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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인간이 우주에서 첫 유영을한 지 50년이 됐다고 합니다.

인터넷에 관련 기사 올라왔네요.  <출처: 경향 비즈앤라이프>

 

*  *  *

 

인류, 우주공간에서 첫 유영한 지 50주년 맞아

올해는 인간이 우주복만 입고 우주 공간을 헤엄치는 ‘우주유영’(spacewalk)에 최초로 성공한지

 50년이 되는 해다. 인류 최초로 우주 공간에 몸을 띄운 주인공은 옛 소비에트연방(소련)의 우주인

알렉세이 레오노프였다.

그는 1965년 3월 18일 보스크호드 2호 우주선 바깥으로 나가서 무중력 상태의 우주 공간을

12분간 헤엄쳤다. 당시 그는 우주선과 우주복을 연결하는 15.5m 길이의 생명줄 한 가닥만 붙잡고

움직임을 조절했다.

에드워드 화이트 2세가 제미니 4호의 바깥에서 우주 유영을 하고 있다. 사진 : 나사/Jim McDivitt

 

 

La NASA célèbre 50 ans de "marche" dans l’espace 작성자 lemondefr

물 속의 경우와 달리 무중력 진공 상태의 우주공간에서는 사지를 흔드는 자맥질만으로 원하는 곳으로

이동할 수는 없기 때문에 ‘탯줄’(umbilical cord)이라고도 불리는 생명줄이 필요하다.

레오노프의 우주유영은 인류 최초의 ‘선외활동’(extra-vehicular activity·EVA)이기도 했다.

즉 우주선을 타고 대기권 밖으로 나갔다가 우주선을 벗어나서 활동한 첫 사례였다.

약 3개월 뒤인 같은 해 6월 3일에는 미국의 에드워드 화이트 2세가 제미니 제4호 우주선 바깥에서

 21분간 우주유영에 성공해 두번째 우주유영자가 됐다. 당시 그는 7.6m 길이의 생명줄과 손에 든

분사기를 함께 이용해 움직임을 조절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이 기관 소속이던 화이트가 우주유영에 성공한지 50년이 되는 3일

 ‘수트 업’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공개했다.

약 32분인 이 다큐멘터리에는 우주 탐험에 관심이 많은 배우 존 크라이어가 해설자로 나와서

시청자들에게 우주유영의 50여년 역사를 소개하며, 우주유영을 한 우주인들이 인터뷰에서 털어놓는

경험담도 실려 있다.

< 비즈앤라이프팀>

 


입력 : 2015-06-04 11:45:59수정 : 2015-06-04 11:45:59


CopyrightⓒThe Kyunghyang Shinmun, All rights reserved.

 

Posted by mosqueen
|

오랜만에 블로그를 방문했습니다.

2006년 9월 경향신문에서 사회부 기자로 경찰서 마와리를 돌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9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2010년 한국일보로 옮겨 산업부, 사회부(검찰)를 출입했고, 2011년 중앙일보, 같은 해 9월 MBC로 이직해 자리를 잡았습니다.

모스크바 유학시절 러시아 특파원들이 오보를 많이 내는 것을 보고 외교에 있어 언론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많이 생각하게 됐었습니다. 기업이나 공공기관 같으면 정정보도라도 요청할 수 있을텐데, 러시아 특파원의 오보는 국민의 무관심 속에 마치 모든 게 사실인양 확대 재생산되는 기사들이 참 많았습니다. 모스크바에서 특파원으로 활동하면서 기본적인 러시아어 회화도 안되는 기자들도 참 많았고, 한국에선 발로 뛰는 기자라고 하면서 러시아에선 흔히 우라까이(베껴쓰기)만 잘하는 기자도 봤습니다.

2001년 모스크바에서 MBC 통신원, 중앙일보 모스크바 통신원을 하면서 러시아 전문기자라는 꿈을 갖게 됐고, 중 고등학교 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에 들어와 소위 언론고시라는 기자 시험을 준비했던 기억이 납니다.

요즘 주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러시아 관련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습니다. 사람들의 인식 속에 강하게 박혀있는 이미지를 쉽게 바꿀 수는 없지만 그래도 조금씩 조금씩 내 주변의 사람들부터 선입견 없이 그 나라를 바라볼 수 있도록 내가 느낀 러시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지난 5월 뉴스데스크에서 뉴스플러스로 2차 세계대전 승전 기념 70주년 관련 리포트를 제작하면서 그동안 배우고 느꼈던 러시아에 대해 작으나마 자세히 소식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멀고도 가까운 모스크바'는 중앙일보 통신원으로 조인스닷컴에 글을 올리면서 사용했던 일종의 타이틀 입니다. 서울에서 9시간이면 모스크바에 도착할 수 있는데 우리 마음속엔 미국이나 파리보다도 가까운 러시아가 참 멀게만 느껴지는 게 사실입니다.

햇수로는 기자된 지 10년인데, 의미있는 기사, 기억에 남는 기사를 꼽으라면 러시아 관련 보도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2008년 4월 첫 한국 우주인 탄생 취재, 2011년 체르노빌 취재, 북러 정상회담 취재, 2012년 러시아 운석우 취재,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등...

그 중 가장 잊지못할 단독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  *  *

 

“소연을 시작으로 한국이 우주서 큰 꿈 펼치길”

ㆍ소유스 발사 지켜본 세계 첫 여성우주인

8일 우주선 소유스호 발사 1분 전. 우주 발사대에서 1.5㎞가량 떨어진 관람대에는 이소연씨의 성공적 임무 수행을 응원하는 한 선배 우주인이 있었다.

세계 최초 여성 우주인 발렌티나 테레시코바(가운데)와 첫 우주 유영에 성공한 알렉세이 레오노프(오른쪽)가 8일 소유스 우주선 발사 직후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경향신문 임현주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세계 최초의 여성 우주인 발렌티나 테레시코바(72). 그는 발사 30분 전부터 발사 관람대 2층 옥상에 올라 소유스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는 기자에게 “우주선이 참 잘 생겼죠”라며 “전망대 위에 서면 항상 처음 우주로 떠났을 때처럼 가슴이 뛴다”면서 미소를 지었다.

