크바를 이동하면서 몸은 고되고 힘들었지만 가슴은 설레고 벅찼다. 비록 러시아 우주선을 타고 우주 시대를 열 수밖에 없는 처지지만, 이번 계기를 통해서 한국 항공우주 분야가 몇 단계 성장하게 될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학창 시절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7년 넘게 생활했던 덕분에 현장에서 만나는 러시아 취재원 모두 고향 사람을 만나는 것 같았다. 문을 두드리면 반드시 해답을 얻는 방법이 생겼다. 러시아에서 사용했던 「한나」라는 이름을 친근하게 불러 줬던 세계 최초 여성 우주인 발렌티나 테레시코바(72)를 비롯한 러시아 우주항공 관계자들로부터 흥미진진한 우주 체험담을 들을 수 있었다.
 
 
  비밀 군사기지 바이코누르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이소연씨를 우주로 데려갈 로켓이 대기하고 있다.
  모스크바 남동쪽 210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바이코누르는 「갈색대지」라는 뜻으로 북위 62.7도, 동경 40.3도에 위치해 있다. 카자흐스탄 영토지만 러시아가 2050년까지 매년 1억5000만 달러를 지불하고 임대했다.
 
  카자흐스탄 직항을 이용해서는 바이코누르 우주기지로 갈 수 없다. 러시아 모스크바를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었다. 비밀 군사기지이기 때문에 지도에는 바이코누르가 존재하지 않는다.
 
  서울시 면적의 11배쯤 되는 바이코누르는 舊소련 시절 1955년 우주선 발사를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도시다. 이곳에서 1957년 10월4일 세계 최초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했고, 1961년 4월12일 인류 최초로 인간을 태운 보스토크號(호)를 발사했다. 적도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라 로켓을 쏘는데 연료를 절약할 수 있고, 사막지역이라 사고가 발생해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로켓 발사를 위한 9개 발사단지에서 15개 발사대로 구성되어 있다.
 
  지난 4월7일 모스크바 브누코바 3번째 공항에서 전세기를 타고 3시간쯤 날아 바이코누르 크라이니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 창문 밖으로 사막같이 황량한 벌판이 펼쳐졌다. 서부영화를 찍는 배경으로 적합한 장소 같았다. 전세기에서 내리자마자 하나같이 경직된 자세로 무표정한 러시아 군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저기, 저 앞에 있는 버스를 타세요. 안 그러면 이 공항 밖을 빠져나갈 수 없습니다』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마치 총이라도 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투였다.
 
  바이코누르에 도착하자마자 이소연씨 인터뷰가 예정되어 있어서 바로 「코스모나프트 호텔(우주인 호텔)」로 이동해야 하는데, 버스는 떠날 기미를 안 보였다. 버스 운전기사에게 다가가서 『호텔로 빨리 이동하자』고 했더니, 『우주선 발사대로 이동하기로 정해져서 호텔로 갈 수 없다』고 했다.
 
  서울에서 9시간 동안 비행기 타고 모스크바를 거쳐 바이코누르까지 힘들게 왔고, 발사 전 우주인 인터뷰를 꼭 해야 한다는 생각에 버스에서 내려서 러시아 관계자와 한참 실랑이를 벌였다. 잠시 후 『작은 봉고차에 언론인 7명을 태우고 먼저 출발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20명이 넘는 기자단 중에서 방송 4명, 신문 3명이 봉고차에 올라탔다.
 
 
  이소연씨와 전화 인터뷰
 
인천공항에서 출발을 기다리고 있는 이소연씨의 아버지 이길수씨, 어머니 정금순씨.
  공항 밖으로 빠져나가는 길은 우리나라 시골 비탈길보다 도로 상황이 나빴다. 30분쯤 이동해서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예정됐던 이소연씨 인터뷰 약속시간보다 2시간 가까이 늦게 도착했기 때문에 이씨를 바로 만날 수는 없었다. 러시아 관계자들은 전화 인터뷰만 허락하겠다면서 연락처를 줬고, 다른 질문에는 전혀 답을 하지 않았다.
 
  이소연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목소리가 씩씩하고 밝았다.
 
  『아직 실감이 잘 안 나요. 컨디션 조절하면서 발사 준비하고 있어요. 저 혼자 우주에 가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이 모두 함께 우주로 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돌아올게요. 이제 영화를 봐야 해서 전화를 끊어야 해요. 죄송합니다」
 
  러시아에서 우주로 향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막 위의 흰 태양」이라는 영화를 본다. 이소연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막 위의 흰 태양」은 1970년대 러시아式 서부 영화로 우주인들이 발사 하루 전날 이 영화를 보면서 불안하고 떨리는 마음을 버리고 자신감을 얻는다고 한다.
 
  주인공 타바리쉬(동무) 수호프는 「赤軍(적군·소련군)을 이끌고 사막 위에서 힘겹게 싸움을 하다가 마지막에 결국 진정한 승리를 맛본다는 내용이다.
 
  영화가 끝날 무렵 이소연씨 인터뷰가 다시 잡혔다가 또 취소됐다. 러시아 측이 모든 일정과 계획을 무시하고 일방적인 통보와 시간 변경을 하는 것을 보고 당황스러웠다. 이날 이소연씨를 만나지 못하면 우주에서 돌아올 때까지 인터뷰가 불가능했다.
 
  항공우주연구원 측에서 러시아 관계자를 설득한 끝에 10분간 인터뷰를 허락받았다. 이소연씨가 「가족이 너무 보고 싶다」고 면담을 요구해서, 이소연씨 가족과 함께 인터뷰실로 들어갔다. 러시아 관계자는 우주인에게 감기나 다른 바이러스를 옮길 수 없도록 유리창 사이로 마이크를 들고 대화할 것을 당부했다.
 
 
  『저 혼자 가는 게 아니에요』
 
유리를 사이에 두고 한국 언론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이소연씨.
  ―이소연씨, 떨리지 않으세요. 우주로 가기 전에 국민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남북한 국민 7000만 명의 눈을 갖고 우주로 간다고 생각합니다. 저 혼자 가는 게 아니에요. 우리 모두 가는 것이니 올라가서 보고 느낀 것을 생생하게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출발하기 전날은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고 들었는데, 우주에서 돌아오면 가장 먹고 싶은 게 뭡니까.
 
  『솔직히 우주에 출장 가는 기분입니다. 지구로 귀환할 때 해치 열고 나오면 러시아 분께서 제가 먹고 싶은 것을 바로 주기로 했습니다. 카자흐스탄 초원지대에 떨어지고 구조 차량 헬기가 이동해서 코스타나이라는 지역으로 갑니다. 그곳에서 해치를 열어 줄 분을 미리 만났는데 그분이 가져다 주기로 했어요. 아직은 비밀입니다. 지구로 귀환해서 말씀드릴게요. 한국에 가면 콩국수를 먹고 싶어요. 어려서부터 좋아했던 것이라 아마 엄마가 맛있게 준비해 주실 거예요』
 
  이소연씨는 마치 봄 소풍을 가는 어린이처럼 밝고 명랑했다. 표정과 말투에는 설렘이 묻어 났고, 불안하고 걱정스러운 기색은 전혀 없었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힘들었을 텐데 전혀 기운 없는 기색이 없었다.
 
 
  우주에 가족사진·여권·로션… 가져가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 나와 태극기를 흔들고 있는 한국 어린이들.
  ―우주에 들고 가는 개인 물건은 뭡니까.
 
  『가족사진을 가져가고, 그동안 같이 고생했던 사람들의 사진을 함께 넣었습니다. 즐겨 듣던 노래를 넣었고요. 그리고 한 달 전에 갑자기 교체되는 바람에 우주에서 바를 로션이 없어서 로션을 챙겼습니다. 우주에 도착하면 여권에 도장을 받고 싶어서 여권 복사본을 넣었어요. 여권 원본을 가져가고 싶은데 우주에서 분실하면 러시아로 귀환할 수 없다고 해서 여권을 복사했습니다. 설마 이것도 불법이라고 하시지는 않겠죠.
 