바이코누르 우주기지는 그가 1963년 6월16일 여성 최초로 우주여행에 성공했던 곳. 그는 바이코누르에서 1년에 두 번 우주발사가 있는 날이면 빠뜨리지 않고 찾는다고 말했다. 관람대에서 가장 높은 VIP 자리는 항상 그의 차지. 그는 “발사의 감격과 흥분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이라서 누구에게도 이 자리만은 양보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주선이 강한 굉음과 불꽃을 내뿜으며 하늘로 치솟은 뒤 우주선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는 “소연이를 몇번 만나봤는데 가능성이 많은 사람 같았다”며 “소연이를 시작으로 한국이 우주에서 큰 꿈을 펼치길 바란다”고 말했다.

“45년 전 당신은 ‘조종사’ 자격으로 우주에 갔지만 이씨는 ‘연구원’ 신분으로 우주에 가는데 자격이 다르지 않느냐”고 묻자 “전문적인 지식의 깊이에는 차이가 좀 있을 수 있겠지만 우주에서 임무수행을 마치는 것은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굳이 차이점이 있다면 “유리 가가린이나 내가 지구로 귀환했을 때는 70㎞ 상공에서 낙하산으로 내려왔지만 지금은 귀환 모듈로 더 안전하게 내려오는 것뿐”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구 소련 시절 흐루시초프의 홍보계획의 일환으로 러시아 세번째 우주인과 결혼해 최초의 우주인 부부가 됐다. 그는 “죽기 전에 화성에 꼭 한 번 가보고 싶다”면서 “설령 돌아오지 못해도 좋다”고 말했다.

테레시코바 옆에는 65년 세계 최초로 우주 유영에 성공했던 레오노프도 함께 했다. 비행 중이던 우주선 안을 나와 우주공간에서 20분간 유영했던 레오노프는 소유스호가 하늘로 치솟자 큰소리로 “성공”이라며 어린애처럼 환호했다.

〈 바이코누르 | 임현주기자 〉


 

입력 : 2008-04-09 21:53:41수정 : 2008-04-09 21:53:41


 

우주인을 키우는 ‘별의 도시’…훈련 교수 “소연씨 능력 남달라”

ㆍ첫 우주 탐험 기념 1968년 설립
ㆍ러시아 가가린 우주훈련센터를 가다

11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북동쪽으로 30여㎞ 떨어진 즈뵤즈드느이 고로독. 러시아 말로 ‘별의 도시’란 뜻의 소도시에는 러시아 우주 비행사의 훈련소인 가가린 우주센터가 자리하고 있다.

러시아 ‘우주인의 날’을 하루 앞둔 11일 가가린 우주훈련센터에서 참석자들이 인류 최초 우주인 유리 가가린 동상 앞에서 헌화를 준비하고 있다. <즈뵤즈드느이 고로독 | 임현주기자>

1961년 인류 역사상 최초로 우주를 탐험한 유리 가가린의 이름을 딴 훈련센터는 68년 설립됐다. 러시아의 우주선 발사는 카자흐스탄의 바이코누르 우주센터에서 이뤄지지만 우주비행사의 훈련 및 이에 필요한 연구는 모두 이곳에서 진행된다.

가가린센터 주변은 특급보안시설답게 외부에서 들여다볼 수 없도록 빼곡한 산림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기지 안에는 아무런 치장을 하지 않은 똑같은 모양의 여러 동의 건물이 들어서 있었으며 건물별 기능에 대해서는 철저한 보안이 지켜졌다. 내부에는 실물 크기의 우주선 모형과 비행 모의장치 등 실험과 훈련에 필요한 현대식 시설들이 갖춰져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가린센터가 한국 언론에 공개되기는 처음이다.

훈련센터 관계자는 “훈련센터에는 풍부한 우주경험과 전문지식을 갖춘 교수진이 확보돼 있으며 교육시설도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전했다.

이날 훈련센터에서는 12일 러시아 우주인의 날을 하루 앞두고 조촐한 기념행사가 열렸다.

가가린센터 소장 및 관계자, 항공우주산업 종사자, 우주인 발렌티나 테레시코바와 알렉세이 레오노프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군악대의 연주가 흐르는 동안 제복을 입은 참석자들의 표정에서는 엄숙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이어 이들은 광장 한 가운데 있는 유리 가가린 동상 앞에서 차례로 헌화를 했다. 가가린 동상은 왼손을 뒤로하고 당당하게 서 있는 모습이었다. 정면에서 뒤로 감춰진 왼손에는 꽃 한 송이가 쥐여져 있었다.

‘우주인 홀’에서는 47년 전 유인 우주시대를 열었던 ‘우주인의 아버지’ 가가린을 기념하고 러시아의 우주산업 발전을 기원하는 축하 행사가 마련됐다.

행사장에서 이소연씨와 고산씨를 훈련시킨 블라지미르 교수를 만났다. 그는 이씨에 대해 “수업시간에 전문 용어를 익히는 데 매우 적극적이었고 이해력도 남달랐다”고 기억했다. 그는 “33년째 가가린센터에서 우주인들을 가르치면서 느낀 점은 우주인들은 모두 의욕이 넘친다는 것”이라며 “소연씨의 배출을 계기로 한국의 우주산업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 즈뵤즈드느이 고로독 | 임현주기자 korearu@kyunghyang.com 〉


 

 

8박 9일간의 여정, 생생 러시아 현지 취재기

경향신문 임현주 기자는 지난 4월 6일부터 14일까지 러시아 현지에서 이소연씨의 우주여행을 밀착 취재했다. 이소연씨 어머니 정금순씨와 아버지 이길수씨를 비롯해 세계 최초의 여성 우주인 발렌티나 테레시코바와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편집자 주)

인천 공항에서 만난 이소연씨 부모님

유리 가가린 이 후 47년
12년 전 모스크바 레닌대로에서 처음 봤던 세계 최초 유인 우주인 유리 가가린 동상을 잊을 수가 없다. 순수 티타늄으로 만든 30m 동상에는 러시아인의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가가린 동상 옆에는 조그마한 공 모양이 눈에 띈다. 1961년 4월 12일 우주에서 지구를 보니 지구가 축구공만 하게 작아 보였다는 가가린의 메시지다.

유리 가가린이 우주 시대를 열고 47년 만에 한국 최초 우주인 이소연씨(30)가 우주로 갔다. 우주에 머무는 동안 18가지 과학 실험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대한민국에 본격적인 우주 시대를 열기 위해 첫 스타트를 끊은 이소연씨. 아시아 두 번째 여성 우주인이자 한국 최초 우주인 이소연씨가 우주로 향하는 모습을 현장에서 보기 위해 8박 9일간 긴 여정을 시작했다.