  함께 가는 동료 우주인들을 위해 깜짝 선물을 준비했어요. 러시아 우주인의 아들·딸 사진을 급하게 넣었죠. 최근에 우주인 가족들과 모스크바 근교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 찍은 사진이 제 카메라에만 있어서 다른 사람에게 안 보여 주고 빨리 인화해서 준비했습니다. 저는 열흘 정도 우주에 있다가 돌아오지만 그 친구들은 6개월 더 머물고 돌아오잖아요. 아마 본인들은 정신없어서 못 챙겼을 것 같아서 제가 챙겼습니다』
 
  ―밤에 잠은 잘 잘 수 있겠어요.
 
  『담당 의사가 그 말을 했어요.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푹 자고 건강을 지키는 것밖에 없잖아요. 우주선을 고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기자재를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건강에 이상이 생겨서 만에 하나 우주선을 못 타면 큰일이죠. 잘 먹고 잘 자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사히 우주선을 타고 올라갈 수 있도록 잘 잘게요』
 
우주복을 갖춰 입은 이소연씨.
  ―한 달 전에 고산씨와 역할이 바뀌어서 대신 가게 됐을 때는 어떤 기분이었어요.
 
  『저는 고산씨 대신 가는 것이 아니고, 고산씨가 저 때문에 못 가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린 한 팀이고 그동안 하나의 목표를 위해 준비해 왔습니다. 우린 함께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누구 대신」이란 표현은 삼갔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내일이면 우리가 모두 함께 우주로 갑니다. 여러분, 단단히 준비해 주세요! 파이팅』
 
  이소연씨 부모님은 『부디 몸 건강히 잘 다녀오라』는 당부를 했고, 이소연씨는 변함없이 씩씩한 말투로 『꼭 건강히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
 
  이소연씨 아버지 이길수(58)씨는 『소연이가 중학교에 입학해서 처음 수학여행을 보낼 때 기분이다. 부모로서 염려되지만 무사히 돌아올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세계 최초의 여성 우주인 테레시코바
 
테레시코바와 함께한 필자.
  4월8일 오전 코스모나프트 호텔에서 출정식을 하고 오후에 우주인 보고식이 있었다. 언론 관계자들의 출입은 지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이소연씨와 선장 세르게이 볼코프(35), 비행엔지니어 알렉 코노넨코(44)의 모습은 먼발치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 온 응원단과 내외신 기자, 관계자들은 폴리스 라인 밖에서 우주인들의 모습을 바라봤다.
 
  얼마 후 러시아인들의 함성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의 좁은 틈을 비집고 다가갔더니 다름 아닌 세계 최초의 여성 우주인 발렌티나 테레시코바였다. 말을 붙이기에는 조금 먼 거리였다. 러시아 사람들이 『몸 건강은 어떠냐』고 안부를 묻자, 그녀는 『안 아프고 잘 지낸다』고 짧게 답하면서 손을 흔들었다.
 
  한국에서부터 꼭 한 번 인터뷰해 보고 싶었던 테레시코바인데 정작 말 한 번 붙여 보지 못했다. 그녀 주변에는 경비가 삼엄했고, 러시아 언론도 인터뷰를 따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도 한번 시도해 봐야겠다는 생각에 차에 타는 그녀 모습이라도 멀리서나마 사진을 찍었다.
 
  발사 1시간 전. 발사장에서 1.5km 떨어진 발사 전망대에 도착했다. 야구장 위치로 비교하자면 발사대를 중심으로 기자석(정중앙)이 vvip석이었고, 1루쯤 되는 곳이 vip석, 1루와 외야석 사이가 일반 전망대였다. 오픈된 공간에 각 전망대마다 기둥 위에 지붕만 하나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었다.
 
  테레시코바를 만나려면 최소 vip 전망대로 들어가야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교육과학기술부 박종구 차관에게 부탁해서 vip 전망대 안으로 들어갔다. 주변을 샅샅이 뒤졌는데 테레시코바는 보이지 않았다. 러시아 국영방송 카메라맨이 『저기 왼쪽 건물 위에서 레오노프 인터뷰를 한다』고 일러 줬다.
 
  1965년 세계 최초로 우주를 유영한 알렉세이 레오노프와 테레시코바가 그쪽에 있을 것 같았다. 일단 왼쪽 건물(vvip 건물) 안으로 들어가 2층으로 올라갔다. 레오노프 인터뷰하는 곳에서 우측을 바라보니 건물 옥상으로 가는 철계단이 보였다. 계단 끝 쪽 옥상에 검은 선글라스를 낀 70代 여성이 발사대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테레시코바였다.
 
  ―테레시코바, 당신을 만나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잠시 인터뷰할 수 있을까요.
 
  『안 됩니다. 여기는 내 전용 자리니까 내려가 주세요』
 
  어렵게 만났는데 쉽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다시 한 번 통성명을 한 뒤 예전에 러시아에서 살았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약간 따뜻한 말투로 대해 줬다.
 
  ―당신이 45년 전 우주로 갔을 때, 바로 저 소유즈 우주선 안에 있을 때는 두렵지 않던가요? 무서웠죠? 이소연씨는 지금 어떤 심정일까요.
 
  『글쎄, 긴장은 했지만 두렵거나 무섭지는 않았어요』
 
  그녀의 목에 걸린 정교회 십자가가 눈에 띄었다.
 
  ― 하나님을 믿으시나 봐요. 우주에 가실 때 신앙의 도움이 컸겠어요.
 
  『그렇죠. 신을 의지하는 사람들은 그 힘으로 더 강하게 이겨낼 수 있거든요. 이소연씨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테레시코바는 종교 이야기를 시작으로 마음이 완전히 열렸고, 더 이상 내려가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1963년 지구로 귀환할 때 작은 자동시스템 기계가 약간 문제를 일으켜서 위험했던 순간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이소연씨에게 안전에 대해서 조언을 해주셨나요.
 
  『우주에서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우주인들이 침착하게 대처해야 하거든요. 저도 긴장된 순간이 있었지만 다급하게 움직이지 않았어요. 어제 이소연씨를 만났는데 걱정이 안 되더라고요. 그동안 제가 본 이소연은 이해력이 높은 친구거든요. 우주에서 모든 실험과 임무를 잘 마치고 돌아올 것입니다』
 
이소연씨가 로켓에 오르기 직전 환영 나온 이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테레시코바氏는 예전에 우주인 조종사 자격으로 우주에 갔고, 이소연씨는 우주연구를 하는 참가자 자격으로 가는데 어떤 차이점 있다고 생각하세요.」
 
  『조종사에게는 좀더 많은 전문 지식과 기술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주에서 프로그램을 마치고 임무를 수행하는 것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이소연씨는 자신의 우주 역사를 새롭게 써 나가는 것입니다. 이번 우주선 발사로 이소연씨가 한국 항공우주 분야 역사에 첫 페이지를 쓴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소연씨는 아직 젊으니까 앞으로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해요』
 
  ―당신이 우주에 갔을 당시와 지금 우주비행에 달라진 점이 있다면.
 
  『글쎄요, 예전에 유리 가가린이나 제가 지구로 귀환할 때는 상공에서 70km 지점에서 낙하산을 타고 내려왔는데, 지금은 지구 귀환 모듈을 타고 내려오는 것 외엔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아요.
 
  발사 10분 전쯤 로이터 TV 카메라맨이 올라왔다. 그는 테레시코바와 잘 아는 사이였다. 『늦어서 죄송한데, 이곳에서 촬영하면 안 되겠냐』고 했더니 그녀는 『자리가 없다』고 거절했다. 카메라맨은 눈치를 살피며 내 뒤쪽으로 카메라를 설치했다.
 
  발사 5분 전, 테레시코바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주선 발사를 지켜보는 것은 항상 가슴 떨리는 일이죠. 조금만 기다리면 지상에서 가장 멋진 관경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말이 필요없어요. 직접 느껴보세요. 천둥소리 같은 큰 소음이 들리고, 우주선은 눈 깜짝할 사이에 우리 시야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정말 아름다운 관경이죠. 발사대를 봐요. 얼마나 멋집니까』
 
  테레시코바는 마치 詩를 읊듯이 말하며 넋을 놓고 발사대를 바라봤다.
 