인천공항에서 만난 이소연씨 가족
지난 4월 6일 인천공항. 출국 준비를 하는 이소연씨 부모님을 만날 수 있었다. 어머니 정금순씨(57)는 “그동안 딸 걱정 하느라 신경 많이 써서 병원에서 링거를 맞고 떠나는 중”이라며 피곤한 모습을 내비쳤다. 아버지 이길수씨(58)가 딸에게 바라는 점은 “무엇보다 몸 건강히 살아서 돌아오는 것”이라고 했다. 어린아이를 물가에 혼자 내놓는 것처럼 근심에 가득 찬 표정이었다.

7일 모스크바 남쪽 브누코바 제3공항. 전세기 티케팅을 기다리면서 이소연씨 남동생 이기백씨(25·카이스트 박사 1년)와 잠시 대화를 나눴다. “어려서부터 ‘은하철도 999’ 그림을 그려서 방에 붙여놓던 큰누나가 우주로 향한 꿈을 이루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어서 기쁘다”며 “남들보다 강인한 체력이 뒷받침되니까 모든 임무를 잘 마치고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제가 워낙 허약 체질이라 네 살 때부터 태권도를 했어요. 근데 큰누나는 통통한 게 콤플렉스였나 봐요. 일반인보다 과근육체질이라고 하던데, 사실 누나는 체중을 좀 줄이고 싶어서 운동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해도 잘 안 되니까 그때부턴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운동을 하더라고요(웃음). 자연히 건강 체질이 됐죠."

발사 직전, 가족들의 긴장
모스크바에서 3시간쯤 남동쪽으로 이동하니 카자흐스탄 영토 내에 바이코누르 우주기지가 나왔다. 기온은 영상 15~18도를 웃돌았다. 끝없이 펼쳐진 대지. 기내 안에서 창밖을 보니 서부영화의 배경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바이코누르는 ‘갈색 대지’라는 의미다.

코프모나프트(우주인) 호텔에서 열린 이소연씨 기자회견. 그는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바이러스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유리벽 사이로 마이크를 이용해 인터뷰를 가졌다.

이소연씨 어머니 정금순씨의 편지

“방에서 편안하게 책 읽다가 내려왔어요. 아직 믿기지가 않아요. 혼자 우주로 가는 게 아니라 남·북한 모든 국민의 눈과 함께 간다고 생각합니다. 한 달 전 갑자기 우주인이 교체되는 바람에 우주에서 바를 로션도 못 챙겼어요. 가족 사진, 친구 사진 그리고 가가린센터에서 함께 고생한 사람들의 사진을 챙겼어요. 러시아 우주인들을 위한 깜짝 선물도 몰래 준비했어요. 우주인들 아들 딸 사진이에요. 최근에 모스크바 근교에서 훈련받으면서 가족들도 함께 와서 휴식을 취했거든요. 그때 제 카메라로 사진을 담아서 인화했죠. 저는 열흘 후면 돌아오지만 세르게이 볼코프나 알렉 코노넨코는 6개월 더 머무르다 오잖아요.”

8일 바이코누르 우주 발사대. 한국 첫 우주인 탄생을 지켜보기 위한 인파가 몰려들었다. 이소연씨는 소유즈 TMA-12호 발사 전에 한 번 더 건강 상태를 점검받았고, 우주 멀미약도 챙겼다. 발사 후 48시간 동안 지구를 34바퀴 도는 과정에서 우주 멀미가 심하면 세르게이 볼코프가 멀미 주사를 놓아주기로 했다. 여성의 생리 현상을 방지하는 억제약도 먹었다. 이제 우주선 발사만 남았다.

이소연씨 가족들과 교육과학기술부 박종구 차관은 VIP 발사 전망대로 갔고, 기자단과 관람객들은 일반 전망대로 이동했다. 원활한 취재를 위해 박 차관에게 부탁해 VIP 전망대로 이동했다.

이소연씨 아버지는 “소연이가 중학교 입학했을 때 수학여행을 보내던 기분”이라면서 “잘 돌아오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로켓이 발사되면 그 밑에 불구덩이도 같이 하늘로 오르는 게 걱정된다”며 기도했다.

세계 최초 여성 우주인 발렌티나 테레시코바의 기도
세계 최초 여성 우주인 러시아 발렌티나 테레시코바와의 인터뷰는 아무리 시도해도 ‘불가능’이란 회신만 돌아왔다. VIP 전망대를 뒤졌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 때 러시아 방송국 카메라맨이 “레오노프다!”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1965년 세계 최초로 우주를 20분간 유영한 레오노프. 그는 전망대 왼쪽 2층 건물 베란다에서 외신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재빨리 건물 안으로 들어가 계단을 올랐다. 베란다에서는 우주선 발사대가 정면으로 보였다. 오른쪽 철 계단 끝에 검은색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갈색 머리의 발렌티나 테레시코바(72)가 소유즈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45년 전에 나는 조종사 자격으로 우주에 갔지만 이소연씨는 연구를 하러 가죠. 하지만 우주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해요. 내가 만나본 이소연씨는 이해력이 뛰어났고, 인품도 훌륭한 친구였어요. 소연씨라면 우주에서 맡은 18가지 실험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올 것입니다. 이제 한국 우주 항공 역사에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거예요. 저는 항상 우주선 발사대 앞에 서면 가슴이 설레요. 소유즈를 한번 보세요. 정말 아름답지 않나요? 우주에서 71시간 50분을 보내고 지구로 귀환할 때 낙하산을 타고 내려왔어요. 넓은 호수가 보이는데 ‘우주에서도 살아온 내가 호수에 빠져 죽는 건 아닌가’하고 걱정했죠. 다행히 무사히 귀환을 마칠 수 있었는데, 우주에 가면 누구나 저처럼 긴장되는 순간이 있어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만 대처하면 사고 없이 돌아올 수 있습니다. 이소연씨도 잘해낼 것입니다.”

모스크바 레닌대로,유리 가가린 동상

테레시코바는 발사 10분 전부터 이소연씨를 위해 기도를 시작했다. 러시아는 미국과 달리 발사 전에 카운트를 하지 않고 정시에 발사한다. 순간 건물이 흔들렸고, 공항 주변에서 들리는 비행기 소음을 100배쯤 압축시킨 것 같은 굉음이 들렸다. 테레시코바는 “소연씨, 놀라지 말고 꽉 잡아”라고 외쳤다.