  『자, 두 손을 모으세요. 이제 우리 이소연씨를 위해 기도합시다. 당신은 한국어로 기도하세요. 어차피 하늘에 있는 분은 우리 기도를 들을 테니까요. 소연씨! 꽉 잡아. 놀라지 말고, 침착하게』
 
 
  발사 성공
 
모스크바 북쪽에 위치한 우주통제센터.
  오전 8시16분39초, 드디어 발사!!
 
  바람이 세차게 불면서 강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흔들리고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테레시코바는 이렇게 말했다.
 
  『소연씨, 잘 다녀와. 당신을 위해 기도할게. 정말 멋진 경험이 될 거야』
 
  그녀는 발사 몇 초 후 소유즈 로켓에서 긴 흰색 구름 같은 게 나오자 『정말 예쁘네요. 이소연씨가 무사히 임무를 마칠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들어요』 했다.
 
  테레시코바는 소유즈선이 자취를 감출 때까지 하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죽기 전에 화성에 가보고 싶다』
 
세르게이 크리칼료프와 함께한 필자.
  『자, 2층 계단으로 내려갑시다』
 
  2층에는 10여 명의 러시아 연방우주청 관계자들이 박수를 치면서 발사 성공을 축하했다. 샴페인을 터뜨렸고 초콜릿을 먹으며 건배를 했다. 테레시코바에게 물었다.
 
  ―혹시 한국에 다녀오신 적이 있으세요.
 
  『그럼요, 우주에서 수십 바퀴를 돌 때 한국의 상공을 지나갔죠(웃음). 1969년에 북한 평양만 가보고 한국은 아직 못 가봤어요. 평양은 자연환경이 정말 아름답고 멋진 곳이었죠. 아마 저 말고 다른 동료 우주인들은 몇 번 다녀왔을 거예요. 기회가 되면 한국에 가보고 싶은데, 비행기로 몇 시간 정도 가나요』
 
  ―9시간 정도 됩니다. 한 번 꼭 오세요.
 
  『죽기 전에 꼭 한번 화성에 가보고 싶어요. 돌아오지 못해도 상관없어요』
 
  발렌티나 테레시코바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아버지가 전쟁터에서 독일군과 싸우다 목숨을 잃고 홀어머니 밑에서 생활했다. 1962년 소련은 우주 개척을 놓고 미국과 치열한 경쟁이 붙자 최초의 여성 우주인을 모집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방직공장에서 일하던 테레시코바는 취미로 즐겼던 낙하산 기술 덕분에 우주인 최종 후보 5명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테레시코바의 경쟁자는 러시아국립항공대학(마이) 졸업생, 700회 이상 낙하산 훈련을 했던 사람 등 쟁쟁한 후보들이 많았다. 1년 가까이 훈련을 함께 받은 테레시코바는 무엇보다 적응 능력이 뛰어났고, 아버지가 「조국전쟁의 영웅」이라는 점이 높게 평가받았다.
 
  1963년 6월16일 소유즈 6호를 타고 우주에 갔던 그녀는 71시간 동안 지구를 48바퀴 돌았다. 당시 미국 남자 우주비행사들의 우주 체류 기록을 합친 것보다 긴 시간이었다.
 
  『야 차이카(나는 갈매기)』
 
  그녀가 날카롭게 외쳐 대는 자기 호출명이 또다시 미국을 충격에 빠뜨렸다. 테레시코바는 선전효과를 노린 흐루시초프의 강요로 러시아 세 번째 우주인과 결혼해서 세계 최초 우주인 부부가 됐다.
 
  바이코누르 현장에서 또 한 명의 특별한 사람을 만났다. 세계에서 최장기간 우주에 머물렀던 세르게이 크리칼료프였다. 은빛머리에 청바지, 하늘색 셔츠 차림으로 언뜻 보기에는 우주인이 아닌 일반 관람객 같아 보였다. 그런데 외국인 한 명이 「우주인 명단 백과사전」을 그에게 들고 가서 사인을 받는 것이었다.
 
 
  가장 오래 우주에 머문 우주인
 
  ―우주에는 몇 번 다녀오셨어요.
 
  『여섯 번 다녀왔습니다. 지금까지 우주에서 제일 오래 머문 사람이 저일 거예요』
 
  ―얼마 동안 계셨는데요.
 
  『803일이오. 이번에 이소연씨가 세르게이 볼코프와 우주에 가잖아요, 볼코프 아버지도 우주인이었는데, 제가 처음으로 우주에 갔을 때 볼코프 아버지와 갔어요. 그리고 몇 년 전에 세르게이 볼코프와 함께 우주를 다녀왔습니다」
 
  ―우주 생활에서 가장 힘든 것은 무엇입니까.
 
  『무중력 상태를 견디는 것이에요. 그것은 우주에 처음 간 사람이나, 여러 번 간 사람이나 차이가 없습니다. 똑같이 힘들어요. 키가 자라고 얼굴이 붓고 신체 변화를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아요』
 
  ―이소연씨를 만나 보셨나요.
 
  『어제 잠깐 봤습니다』
 
  ―조언을 해주셨나요.
 
  『제가 처음 우주에 갔을 때는 훈련 준비 기간만 3년 이상 걸렸어요. 모스크바 시외 가가린센터에서 훈련 받았죠. 이소연씨는 아무래도 우주에서 머무는 기간이 짧다 보니 제가 준비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을 것입니다.
 
  우주에 다녀온 뒤 우주산업에 관한 책, 우주인에 대한 자료를 만들면서 우주관련 연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소연씨를 좀더 일찍 만났더라면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서 조언해 줬을 텐데, 어제 잠깐 봤으니 시간이 없었죠. 아쉽지만 잘 다녀오라고 안부 인사만 했습니다』
 
  ―지금 연구를 계속하고 계세요.
 
  『네, 모스크바에 제 연구소가 있습니다. 연락처를 드릴 테니 다음에 한번 연락 주세요』
 
  크리칼료프는 영국 신사처럼 멋있고 카리스마가 넘쳐 흘렀다. 겸손했고, 친절했다.
 
이소연씨가 우주 정거장에서 활동하는 모습. 무중력으로 머리카락이 위로 치솟았다.
 
  생명 탄생의 신비
 
  지난 4월10일 모스크바 북쪽에 위치한 「임무통제센터」(MCC: Mission Control Center)에 도착했다. 이소연씨가 탄 「소유즈 TMA 12호」가 48시간 동안 우주를 34바퀴 돌고 국제우주정거장(ISS)과 도킹하는 시간까지는 3시간 정도 남아 있었다. 건물 내부를 둘러보는데 MCC 연구소 부소장 브세볼로도프 페트로비치 라티쉐프를 만났다.
 
  ―소유즈는 계획대로 이동하고 있나요.
 
  『잠시 후 본관으로 이동하면 화면을 통해서 정확한 상태를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한 치의 착오 없이 일이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도킹 때 화상연결하는 전광판을 정확한 숫자로 소유즈의 움직임과 상태를 체크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주비행에서 도킹이 가장 위험하다고 말을 하던데요.
 
  『아닙니다. 우주비행 과정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어떤 것이 가장 위험하다고 단정 짓기는 힘들죠. 러시아는 지난 수십 년간 경험이 있고, MCC에서만 이번 도킹이 17번째이기 때문에 너무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는 도킹 준비를 철저히 했습니다』
 
  부소장은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을 했다. 그리고 도킹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아 바쁘다며 황급히 움직였다.
 
  MCC센터 내에 화면을 볼 수 있는 본관 2층으로 이동했다. 정중앙에는 러시아 연방우주청장 아나톨리 페르미노프, NASA 관계자, 항공우주연구원 백홍렬 원장 등 7명이 앉아 있었다. 가운데 화면을 마주 보고 왼쪽에는 이소연씨 가족과 우주인 가족, 오른쪽에는 내외신 언론사 기자들이 있었다.
 