10일, 모스크바 북쪽 MCC 임무통제센터에서 소유즈선과 ISS(국제정거장) 도킹을 기다렸다. 러시아 관계자들은 “모든 것이 계획대로 잘 진행되고 있다”고 자신했다. 이소연씨가 해치를 열고 환하게 웃는 표정으로 ISS에 들어가는 모습은 신비로웠다. 이소연씨는 밝고 씩씩하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12일 러시아 ‘우주인의 날’을 맞아 모스크바 외곽에 있는 가가린 훈련센터도 들렀다. 그곳에서 만난 교수, 우주인 관계자들은 “이소연은 적극적이고, 남을 배려할 줄 알고, 친화력이 좋다”고 입을 모았다. 19일 귀환 이후 이소연씨는 항공우주연구원에 선임연구원 자격으로 한국 항공우주산업 분야의 일을 하게 된다. 이소연씨의 우주 방문을 계기로 한국 항공우주산업에 발전이 있기를 기대해본다.


1 우주에서의 24시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생활하는 우주인의 하루는 미 항공우주국(NASA)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영국 시간(그리니치 표준시)에 따라 움직인다. 지구 주변을 90분마다 한 번 돌기 때문에 하루에 낮과 밤이 16번 반복된다. 생체 시계가 고장 날 수밖에 없어 잠잘 때는 눈가리개와 귀마개가 필수다. 귀마개는 우주선 내 70데시벨(dB) 이상의 기계 소음을 차단하기 위함이다. 수면에 방해를 주는 소음은 40dB 이상이다. 중력이 작용하지 않아 코골이가 사라진다는 점도 특이하다. 코골이는 누워서 잘 경우 혀가 중력에 의해 기도 쪽으로 밀려들어가면서 일어나는 증상이기 때문이다.

우주인은 통상 오전 6시 시설 점검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식사 시간은 6시 40분 정도. 볼일은 진공청소기처럼 생긴 화장실을 이용한다. 남녀 공용이다. 소변은 고무호스처럼 생긴 튜브를 사용하고, 대변은 좌변기에 나 있는 직경 10cm의 구멍에 정확히 맞춰야 한다. 배설물이 무중력 환경에서 둥둥 떠다니면 난감한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이소연씨는 우주로 떠나기 전, 이 같은 시설을 이용해 대소변을 해결하는 훈련을 꾸준히 받아왔다.
점심시간은 대개 12시부터 1시 사이다. 좁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만큼 하루 한 시간씩 운동은 필수다. 사이클 운동기구를 사용하거나 우주용 역기를 들기도 한다. 역기는 중력을 느낄 수 있도록 특수 제작됐다. 운동을 마치고 샤워할 때는 그저 수건에 물을 묻혀 닦는 수준이다. 하루를 마감하는 잠자리는 오후 9시 반부터이며 벽에 고정된 침낭으로 만족해야 한다.

2 우주에서 겪을 법한 병들
이소연씨가 우주에 머무는 시간은 12일에 불과해 심각한 후유증은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장기간 우주에서 생활할 땐 우주 불면증, 골다공증, 피부 노화, 부종(부어오름)의 네 가지 증상을 감내해야 한다.

우주 골다공증의 원인은 무중력 때문이다. 우주선 내에선 지구 중력에 맞서 몸을 일으키거나 걷는 데 필요한 근육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근력이 약해진다. 뼈의 골밀도가 감소해 골다공증의 진행 속도가 빨라진다. 한 달가량 우주에서 생활하면 1% 정도 낮아진다. 우주정류장에서 1년 이상 지냈던 우주비행사가 지구로 귀환한 뒤 한동안 누워 있거나 휠체어 신세를 지는 이유다. 무중력 상태에서는 척추의 뼈와 뼈 사이 연골, 팔다리의 관절이 늘어나 키가 4cm 이상 커질 수 있지만 근육과 신경이 함께 늘어나지는 않는다. 이소연씨도 하루 만에 키가 3cm 늘었다.

피부가 나빠질 가능성도 있다. 우주는 피부 건강에 관한 한 최악의 환경이다. 지구에서는 공기 중 산소 비율이 20%(나머지는 질소)에 불과하지만 우주복 안은 100% 산소로 채워진다. 이때 과잉 생산된 활성(유해)산소가 정상 피부세포에 손상을 주어 피부 노화를 촉진한다. 우주 부종도 나타난다. 지구에선 하반신 쪽으로 피가 몰리지만 우주에서는 머리 쪽에 피가 쏠려 얼굴은 늘 퉁퉁 부은 상태다.

글 / 임현주 기자(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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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입력 2011.09.05 00:29 / 수정 2011.09.05 00:29
 

[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347> 러시아 이동파(移動派) 화가

“지배계층 위한 그림은 싫다” 열차로 러시아 누비며 무료 전시회하던 그들




러시아의 ‘이동파(移動派·Peredvizhniki)’ 화가를 아십니까? 19세기 러시아에선 영하 40도의 추운 겨울에도 그림을 든 채 열차로 시베리아 곳곳을 누비고 다니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림은 황제와 귀족 등 지배계층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라며 “가난한 농민도, 노예도 그림을 감상하고 평가할 권리가 있다”고 외쳤습니다. 이동파 화가를 소개합니다.

임현주 기자


왕립미술학교 자퇴 수리코프 등 14명



러시아의 이동파 풍경화가 이반 시시킨이 그린 ‘소나무 숲의 아침(1889년 작)’. 이동파 화가들은 귀족뿐 아니라 가난한 농민 등 일반인들도 그림을 감상할 권리가 있다며 열차를 타고 길게는 보름이상 시베리아 등지를 돌아다니며 전시회를 열었다. [모스크바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웹사이트]


러시아 미술사의 기원은 18~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표트르 대제(1672~1725·로마노프왕조 4대 황제)는 발트해 연안의 늪지대를 계획도시로 조성해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했다. 대제는 이곳에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보다 더 화려한 여름궁전을 짓고, 유럽 왕족들을 초대해 성대한 파티를 열었지만 유럽 강대국들은 러시아를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독일에서 시집온 예카테리나 2세(EkaterinaⅡ·1729 ~1796)는 겨울궁전(에르미타주·Hermitage Museum·프랑스어로 ‘은둔소’를 뜻함)을 세우고 값비싼 보석과 고가의 미술품을 수입해 모으기 시작했다. 영국 대영박물관과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이어 세계 3대 박물관에 꼽히는 겨울궁전은 현재 300만 점 이상의 그림을 소장하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렘브란트 등 유명 화가의 작품 원본이 전시돼어 있다.

 하지만 예카테리나 2세가 유럽에서 들여온 고가의 미술품은 러시아 고유의 작품이 아니었다. 여제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왕립미술학교를 세우고 학생들을 이탈리아·프랑스 등으로 유학을 보내 그림을 배워오게 했지만 새로운 무언가를 얻기는 힘들었다.

 1870년 왕립미술학교 학생 14명은 유럽 미술만 숭배하는 풍토에 반발해 “졸업작품의 주제를 자유롭게 선택하게 해 달라”고 학교 측에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얼마 후 14명은 단체로 자퇴서를 내고 “더 이상 지배층을 위한 그림은 그리지 않겠다”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미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며 자신들이 그린 그림을 들고 러시아 방방곡곡을 순회하며 무료로 전시회를 개최했다.

 이들은 짧게는 5~6시간, 길게는 보름 이상씩 기차를 타고 이동했다. 그래서 러시아어로 이동하는 사람들이란 뜻의 ‘이동파’란 이름이 붙여졌다.

귀족 초상화 대신 서민·풍경 즐겨 그려



영국 대영박물관과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이어 세계 3대 박물관에 꼽히는 ‘겨울궁전’. 유명화가들의 원본이 전시되어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겨울궁전(http://www.hermitage museum.org)이나 모스크바 트레티야코프 미술관(http://www.tretyakovgallery.ru)은 16~17세기 그림부터 전시하고 있다. 이 시기의 작품은 대부분 해외에서 고가에 들여온 것이다.

 18세기 그림부터는 주인공이 달라진다. 황제·귀족의 초상화나 고급 드레스, 가슴에 달린 훈장 등이 사라지고 평상복 차림에 바느질을 하는 여성, 밭 매는 아낙네, 기타 치는 소년이 등장한다.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섬이 아닌 러시아 자작나무가 그려지고, 정치사회적으로 모순된 러시아의 현실이 풍자돼 있다.

 이동파 화가로는 이반 크람스코이(Ivan Kramskoy· 1837~1887)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풍경화 전문가인 이반 시시킨(Ivan Shishkin·1832~1989)이나 바실리 수리코프(Vasily Surikov·1848~1916), 일리야 레핀(Ilya Repin·1844~1930)도 유명하다. 풍자적인 그림을 그렸던 바실리 페로프(Vasily Perov·1833~1882), 이사크 레비탄(Isaac Levitan·1860~1900) 등도 있다.

 이동파 화가의 활동은 반세기가량 지속됐지만 러시아 미술계에서는 이들을 이단아로 취급하면서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았다. 정부의 지원도 없었다.

 상인 파벨 트레티야코프(Pavel Tretyakov·1832~ 1898)는 이들의 숨은 재능과 가능성을 알아보고 물심양면으로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11세기 러시아 성화부터 이동파 화가들의 그림에 이르기까지 40년 동안 그림을 모았다. 활동 중인 화가들에게는 경제적으로 도움을 줬다. 그림을 그릴 때 물감 색이 밝을수록 비용이 많이 들었기 때문에 늘 어두운 색으로 그림을 그렸던 레비탄에게는 그의 그림 가치보다 몇 배나 더 후한 값을 쳐주고 그림을 사오기도 했다. 그렇게 모은 그림이 6만여 점이나 된다.

 트레티야코프는 자신이 죽으면 집과 그림을 모스크바 시에 기증하겠다고 약속했다. 모스크바시는 그의 이름을 따서 만든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을 운영하고 있다.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에 6만여 점 소장



(위에서부터) 바실리 페로프의 ‘세남매’, 이사크 레비탄의 ‘볼가강’과 ‘황금의 가을’, 이반 크람스코이의 ‘이름없는 여성’.
이동파 화가 페로프의 작품 중에는 ‘세 남매(트로이카·사진 2)’가 유명하다.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세 남매가 물을 길으며 어렵게 생계를 유지해 나간다는 스토리가 배경에 깔려 있다. 페로프는 앞으로 이들이 평탄한 길을 갈 수 있기를 기원하면서 그림을 그렸다. 왼쪽 벽면 맨 위쪽에 있는 작은 창문에 호롱불을 그려 넣었다. 작은 희망의 불씨를 피워놓은 것이다.

 풍경화를 전문으로 한 시시킨의 작품에는 사람이나 동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데 ‘소나무 숲의 아침(사진 1)’에는 곰 네 마리가 그려져 있다. 시시킨은 이 그림을 통해 양지와 음지, 새싹과 꺾인 나무를 보면서 인생의 탄생과 죽음, 기쁨과 고통의 희로애락을 담고자 했다.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에 걸려 있는 이 작품 속의 곰은 시시킨이 사망한 후 그의 애제자가 ‘그림이 뭔가 허전해 보인다’며 그려넣은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진정으로 시시킨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시시킨의 작품을 제자가 망쳐놓았다며 슬퍼하기도 했다고 한다.

 레비탄은 세계적인 드라마작가 안톤 체호프(Anton Chekhov·1860~1904)의 절친한 친구였다. 어린 시절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일찍 부모를 여의고 외롭게 자랐던 레비탄은 가족의 사랑이나 우정을 알지 못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틈날 때마다 붓을 잡았지만 가난한 형편 때문에 값비싼 밝은색의 물감을 살 수가 없었다. 처음에 레비탄이 그렸던 그림들은 ‘볼가강(사진 3)’처럼 회색빛으로 가득했다.

 그랬던 레비탄은 20세 무렵 체호프를 만나면서 인생의 큰 변화를 맞게 됐다. 의사이자 작가였던 체호프는 레비탄의 안타까운 사정을 알고 자신이 번 돈으로 물감을 사주고, 여름이면 다차(별장)로 초대해 몇 개월씩 먹고 쉬면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도와줬다.