  방송에서는 시간대별로 소유즈와 ISS 거리와 거리차를 알려 줬다. 모스크바 현지시간으로 4시56분53초에 도킹이 시작됐고, 마치 퍼즐 조각을 맞추는 것처럼 소유즈와 ISS가 결합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도킹이 완료됐을 때 MCC 안에는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7시 41분 17초. 예상보다 10여 분 빠른 시간에 우주복을 갈아입은 이소연씨가 해치를 열고 웃으며 손을 흔들고 나왔다. 마치 어머니 뱃속에서 새 생명이 세상 밖으로 나와서 빛을 보는 듯한 감동이 전해졌다. 48시간 동안 우주선에서 많이 힘들고 괴로웠을 텐데 이소연씨는 끝까지 밝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도킹 완료
 
이소연씨와 함께 우주로 날아간 세르게이 볼코프의 어머니.
  왼쪽에서 화면을 지켜보던 이소연씨 가족들이 환하게 웃었다. 6개월 전 소유즈 TMA 16호를 타고 ISS에 먼저 가 있던 선장 페기 휫슨(미국), 유리 말렌첸고(러시아), 쉐이크 무스자파르 슈코르(말레이시아의 첫 번째 우주인) 등 모두 성공적 만남을 가졌다. 화상을 지켜보던 어머니 정금순(57)씨는 이제야 마음이 놓인다는 표정이었다.
 
  우주인들이 방송통신 헤드셋을 착용하고 목소리가 들리는지 확인했다. 러시아 관계자는 『ISS에 무사히 도착한 것을 축하하고 앞으로 남은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소연씨는 러시아 인사말로 「스파시버(감사합니다」라고 답했다. 잠시 후 항공우주연구원 백홍렬 원장이 이소연씨와 연결됐다.
 
  『이소연씨, 나 백원장이야』
 
  『안녕하세요』
 
  『몸은 좀 괜찮나』
 
  『네, 괜찮습니다』
 
  『건강 잘 챙기고, 무엇보다 최선을 다해서 임무를 수행해 줘』
 
  『네, 제가 갖고 있는 모든 에너지를 쏟아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우주에서 우리 국민들에게 보내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 줘』
 
  『아직 믿어지지 않고요. 최선을 다해서 멋지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우리 국민 최초로 여기에 온 만큼 대한민국 국민들이 모두 우주에 설 수 있는 날이 오도록 최선을 다할게요. 감사합니다』
 
  MCC 내부에서 힘찬 박수가 터져 나왔다. 통화는 영어와 한국어로 번갈아가면서 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세르게이 볼코프의 어머니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ISS에 있던 우주인들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미소를 지었다.
 
 
  엄마 목소리에 눈물 보인 이소연
 
가가린 우주센터에서 러시아의 우주인들이 헌화하기 위해 걸어가고 있다.
  백홍렬 원장은 영어로 다른 나라 우주인들에게 『이소연을 잘 부탁하고, 모두들 지구로 무사히 귀환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아버지가 딸을 생각하는 간절한 목소리로 부탁을 했다. 다음에는 이소연씨 어머니가 마이크를 잡았다.
 
  『소연아, 엄마다. 우리 딸 장하다. 그래, 건강하게 잘 임무수행하고 다시 만나자』
 
  밝고 씩씩하던 이소연씨는 막상 엄마 목소리를 들으니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갑자기 두 둔을 꼭 감고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머니, 아버지 사랑해요.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갈게요』
 
  MCC 내부에는 잔잔한 감동의 물결이 출렁였다.
 
  잠시 후 세르게이 볼코프의 어머니 안나 볼코바가 아들과 연결됐다.
 
  『세르게이, 건강하게 임무수행 잘 하고 돌아와』
 
  안나 볼코바는 침착했다. 우주인의 아내이자 우주인의 어머니다운 모습이었다.
 
  화상연결이 끝나고 잠시 안나 볼코바와 대화를 나눴다.
 
  ―감회가 새로울 것 같습니다.
 
  『내 아들이 ISS에 있는 모습을 화상연결로 보니 믿기지 않았어요. 일단 화상으로 보니까 안심이 됩니다. 남편 알렉산드르 볼코프가 우주에 있을 때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어요』
 
  ―2代째 우주인 집안이 됐는데 마음고생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마음고생은요. 직접 우주로 나가는 사람들이 힘들죠. 여섯 살 난 손자 이고리 볼코프가 있는데, 며칠 전에 자기도 우주인이 되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저는 우주인 아내에, 어머니, 할머니가 되는 거겠죠』
 
  ―이소연씨가 아드님을 위해 깜짝 선물로 이고리 사진을 우주로 가져갔다고 하던데요.
 
  『아들이 감동하겠네요. 안 그래도 6개월 동안 떨어져 있어서 외로울 것 같아 걱정했는데. 지난달인가 우주인 가족들이 이소연씨랑 모스크바 외곽에 있는 곳에서 며칠 훈련 겸 휴식을 취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우리 손자 녀석이 이소연씨를 잘 따랐던 모양이에요. 이고리가 한번은 저에게 와서 「소연이 누나 좋다」고 자랑을 늘어놓더라고요』
 
  MCC에서 도킹이 성공한 후 곧바로 기자회견이 열렸다. 러시아 기자들의 첫 번째 질문은 『이소연씨가 태권도 유단자이고, 열두 살 때부터 태권도를 한 게 맞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2008 베이징 올림픽 때 이소연씨가 한국 홍보대사로 참석하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백홍렬 원장은 『이소연씨가 태권도를 한 것은 사실이고, 대부분 한국 여성들이 이소연씨처럼 슈퍼우먼입니다. 베이징 올림픽에 관해서는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은데 한번 실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러시아 네자비시마야 가제타(독립 신문) 기자가 오더니 명함을 건넸다.
 
  고산씨가 이소연씨로 교체된 원인을 놓고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어 그에게 물어봤다.
 
 
  우주인 후보 교체 배경 의문
 
  ―고산씨가 한 달 전에 교체된 이유는 뭡니까.
 
  『고산씨가 내부 규정을 어겼다는 것은 이미 보도된 사실이고요. 알려진 것 보다 경고받은 횟수가 더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고산씨가 자료를 유출한 배경에는 삼성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고산씨가 우주인으로 확정되기 전까지 삼성에 몸담고 있지 않았습니까. 며칠 전에 관련 기사가 난 것 같던데 한번 검색해 보세요」
 
  ―다른 이야기는 못 들으셨나요.
 
  『정보를 쥐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입을 다물고 있어서. 러시아에서는 예비 우주인 후보가 우주선을 타고 우주로 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특히 이번 경우 한국 정부와 러시아 정부가 협의한 뒤 진행된 사업 아닙니까.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교체되고, 교체 배경에 대해서 시원한 배경 설명이 없는 게 좀 이상하죠』
 
  러시아 기자는 고산씨가 다른 한국사람에게 기밀 통제구역을 보여 주다가 적발된 적이 있고, 문서 복사 외에 수차례 경고받을 행동을 한 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 「우주인의 날」
 
러시아 우주인들의 아들딸, 손자손녀들이「우주인의 날」을 축하하는 시를 낭독하고 있다.
  지난 4월12일 러시아 「우주인의 날」 기념행사를 보기 위해 가가린센터로 출발했다. 20℃를 웃도는 화창한 날씨에 모스크바 시내에서 차를 타고 북서쪽으로 1시간30분쯤 이동했더니 「즈뵤즈드늬이 고로독」(별의 작은 도시) 표지판이 보였다.
 
  도로 양쪽에는 4층 건물 높이의 자작나무와 소나무가 늘어져 있었고, 길 끝에 「가가린 우주인 양성센터」라는 간판이 보였다. 입구에는 군복을 입은 6명의 젊은 청년들이 출입자 명단에서 이름을 확인하고 들여보내 줬다.
 
  한국에서 출장 준비를 할 때 가가린센터 취재 요청을 했지만 『통상 45일 전에 등록을 해야 취재가 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한국 항공우주연구원 관계자들은 『가가린센터 취재는 포기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모스크바까지 와서 그냥 돌아갈 수는 없었다.
 
  한국에서부터 수차례 모스크바로 전화를 했고, 출장 이틀 전(4일)에 한국에서 간신히 허락을 받았다. 이날 출입자 명단에는 당연히 내 이름이 없었다. 대신 사전에 이야기가 됐던 가가린센터 관계자가 나와서 들어갈 수 있었다.
 
  오후 3시, 「별의 도시」 안에 있는 가가린 동상 앞에서 발렌티나 테레시코바, 알렉세이 레오노프를 비롯한 러시아 우주인들이 묵념하고 헌화를 했다. 군악대의 연주 소리와 함께 「우주인의 집」으로 이동을 했다. 역대 우주인과 가가린센터 관계자 약 300명이 모인 행사에서는 47년 전 우주로 향했던 가가린의 업적을 되돌아보고, 향후 러시아 우주산업 발전에 대한 다짐을 하며 함께 격려하는 시간을 가졌다.
 
인류 최초의 우주인 가가린의 동상.
  「우주인의 집」에서 만난 테레시코바는 다시 한 번 반갑게 맞아 줬다. 러시아 연방우주청 관계자들에게 나를 자신의 오랜 친구라며 소개했고, 한국에 가면 인터뷰 기사를 꼭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콘서트에서는 타치야나 수제바를 비롯한 여러 가수들이 노래를 불렀고, 우주인 아들딸, 손자손녀들이 무대 위로 나와 詩를 읊고 합창했다.
 
  『그 옛날 하늘 위에 우주 세계를 열었던 당신이 자랑스럽습니다. 모든 위험과 공포를 다 이기고 우주에 첫발을 내딛은 당신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저 하늘에 별을 보고 내일을 꿈꿀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행사를 지켜보며 러시아 사람들이 갖고 있는 우주 분야에 대한 자부심은 그 사람들의 자존심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우주인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호명하면서 감사패와 꽃다발을 수여했고, 앞으로 더 높은 기술 발전을 다짐했다.
 
 
  블라지미르 페트로비치 교수와의 만남
 
로켓 발사 한 달 전 우주인의 꿈을 접어야 했던 고산씨.
  이날 운이 좋게도 이소연씨와 고산씨에게 ISS 및 우주선 시스템을 가르쳤던 블라지미르 페트로비치 트로피모브 교수를 만날 수 있었다.
 
  『「우주인의 날」은 이곳 사람들에게 가장 큰 연중행사예요. 저도 쉬는 날인데 오후에 일본 우주인 2명을 가르쳐야 해서 잠시 후 수업을 하러 가야 합니다』
 
  ―일본인 우주인이라면, 내년에 有人우주선을 타고 가는 사람들인가요.
 
  『정확히 언제쯤 우주로 갈지는 모르지만 일본에서 직접 만든 모듈을 타고 갈 것입니다』
 
  ―언제부터 이곳에서 수업을 하셨나요.
 
  『1975년부터죠. 그동안 수많은 외국인들을 교육했습니다. 10년 전 우주에 갔던 첫 일본인이 제 수업을 들었죠』
 
  ―한국 우주인들과 일본 우주인들의 다른 점이 있다면 어떤 게 있나요.
 
  『글쎄요. 크게 다른 점은 없지만, 일본 우주인들은 한국인들보다 더 오랜 준비기간을 거쳐서 가가린센터에 들어옵니다. 예를 들면 지금 제가 교육하는 우주인들은 러시아語를 거의 완벽하게 구사해요. 수업시간에 어려운 전문용어까지 다 알아들어서 통역이 필요없습니다. 그만큼 자유롭게 소통하고, 배운 지식을 더 깊이 연구할 수 있겠죠』
 
  ―고산씨가 이소연씨보다 러시아語를 더 잘한다고 하던데요.
 
  『제 개인적인 생각은 다릅니다. 이소연씨가 좀더 잘하는 것 같은데요. 이소연씨가 고산씨보다 전문용어를 많이 알고 있었고, 이해력이 빨랐어요』
 
  ―이소연씨는 워낙 친화력이 좋고 성격 좋기로 유명하던데, 그래서 교수님이 더 후한 점수를 주시는 것 아닌가요.」
 
  『아니에요, 이소연씨 성격 좋은 거야 다 아는 사실이고, 그것과 평가는 별개죠』
 
  ―유리 가가린이 예전에 즈뵤즈드늬이 고로독에서 훈련받을 때 보니까 각 과목별로 점수를 받은 성적표가 있던데. 이소연씨는 몇 점 정도 받았나요.
 
  『내부 기밀이라 말씀드릴 수 없는데요. 우선 점수가 있는 과목과 「pass」, 「non pass」 과목으로 나뉩니다. 대부분의 과목이 후자에 속하고요. pass 과목도 교수들마다 객관적인 점수를 매기는데 일단 총점을 내기 위해서 여러 교수들이 모여서 회의를 합니다. 자신들이 준 점수에 대해서 그 이유를 설명하고, 중간 의견을 수렴해서 최종 점수를 정하죠. 대외적으로는 좋은 점수가 주어졌을 것입니다』
 
  ―국가별로 우주인들의 특징이 다를 것 같은데요, 공통점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모두 의욕이 넘치고, 열심히 훈련을 받습니다. 어느 한 순간도 소홀하지 않지요』
 
  ―러시아는 예비 우주인 후보가 우주로 가는 경우는 드물다고 들었습니다. 특히 외국인 우주인의 경우 우주선 발사를 한 달 앞두고 교체된 사례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고산씨가 교체된 배경이 뭔지 궁금합니다.
 
  『곤란한 질문입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가가린센터 관계자 중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 첫 우주인들의 이미지를 고려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
 
  4월13일 모스크바 시간으로 오후 8시 30분. 서울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 올랐다. 그동안 러시아에서 취재하면서 느낀 점은 한국 항공우주산업 분야가 심각하게 뒤처져 있다는 것이다.
 
  이소연씨와 함께 돌아오는 말레이시아 첫 번째 우주인은 이미 장기간 우주에 체류하면서 임무를 수행했고, 이소연씨는 ISS에 머무르는 시간이 8일밖에 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이번 우주인 발사를 단순한 이벤트라고 비판하고 의미를 축소했다. 하지만 우리가 단순한 비판에 머무르지 않고 한국 항공우주 연구 분야의 현주소를 깨닫고 우주산업 기술발전에 좀더 많은 투자와 노력을 쏟아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러시아 항공우주산업이 우리보다 50년 이상 앞서 있는 배경에는 그들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957년 견공 「라이카」를 우주에 보내고, 1960년 최초로 우주에서 살아 돌아온 견공 「벨카」와 「스트렐카」의 성공으로 인해 1961년 유리 가가린이 우주로 갈 수 있었다. 우리도 이제 우리 기술로 우주선을 만들고, 그 우선에 진짜 우주인을 태워서 성공적으로 발사할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대해 본다.●

 

Posted by mos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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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병우 생각

기사/사회 2018. 3. 4. 21:49
http://m.news.seoulbar.or.kr/news/articleView.html?idxno=916


서울 변호사협회에 기고한 글.  ^^

“○○○ 기자. ‘생각’을 좀 하고 질문하세요.”

2011년 어느 봄날. 대검찰청 기자실에서 우병우 수사기획관이 모 언론사 기자에게 레이저 눈빛을 쏘며 했던 말이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나는 속으로 ‘아… 우 기획관이 나에게만 까칠한 게 아니구나. 그래도 그렇지 저 선배 좀 민망하겠다.’ 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대검 출입 기자들은 중앙수사부에서 수사 중인 사건의 사실관계를 우 기획관을 통해 공식 확인해야 했다. 우 기획관에게 매일같이 전화하고 방을 찾아가다 보니 레이저 눈빛의 변화가 감지될 때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월요일. 우 기획관 방으로 올라갔다.

기    자 : “ 검찰이 부산저축은행 관련 SPC(특수목적법인) A자료까지 다 가져갔던데.. ○○부분까지 들여다보시는 건가요?” (우 기획관이 잠시 멈칫했다)

우병우 : “그 얘긴 어디서 들었어요?”.