 체호프를 통해 사랑과 우정을 알게 된 레비탄은 이후 ‘황금의 가을(사진 4)’이란 작품으로 트레티야코프의 눈에 띄게 된다. 트레티야코프는 당시 레비탄 그림의 시세보다 4~5배 이상 더 쳐주고 그림을 샀다. 이 작품은 나중에 프랑스 전시전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이동파는 1923년 마지막 전시를 갖고 혁명정부 하에서 조직개편을 위해 해체됐다. 정부의 후원 없이 50년 가까이 지속된 이들의 사상과 작업은 후대의 러시아 미술과 서구 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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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만주철도 귀국길 중국 지도부 접촉 가능성

러시아 방문 뒤 첫 중국 경유



러시아 방문을 마친 김정일 국방위원장 일행을 태운 특별열차가 25일 오후 중국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의 국경도시인 만저우리(滿州里)역으로 들어오고 있다. [네이멍구=연합뉴스]

4박5일의 러시아 방문을 마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특별열차가 25일 중국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의 중·러 국경도시인 만저우리(滿洲里)를 통해 중국으로 진입했다. 하바롭스크 등 러시아 극동지역을 거치는 시베리아횡단철도(TSR) 대신 중국 둥베이(東北)지역을 지나는 만주횡단철도(TMR)를 이용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23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시베리아 울란우데 근처 소소노비 보르(소나무 숲)에서 2시간10분 동안 북·러 정상회담을 열고 이날 오후 7시20분쯤 울란우데 역을 출발해 귀국길에 올랐다.

 김 위원장이 철도를 이용해 러시아를 방문한 것은 2001, 2002년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이지만 중국을 거치는 것은 처음이다.

이와 관련, 중국의 한 대북 소식통은 이날 “김 위원장이 귀로에 중국 지도부와 접촉할 가능성이 크다”며 “9명의 정치국 상무위원 중 한 명이 특별열차에 동승해 회담하거나 동북 3성의 모처에서 전격 회동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런 목적 없이 만주철도를 이용할 가능성은 낮다는 지적이다. 러시아를 방문한 뒤 귀로에 이동거리를 1500㎞ 단축하기 위할 목적으로만 중국을 통과한다면 외교적 결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과 중국 지도자가 둥베이 지역에서 회동한다면 선양(瀋陽)·하얼빈(哈爾濱)·창춘(長春)을 비롯한 대도시가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베이징의 외교 소식통은 “김 위원장이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의 회담 내용을 중국에 통보하는 형식을 통해 중국과의 전략적 소통을 강화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낼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김 위원장이 헤이룽장(黑龍江)성 치치하얼(齊齊哈爾)∼퉁랴오(通遼)∼선양∼단둥(丹東)을 지나는 1600㎞짜리 최단 루트, 치치하얼∼하얼빈∼창춘∼선양∼단둥을 거치는 고속 루트, 치치하얼∼하얼빈∼무단장(牧丹江)∼투먼(圖們)을 거쳐 함경북도로 이어지는 루트의 세 가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 귀국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함경북도로 이어지는 노선을 택할 경우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 총리를 만날 가능성도 있다.

 한편, 빅토리아 뉼런드 미 국무부 대변인은 24일 정례 브리핑에서 북·러 정상회담에서 핵실험 잠정 중단 의사 등을 밝힌 것과 관련,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중단할 의지가 있다면 이는 환영할 일이지만 6자회담을 재개하기에는 불충분하다”고 말했다.

하얼빈(중국)=장세정 특파원
이르쿠츠크(러시아)=임현주 기자

◆만주횡단철도(TMR)=중국 만주 북부 만저우리에서 하얼빈과 창춘을 거쳐 다롄까지 이어지는 철도. 중국 창춘철도라고도 한다.


메드베데프 ‘소련 때 빚 12조’ 김정일에게 언급

시베리아 숲속서 정상회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왼쪽)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24일 러시아 시베리아 울란우데시 인근의 소스노비 보르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24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의 시베리아 울란우데에서 동남쪽으로 20㎞ 떨어진 소스노비 보르(소나무 숲)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북·러 정상회담을 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민감한 안건을 들고 나왔다. 바로 소련 시절 북한이 빌린 뒤 갚지 못한 부채다. 러시아 리아노보스티 통신은 “북한이 소련 시절 얻었던 110억 달러(약 12조원) 상당의 부채에 대한 문제도 회담에서 언급됐다”고 전했다.

 세르게이 스토르차크 러시아 재무차관은 “북한은 러시아가 소련을 계승한 국가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며 “향후 부채 상환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북한에 제공된 자금은 1달러당 60코페이카(1루블=100코페이카)의 환율로 지급됐다”며 “루블화 재계산 방법과 채무 지불 순서에 대한 합의도 양국 간에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울란우데(러시아)=임현주 기자


“김정일, 핵무기 실험 잠정 중단 용의”

북·러 정상, 울란우데 ‘소나무 숲 회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24일 러시아 울란우데 외곽 소스노비 보르(소나무 숲)에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뒤 벤츠 승용차를 타고 회담장을 나오며 러시아 관리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김 위원장 옆에 동승한 여성은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는 김옥이다. [울란우데 이타르타스=연합뉴스]

김정일(69) 북한 국방위원장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46) 러시아 대통령은 24일 시베리아 울란우데 근처 소스노비 보르(소나무 숲)에서 연 북·러 정상회담에서 6자회담 재개 문제와 함께 북한의 핵무기 생산과 핵실험 잠정중단(모라토리엄)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했다.

 이날 오후 2시에 시작한 회담은 두 정상의 독대로 진행됐으며 약 2시간10분 만인 4시10분쯤 끝났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회담이 끝난 뒤 “김 위원장과 허심탄회하고 실질적인 대화를 했다”며 “북한이 자국을 거쳐 남한까지 이어지는 천연가스 수송관 연결을 지지함으로써 수송관 건설에 합의할 수도 있다”고 낙관적으로 전망했다. 그는 “내가 아는 한 북한은 (천연가스 수송관에 대한) 3자 프로젝트를 시행하는 데 관심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나탈리아 티마코바 러시아 대통령 대변인은 회담을 마치고 “북한은 조건 없이 6자회담을 재개할 용의가 있으며 핵미사일 생산과 실험을 잠정중단할 준비도 돼 있다”고 전했다.

 메드베데프는 회담이 열리기 4시간 전인 이날 오전 10시 현장에 미리 도착했다. 김 위원장은 오후 1시50분쯤 검은색 벤츠 S클래스를 타고 경찰차 등 차량 30여 대의 경호를 받고 회담장인 제11공수타격여단 영내로 들어섰다. 벤츠가 1990년대 중반 모델이어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놀랐다고 러시아 언론들이 전했다.

 이타르타스통신 등 현지 언론은 이날 회담이 화기애애하게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짙은 청색 양복에 밝은 하늘색 넥타이를 맨 메드베데프는 김 위원장을 반갑게 맞으며 인사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만나서 반갑습니다. 10년 전에 처음 보고 다시 만나는 것 같습니다”고 말했다. 이에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 평양에서였죠. 그때의 따뜻한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고 답했다. 메드베데프는 2000년 평양에서 열린 블라디미르 푸틴 당시 러시아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 정상회담에서 푸틴을 수행했다. 김 위원장은 “방문 일정이 계획대로 잘 진행됐느냐”는 메드베데프의 물음에 “상당히 즐겁고 기분 좋은 시간이었다” 고 답했다.

 김 위원장은 회담 종료 뒤에도 잠시 소스노비 보르에 머물다가 오후 6시30분에야 메르세데스 벤츠 승용차를 타고 영내를 나왔다. 그 뒤 특별열차를 타고 울란우데역을 떠났다. 김 위원장은 러시아횡단철도(TSR)에서 만주횡단철도(TMR) 노선으로 갈아탄 뒤 중국을 거쳐 귀국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현지 소식통은 전했다. 중국을 거치는 동안 중국 최고지도자급 인사와 현지에서 만날 가능성도 상당히 크다고 중국 현지 소식통이 전했다. 27일 블라디보스토크 방문이 예정돼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와 만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울란우데(러시아)=임현주 기자

◆소스노비 보르(Sosnovyi Bor)=러시아어로 ‘소나무 숲’을 뜻한다. 부대가 약 20m 높이의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이런 별칭이 붙었다. 과거 소련군 최고사령부 동부 참모부가 있던 곳으로 고위인사들의 만남을 위한 시설이 갖춰져 있다. 1990년대 초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이 휴식을 위해 머물렀다.


“김정일, 메드베데프 만난 뒤 만주철도 타고 귀국”

러시아 소식통 … 사상 첫 중·러 경유



계단 대신 경사판 딛고 열차 타는 김정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21일 러시아 부레야 방문 후 전용 열차에 오르고 있다. 난간이 있는 경사판을 이용하고 있다. 김 위원장이 왼손도 사용하고 살도 붙었지만 계단을 이용하기 어려울 정도의 뇌졸중 후유증 때문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부레야=연합뉴스]

러시아를 방문 중인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24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친 뒤 중국을 거쳐 귀국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 현지 소식통은 23일(현지시간) “김 위원장이 러시아 동시베리아의 울란우데에서 정상회담을 한 뒤 러시아횡단철도(TSR)에서 중국 만주횡단철도(TMR) 노선으로 갈아탈 것으로 보인다”며 “이럴 경우 이 열차는 중국 만저우리(滿洲里)시를 통과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두 철도 노선은 울란우데 동쪽 카림스카야에서 교차되기 때문에 김 위원장이 TMR을 이용할 경우 1500㎞가량 이동거리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이 러시아 방문 후 중국을 거쳐 귀국하는 것은 처음이다. 이에 대해 북한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중국을 거쳐 귀국할 경우 건강 문제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오전 9시쯤 동시베리아 부라티야 자치공화국 주도인 울란우데에 도착했다.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정상회담 장소는 울란우데에서 동쪽으로 50㎞ 떨어진 ‘소스노비 보르(소나무 숲)’가 유력하다. 예전에 소련군 동부지역 최고사령부가 있었던 곳으로 아직도 고위 인사들을 위한 시설이 그대로 남아 있다. 현재는 러시아군 동부군관구 소속 제11 공수타격여단이 주둔하고 있다. 러시아의 리아 노보스티 통신은 김 위원장이 러시아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와 면담을 할 수도 있다(may meet)고 23일 보도했다.

울란우데=임현주 기자

MB·김정일, 450㎞ 거리 두고 각각 정상회담

MB는 울란바토르, 김정일은 울란우데 … 눈길 끄는 두 사람 동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21일(현지시간) 오전 러시아 극동 아무르주의 부레야역에서 환영을 의미하는 빵과 소금을 들고 나온 현지 여성들을 만나고 있다. 왼손으로 쟁반을 받치고 있다. [부레야 AFP=연합뉴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러시아 방문 이틀째인 21일(현지시간) 하바롭스크에서 서북쪽으로 약 680㎞ 떨어진 아무르주(州)의 부레야 수력발전소를 방문한 뒤 23일 북·러 정상회담이 예정된 동시베리아 바이칼 호수 인근의 울란우데로 이동했다. 21일부터 중앙아시아·몽골 순방길에 오른 이명박 대통령은 23일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 머물 예정이어서 남북한 정상이 러시아와 몽골 접경지역 반경 450㎞ 이내에 동시 체류할 가능성이 커졌다. 중국을 방문 중인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도 22일 방중 일정을 마치고 이날 몽골을 잠시 방문한 뒤 같은 날 일본으로 향할 계획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 대통령과 바이든 부통령이 만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현지 인터넷 매체인 포털 아무르는 김 위원장이 특별열차 편으로 이날 오전 10시30분(현지시간) 부레야 발전소에서 가장 가까운 부레야역에 도착했다고 사진과 함께 보도했다. 리아노보스티 러시아 관영통신은 “김 위원장은 기차역에서 빅토르 이사예프(63) 극동관구 대통령 전권대표와 올레그 코제마코 아무르 주지사의 안내를 받으며, 북한에서부터 특별열차로 싣고 온 메르세데스 벤츠 승용차를 타고 부레야 발전소로 이동했다”고 전했다.

 통신은 “김 위원장이 탄 특별열차는 17량으로 구성돼 있다”며 “그중 4량은 김정일 위원장을 수행하는 이사예프 러시아 극동관구 대통령 전권대표와 러시아 경호요원들이 쓰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별열차 첫째 객차에는 집무실, 둘째 객차에는 침실, 셋째 객차에는 통신실이 있고 다른 차량들에는 경호요원과 수행요원들이 타고 있으며 벤츠 차량도 1량을 쓰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5월 중국 방문 때부터 17량짜리 기차를 탔다. 2001년, 2002년 러시아 방문 때는 13량이었다. 객차량이 17량에 머물러 후계자 정은이 동행하진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정은이 동행했다면 적어도 서너 량은 더 추가됐어야 한다는 얘기다.