기    자 : “제가 주말에 부산가서 ○○보고 확인했어요.”

우병우 : “ ...... 아직 내가 거기까지 보고를 받지는 못했어요. 보고받고 난 후에 얘기합시다.”

검사들이 기자에게 사건 관련 내용을 ‘yes or no’로 답해주진 않지만 기자들은 뉘앙스나 표정 변화를 통해 힌트를 얻는다. 받아쓰기식 보도만 하고, 틀에 박힌 질문, 하나마나한 질문을 하는 기자들에게 레이저 눈빛을 날렸던 우 기획관이지만 적어도 그의 말이 틀리진 않았다.
검찰 소환조사에 따라 포토라인에 선 사람들에게 “혐의 사실 인정하십니까?”라고 묻는 기자들을 보면, 검사가 아직 조사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혐의 사실을 인정하느냐고 묻나 싶기도 하고, “...되시면 마지막 인터뷰일 수 있는데 한 말씀 해주시죠.”라고 질문하는 기자를 보면, 마치 기자가 유무죄를 판단해 상대방을 범죄자로 사회에 낙인찍어 주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2016년 국정농단 사태와 2017년 대통령 탄핵이란 초유의 상황을 겪으면서 우병우 황제조사 논란, 우병우 레이저 눈빛 등이 기사화되고 실검에 오를 때마다 우병우의 ‘생각’이 떠올랐다.

우병우 민정수석이 청와대에 있으면서 한 일에 대한 공과를 따지기 전에, 언론이 바로 섰더라면. 기자들이 제 역할을 했더라면. 좀 더 생각하고 고민하고 사안에 접근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정윤회 문건이 세상에 알려졌을 때 잘못된 것을 바로잡았더라면 국정농단 같은 초유의 사태가 있었을까 싶고, 책임을 묻고 탓할 대상을 찾기 전에 기자들이, 아니 나는 언론인으로 무슨 일을 했나 돌아보면 사실 할 말이 없다.

예전에 법조를 출입할 땐 검사를 많이 알고 검사와 술을 많이 마시는 게 능력있는 기자인 것처럼 인식되던 시절이 있었다. 돌아보니 그 시간에 조금 더 공부를 했더라면. 선배들 말마따나 큰 그림을 그리는 훈련, 나무를 보지 않고 숲을 보는 훈련을 했더라면 사안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눈을 키울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검찰의 과거사 반성. 현재 수사 중인 사건까지 다시 들여다보며 처절한 반성을 하겠다는 검찰을 보면서 우리 언론도 제 살 깎는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 본다. 선배들이 시키는 질문, 검찰의 입에만 의존하는 받아쓰기식의 보도를 지양하고, 잠시 멈춰 이 사안을 어떻게 들여다봐야 할 것인지 좀 더 깊이 있게 고민해야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물론 이런 고민을 하기엔 취재 환경의 어려움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개인의 힘이 큰 흐름을 거슬러 역행하긴 어려운 부분, 구조적인 한계도 분명 있었다. 

7년 만에 다시 법조를 출입하게 되면서, 그 시절 알던 분들이 줄줄이 서울중앙지검 포토라인에 서거나 구속 기소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많은 생각이 든다. 한때 검찰에선 엘리트 중의 엘리트, 수사라면 둘째 가라면 서러웠던 분들의 뒷모습을 보며 앞으로 ‘어떤 생각과 방향을 갖고 살아가야 하나’ 고민하게 된다.

돈, 명예, 권력을 좇지 않았고 주어진 일만 열심히 했다고 변명하기엔 그로 인한 사회적 파장이 너무 크다. 범죄정보로 둔갑한 BH하명사건은 아니었는지 누구 하나 멈춰서 고민하는 검사가 있고, 기자가 있었더라면. 구조적 한계를 뛰어넘어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더라면 2016년 추운 겨울,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올 일은 없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Posted by mos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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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교육원서 1년 만에 러' 박사, 교수님의 가짜 학위

 

임현주 기사입력 2017-06-08 20:24 최종수정 2017-06-08 21:07

 

 

관련기사 링크

 

http://imnews.imbc.com//replay/2017/nwdesk/article/4333261_21408.html

 

 

 ◀ 앵커 ▶

일부 국내 연극영화과 교수들이 평생교육원을 통해 러시아에서 학사·석사 학위를 속성으로 취득한 사실, 어제 단독보도해 드렸는데요.

문제의 평생교육원을 통해 러시아로 유학 가서 1년 만에 박사 학위를 받은 교수들도 추가로 확인됐습니다.

임현주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리포트 ▶

모스크바 기치스 연극대학교.

국내 사립대의 한 교수가 박사 학위를 받은 곳입니다.

학교 측에 확인을 요청했습니다.

[나탈리아/기치스 연극대 국제협력 과장]
(이 학교를 다닌 건가요?)
"아닙니다. 기치스에서 논문 발표하고 박사 학위만 받았어요. 슈킨대는 박사 학위 과정이 없습니다."

이 교수가 경기대 평생교육원을 통해 유학을 간 건 2001년.

슈킨대 한국스튜디오로 입학해 2002년에 이 학교로 옮긴 뒤 1년도 안 돼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러시아 유학생]
"(사립대 교수가) 당시 슈킨연극대학교에 공부하러 왔다고 했는데 1년 남짓 됐을 때 기치스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나간다고 해서 참 의아하게 생각했던…."

러시아에서 박사 학위를 받으려면 최소 3년에서 7년 정도 걸립니다.

외국인이 1년 만에 박사학위를 받은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더구나 이 교수는 한국연구재단에 논문 제목과 학위 취득 기간 등을 허위로 등록했습니다.

현지 취재가 끝난 뒤, 이 교수에게 입장 표명을 요구했지만 거부했습니다.

한 예술대학의 또 다른 교수.

슈킨대에서 1년 만에 석사 학위를 받고, 기치스에서 2년 만에 박사 학위를 받은 것으로 등록했습니다.

그런데 졸업자 명단에는 이 교수의 이름이 없었습니다.

이들은 학위를 주러시아 한국대사관에서 인증받아 대학 측에 제출했습니다.

대사관 측은 영사 확인은 서류의 진위를 확인해주는 게 아니라 해당 국가에서 발급된 서류인지를 확인해주는 절차일 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MBC뉴스 임현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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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과정 3년 만에 '뚝딱' 속성 학위 따고 '교수' 검증은?

 

곽동건 기사입력 2017-06-07 20:32 최종수정 2017-06-07 21:01

 

 

보도 영상 클릭

 

http://imnews.imbc.com//replay/2017/nwdesk/article/4332107_21408.html

 

 

 

 

◀ 앵커 ▶

이렇게 속성으로 러시아 대학에서 학위를 따 온 교수들이 한두 명이 아닙니다.

어떻게 국내 대학의 임용 절차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던 걸까요?

이어서 곽동건 기자입니다.

◀ 리포트 ▶

지난 1998년, 한 일간지에 실린 광고입니다.

나 모 씨가 러시아 슈킨대 교수진과 함께 대학 부설 연기학교를 만들었다고 쓰여 있습니다.

광고에 나오는 나 씨는 25년 전 국내에 '러시아 유학 1호 연극인'으로 소개된 인물입니다.

나 씨는 2년 뒤인 2001년에는 다른 대학의 평생교육원 연극학 과정으로 옮겨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나 모 씨/전직 교수]
"한국에 귀국해서 4년제 대학이 아닌 단독 연기 전문학교를, 어떻게 보면 연기학원을 만든 거죠."

나 씨에게 배운 평생교육원 학생들이 슈킨대로 편입할 수 있었던 건 두 학교가 '특별 협약'을 맺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나 모 씨/전직 교수]
"(러시아에서 수업은) 모든 발표를 한국어로 발표하는 거죠. 한국어 수업이 있었고, 한국적인 탈춤, 무술, 무용… 그런 수업들이 조금 추가된 거죠."

하지만 협약 체결 당시 슈킨 대학은 일종의 '직업 전문학교'였고, 2002년 하반기에야 대학 인가를 받았습니다.

슈킨대 측은 90년대 초반 나 씨가 슈킨대 교수였다는 이력도 거짓이라고 밝혔습니다.

[따찌야나 빅토로브나/슈킨대 인사과장]
(나 씨가 슈킨대 교수였나요?)
"우리 대학에 한국인 교수는 없었어요. 아마 한국 스튜디오에 한국 학생들을 데려온 사람일 수도…"

문제는 나 씨의 제자들이 학위를 취득한 뒤 국내에서 교수로 임용되는 과정에서 자격을 검증할 방법이 없었다는 겁니다.

신정아 씨 사건 이후 한국연구재단은 해외 학위를 조회할 수 있게 해 학력 위조를 막겠다고 했지만 학위 조회가 가능한 나라는 미국과 영국, 캐나다 등 영어권 11개국뿐입니다.

러시아의 경우 해당 대학 측에 직접 문의하는 것 이외에는 검증할 방법이 없습니다.

러시아 교육성은 "러시아에서 학위를 따려면 학부 4년에 석사는 2년이 걸린다"며 "출입국 기록을 바탕으로 실제 수학 기간을 확인해야 한다"고 주의를 당부했습니다.

MBC뉴스 곽동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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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평생교육원 후 3년 만에 석사, 교수님의 이상한 러' 학위

 

임현주 기사입력 2017-06-07 20:29 최종수정 2017-06-07 21:33

 

 

보도영상을 보려면 아래를 클릭하세요~

 

 

http://imnews.imbc.com//replay/2017/nwdesk/article/4332106_21408.html

 

 

◀ 앵커 ▶

국내 일부 연극영화과 교수들이 학력이 인정되지 않는 평생교육원을 다닌 뒤에 러시아 대학으로 편입을 해서 학위를 취득한 사실이 MBC 취재 결과 확인됐습니다.

고등학교에 졸업한 뒤 막바로 대학에 편입한 것과 마찬가지인데요.

러시아에서 수업은 한국어로 진행이 됐고 학사는 2년, 석사는 1년, 학위 취득도 이렇게 속성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상한 대학 편입, 모스크바 현지에서 임현주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리포트 ▶

모스크바 아르바뜨 거리에 위치한 슈킨 연극대학교입니다.

배우 박신양 씨와 김유석 씨가 유학했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전교생이 2~300명에 불과해 매년 졸업생 명단을 공개하는데 국내 사립대학 연극영화과 교수 등 40여 명의 한국인 이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졸업한 학위 프로그램에는 한국스튜디오란 명칭이 표기돼 있습니다.

[키릴/슈킨대 강사]
"한국스튜디오는 한국인들만 모아서 수업을 했고요. 한국어 전문 통역사가 있었습니다."
(수업도 통역을 했나요?)
"네."

그런데 4년이 걸리는 학사 학위는 2년, 2년이 걸리는 석사 학위는 1년 여 만에 취득했다고 돼 있어 해당 학위가 진짜인지 확인을 요청했습니다.

[따찌야나 빅토로브나/슈킨대 교무처장]
"2003년에 졸업한 것은 맞아요."
(그러면 2001년에 입학해서 2년 만에 학부를 졸업했다는 얘기네요.)
"졸업장 진위 여부는 우리도 구분이 안 됩니다."

이들이 슈킨대 한국스튜디오 과정을 단기간에 마칠 수 있었던 건 국내 모 대학의 평생교육원 연극학 과정 학점을 인정받았기 때문입니다.

[따찌야나 빅토로브나/슈킨대 교무처장]
"(한국 학생들은) 모두 필요한 학위를 가져왔어요. 그 학위들의 진위 여부는 우리가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교육부는 당시 연극학 과정은 학점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교육부 관계자]
"학점인정 과정을 제외한 평생교육원 과정은 비학위 과정입니다. 따라서 학력이 인정되지 않습니다. 교육부는 평생교육원의 불법유학프로그램을 폐쇄토록 조치한 바 있습니다."

교육부는 2002년과 2013년 두 차례에 걸려 해당 대학 측에 공문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교육부 관계자]
"거기에 나온 것을 인정하기는 어렵죠. 러시아에 있는 학교에 그 자격으로 갔다고 하면 문제는 커 보이는데요."

하지만 슈킨대 한국스튜디오를 졸업한 뒤 교수로 임용된 당사자들은 잘못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평생교육원에서 학생을 모집할 때 러시아 유학을 조건으로 뽑았고, 교수로 채용될 때도 평생교육원 수료 사실을 일부러 숨긴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00여대 교수]
"학력을 기재하는 칸이 있어요. 거기는 학위를 기재하는 것이지 이력서처럼 기재가 되지 않아요."

논란이 확산되자 해당 평생교육원은 슈킨대 편입 프로그램을 폐지했습니다.

MBC뉴스 임현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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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경제연합

[ Eurasian Economic Union ] Евразийский Союз

요약
서유럽 국가 중심의 유럽연합(EU)에 대응하는 기구 창설을 위해 러시아가 중심이 된 옛 소련권 국가들의 연합체
약어 EEU

러시아가 문화와 언어를 공유하고 있는 옛 소련권 국가들의 다각적인 협력 증진을 위해 회원국 간 경제 강화, 조화로운 발전, 화해, 협력을 도모하기 위한 경제공동체이다. 공동체 내에서 상품, 자본, 노동, 서비스 등의 자유로운 이동을 목표로 한다.

러시아는 2012년 카자흐스탄과 벨라루스와 3국 관세동맹을 출범시켜 EEU 창설을 준비해 왔다. 2013년 12월에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모스크바에서 EEU 정상회담을 주체하였고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등의 정상이 참석, EEU 창설을 논의하였다. 이 회의에서 3국 정상들을 2014년 5월까지 EEU 창설 조약을 체결하고 2014년 말까지 가입국의 의회 비준 절차를 통과해 2015년 1월 정식 출범하는 데 합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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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보로시야

[ Novorossiya ]
요약
블라디미르 푸틴 현 러시아 대통령의 정책을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 중 하나

러시아어로 '새로운 러시아'라는 뜻으로, 본래는 18세기 러시아 제국의 영향권에 들어온 러시아의 새 영토를 일컫는 말이었다.

현재는 친러시아 성향의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을 일컫는 말인 동시에 푸틴 대통령이 표방하는 ‘강력한 러시아’를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푸틴 대통령은 2014년 4월 전국에 생중계된 국민과의 대화 때 이 용어를 공식 사용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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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하산 물류협력사업

[ Rajin-Hassan logistics partnership, Rajin-Hassan Project ]

요약
러시아 극동의 국경지역인 하산과 북한 나진항을 잇는 54km 구간의 철로 개ㆍ보수와 나진항 현대화 사업, 복합 물류사업 등을 골자로 하는 프로젝트

총사업비 3억 4000만 달러 규모의 이 프로젝트는 나진-하산 간 철도(54km)를 개보수하고 2008년부터 49년간 나진항 3호 부두와 나진구 21ha를 개발 운영하는 사업이다. 푸틴 대통령과 故 북한 김정일 위원장이 2000년에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한반도종단철도(TKR) 연결을 위한 나진-하산 공동개발에 합의하면서 시작됐다. 이 합의로 러시아가 70%, 북한이 30%의 지분을 갖는 '라손콘르란스'라는 합작회사가 2008년 10월에 설립됐다.

이 가운데 철도 개보수 사업의 경우 2013년 7월에 완료됐고, 나진항 화물터미널 공사도 9월에 완공돼 9월 23일에 철도 운행이 시작됐다.

■ 박근혜-푸틴,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협력 공동성명 채택

한국은 지난 2007년 나진-하산구간 철도 개보수와 나진항 현대화를 남ㆍ북ㆍ러 합작 사업으로 추진하기로 합의했었으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추진이 미뤄지다가 2010년 천안함 사건 이후 취해진 5ㆍ24 대북제재 조치로 논의 자체가 전면 중단됐다. 이후 2013년 11월 박근혜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서울에서 열린 한러 정상회담에서 한국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로 합의하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양국은 남ㆍ북ㆍ러 3각 사업의 시범사업으로 포스코ㆍ현대상선ㆍ코레일 등 우리 기업이 '나진-하산 물류협력사업'의 철도ㆍ항만사업에 참여하는 내용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에 따르면 이 프로젝트에 우리 기업인 포스코ㆍ현대상선ㆍ코레일 등 3개사의 컨소시엄이 2100억 원을 투자, 합작회사의 70%에 달하는 러시아 측 지분을 일부 인수하면서 공동 운영권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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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이니셔티브

[ Eurasia Initiative ]
요약
유라시아 대륙을 하나의 경제공동체로 묶고 북한에 대한 개방을 유도해 한반도의 평화를 구축하는 방안

세계 최대 단일 대륙이자 거대 시장인 유라시아 역내 국가 간 경제협력을 통해 경제활성화 및 일자리 창출의 기반을 만들고, 유라시아 국가들로 하여금 북한에 대한 개방을 유도함으로써 한반도 긴장을 완화해 통일의 기반을 구축한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구상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10월 18일 서울에서 열린 유라시아 국제 콘퍼런스 기조연설에서 공식 주창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하나의 대륙 ▷창조의 대륙 ▷평화의 대륙 등 세 가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제안했다. 이를 위해 부산-북한-러시아-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관통하는 '실크로드 익스프레스'을 실현하고, 전력ㆍ가스ㆍ송유관 등 에너지 네트워크 구축 필요성을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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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반도의 '신냉전', 한반도 '한파' 징후
[정욱식 칼럼] 신냉전구도 시작? 한반도의 운명은···
기사입력 2014.03.19 09:06:15 | 최종수정 2014.03.19 09:06:15 |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프레시안 편집위원 | jh1128@pressian.com
 
“크림반도 위기가 한반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러시아 사회과학원의 한반도 프로그램 소장을 맡고 있는 그레고리 톨로라야(Georgy Toloraya)가 던진 질문이다. 톨로라야는 평양과 서울 주재 러시아 대사관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전문 외교관 출신으로 러시아의 대표적인 동북아 전문가이다.

그는 최근 <38노스>에 기고한 글(☞바로보기)을 통해 우크라이나 위기가 한반도 문제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크림반도가 러시아에 병합되면 서방 국가들은 대러 봉쇄 정책을 강화할 것이 분명하고, 러시아는 ‘동진 정책’을 통해 이를 상쇄하려고 할 것이라는 점은 대전제에 해당된다. 이렇듯 유라시아 대륙에서 지정학적 경쟁이 격화되면 동북아 지정학의 핵심인 한반도에 미칠 영향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미니 6자회담’의 무산, 그리고 이후

톨로라야 소장은 이미 그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한다. 4월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동북아협력대화(NEACD)가 미국의 불참 통보로 이미 무산되었다는 것이다. 동북아협력대화는 6자회담 참가국의 관료와 전문가가 참여하는 ‘트랙 1.5’ 회의체로 ‘미니 6자회담’으로도 불린다. 6자회담은 2008년 12월 결렬 이후 산소마스크를 낀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동북아협력대화마저 무산되면서 6자회담의 동력은 더욱 위축될 공산이 커지게 된 것이다.

톨로라야는 이게 시작에 불과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우선 “한반도 문제는 정상회담을 포함한 미·러 대화의 10대 의제 가운데 하나”였는데, 당분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는 것이다. 또한 미·러 관계가 악화되면서 러시아가 북한 문제와 관련해 중국 쪽으로 기울 가능성도 높아졌다고 진단한다. 러시아는 최근 몇 년 동안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와 관련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응에서 대북 규탄 및 제재에 적극 동참해왔다. 러시아의 이러한 태도는 중국이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안을 찬성하게 만드는데 중요한 배경이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싸고 미국과 러시아가 정면충돌하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중국 및 북한을 보다 많이 배려해야 할 지정학적 사유가 커졌다는 것이 톨로라야의 분석이다. 아울러 그는 미·러 관계에 빨간불이 켜지면서 북한 체제에 대한 전문성을 갖고 있는 러시아가 미국의 대북정책에 유용한 정보와 조언을 제공했던 협력관계도 어렵게 될 소지가 커졌다고 본다.

그는 특히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미국의 태도에 불만은 품은 러시아인들 사이에서 북한이 주장하는 “핵 억제력”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라고도 전망한다. 이전에도 북한의 위성 발사에 대해 유엔 안보리가 제재 결의안을 채택하는 것은 과도한 대응이라는 비판이 있었던 만큼, “앞으로는 북한이 추가적인 로켓 발사를 하더라도 러시아 정부가 이전과 같은 분개를 표하는 데 회의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한 러시아의 대북정책도 바뀔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진단한다. 대북 제재를 느슨하게 적용하고 나진-하산 프로젝트와 신규 투자 확대 등 경제협력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민수용 핵 이용과 군사 분야로까지 협력을 확대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러시아로서는 안 그래도 초읽기에 들어간 북한의 실험용 경수로 가동이 걱정거리였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사태를 거치며 미국의 입장을 배려해야 할 동기가 위축되면서, 북한에 원전 운영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원전 수출 가능성을 타진하는 등 핵 협력에 나설 동기가 커졌다는 것이다. 심지어 “동맹국이 없는 것보다 북한이라도 있는 게 낫다”는 판단하에 러시아가 북한과의 제한적인 군사협력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톨로라야는 또한 우크라이나 사태를 거치면서 동북아가 “대륙 세력(중국-러시아-북한)과 해양 세력(미국-일본-한국) 사이의 대결로 회귀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고 진단한다. 이렇게 되면 “한반도를 둘러싼 게임이 또 다시 다자간 ‘제로섬’ 게임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와 함께.

그는 아울러 “한러 간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도 당분간 희망적 사고에 머물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안 그래도 양국 관계는 소치 올림픽을 거치면서 냉랭해졌는데,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한국이 동맹국은 미국의 입장을 두둔하고 러시아의 사활적인 이해를 간과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교훈은?

톨로라야의 지적처럼 우크라이나 위기는 한반도와 동북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필자는 이미 북한 지도부가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면서 “핵 억제력”에 대한 집착이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우려한 바 있다.(☞관련 기사 보기) 또한 유럽에서 조성되고 있는 신냉전 분위기가 냉전 질서를 극복하지 못한 동북아에서 신냉전을 재촉할 우려도 키우고 있다.

미·러 관계의 균열은 6자회담을 둘러싼 한-미-일 대(對) 북-중-러 사이의 이견을 키울 수도 있다. 크림반도가 결국 러시아에 병합되면, 미국은 한국에도 대러 경제제재에 동참해달라고 요구하고 나설 공산도 크다. 이렇게 되면 박근혜 대통령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시동도 걸지 못한 상황에서 큰 난관에 봉착하고 만다.

이러한 도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통합의 동심원’을 만드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대통령이 직접 통일준비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로 한 만큼, 합리적인 보수와 진보를 아우를 수 있는 인적 구성을 통해 초당적 협력과 국민적 합의를 도모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대북정책의 핵심은 북한 주민들의 민심을 얻는 데 두어야 한다는 점을 우크라이나 사태는 거듭 확인시켜준다. 크림반도 주민들이 러시아로의 병합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낸 데에는 자신들이 우크라이나 2등 국민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6년째 통일을 국시처럼 말하고 있으면서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얻고자 얼마나 노력해왔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는 사례이다.

결국 대박형 통일을 위해서는 종북 사냥의 유혹을 뿌리치고 남남통합에 힘써야 한다. 북한은 곧 무너질 것이라는 자해적 희망적 사고도 이제는 화해협력과 평화공존에 기반을 둔 남북통합에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한-미-일이 뭉치면 북-중-러도 손을 잡게 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지정학적 현실을 직시하고 동북아 통합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이러한 ‘3박자 통합’이 우리의 미래를 위해 얼마나 절실한지, 우크라이나 사태가 웅변해주고 있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프레시안 편집위원 (jh1128@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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