 김 위원장을 수행 중인 하바롭스크 주지사를 지낸 이사예프는 10년 전 김 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59) 러시아 대통령이 한반도종단철도(TKR)와 시베리아횡단열차(TSR)를 잇는 사업을 논의할 때 중책을 맡았던 인물이다. 김 위원장은 이사예프의 안내로 발전소를 둘러봤다.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이 발전소에서 푸틴 총리를 만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김 위원장과 푸틴 총리의 면담은 이뤄지지 않았다.

 러시아 극동지역 최대 규모의 수력발전소인 부레야 발전소는 러시아에서 북한을 경유해 남한으로 이어지는 가스관 건설 계획을 제안할 때 중요한 전력 공급원으로 꼽혔던 곳이다. 러시아는 북한을 통과해 남한으로 이어지는 송전선을 건설한 뒤 이곳에서 생산된 잉여 전력을 남북한에 공급한다는 구상을 해왔다.

 김 위원장은 발전소를 둘러본 뒤 점심식사를 마치고 오후 4시쯤 다시 열차 편으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는 울란우데 지역으로 이동했다. 김 위원장은 전날 하산을 통해 러시아에 들어온 뒤 다른 곳에 들르지 않고 곧바로 북상, 오전 4시쯤 하바롭스크 역에 도착해 30분쯤 정차한 뒤 아무르주 부레야로 이동했다.

유지혜·임현주 기자

◆부레야 수력발전소=2009년 건설된 러시아 극동지역의 최대 수력발전소. 물을 저장하는 콘크리트 댐의 길이가 810m, 높이는 140m에 이른다. 발전설비는 335㎿ 용량의 터빈 6개로 구성돼 있으며, 최대 출력은 2010㎿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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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8월 18일 ~ 신(新)러시아 탄생 그 후 20년

옐친은 탱크 올랐고, 푸틴은 ‘21세기 표트르’ 꿈꾼다
강대국 부활시킨 그들의 리더십


1991년 8월 18일 공산당 보수파가 쿠데타를 일으키자 이튿날 보리스 옐친 당시 소련 산하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이 모스크바의 러시아공화국 의사당 앞에 배치돼 있던 진압군 탱크 포탑 위에 올라가 국민에게 쿠데타에 맞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중앙포토]

모스크바 크렘린궁에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59) 총리의 집무실에는 표트르 대제(Pyotr I·1672~1725)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표트르는 ‘강한 러시아’를 위해 부국강병 정책을 추구했던 차르(czar·황제)다. 러시아를 유라시아 두 대륙의 강대국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로 쌍두 독수리 문장을 채택한 인물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표트르의 도시라는 뜻으로 그가 건설했다) 출신인 푸틴은 표트르 대제를 닮으려고 애쓰고 있다.

 그런 푸틴 총리가 지난 1일 “미국은 세계 경제에 기생충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푸틴은 전날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의회 지도자들이 연방정부 부채상한 증액 협상을 타결하자 “미국이 엄청난 부채를 쌓아가면서 전 세계 금융을 위협하고 있다”며 독설을 퍼부었다. 러시아 지도자가 미국을 이토록 원색적으로 비난한 것은 과거 냉전시대 소련에서도 드문 일이다.

 푸틴이 이처럼 큰소리를 칠 수 있는 배경은 러시아의 신장된 국력이다. 러시아의 명목 GDP는 1조4650억 달러로 세계 11위다(2010년 국제통화기금 자료). 스페인(1조4099억 달러), 호주(1조2355억 달러), 멕시코(1조392억 달러), 한국(1조70억 달러) 등이 뒤를 따르고 있다. 1인당 명목 GDP는 1만440달러로 세계 40위다(세계은행 2010년 기준).


 공산국가 소련이 1991년 8월 무너지고 민주국가인 신러시아가 탄생한 지 이달로 20주년을 맞는다. 오랜 공산통치로 인한 무능과 비효율로 가난하고 힘없는 나라로 재출발했던 러시아는 20년이 지난 지금 강대국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 중심에는 푸틴(2000~2008년 대통령 연임 뒤 현재 총리)의 리더십이 있다.

  급속한 시장경제 도입에 따른 혼란을 겪었던 초대 러시아 대통령 보리스 옐친은 99년 말 국가보안위원회(KGB) 출신의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를 대통령 대행으로 임명한 뒤 물러났다. 푸틴은 ‘안정’과 ‘대국 재건’을 기치로 내걸고 강국 러시아 복원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그는 국력 강화에 자원을 최대한 활용했다. 러시아는 현재 석유와 가스를 비롯한 에너지와 광물을 앞세운 자원외교로 국제사회의 강자로 자리 잡고 있다. 88년 소련 시절 세계 최대 산유국이었던 러시아는 소련 붕괴 뒤 석유 생산량이 8위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푸틴 집권 뒤 석유생산량 1위, 천연가스 생산량·매장량 1위(2010년 기준)로 다시 올라섰다.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은 2573억 달러(275조원)로 수출 총액의 3분의 2에 이른다. 푸틴은 전 세계 천연 가스 생산량의 20%를 차지하고 있는 민영기업 가즈프롬을 2004년 국유화했다. 그가 ‘에너지 차르’로 불리는 이유다. 푸틴 집권 후 경제성장률은 매년 4% 이상(2009년 제외)을 기록했다.

 최근 들어선 이라크전·리비아전과 관련, 미국과 서유럽에 대항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러시아는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과 2018년 FIFA 월드컵까지 유치했다. 군사적으로는 신형대륙간탄도탄(ICBM) 블라바를 개발하며 핵 보유국 지위를 강조하고 있다. 그 결과 러시아는 21세기 들어 국력과 함께 과거의 자신감까지 회복했다.

 하지만 푸틴의 강권 리더십 이면의 그늘에 대한 우려도 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ev·80) 전 소련 대통령은 “푸틴이 이끄는 통일러시아당은 소련공산당을 연상시킨다. 푸틴은 러시아의 역사를 거꾸로 돌려 놓으려 한다”며 거세게 비판했다. 언론 탄압과 빈부 격차 때문이다.

임현주 기자


◆신(新)러시아=1991년 8월 소련 공산당 보수파의 쿠데타(8월 18~21일)가 국민 저항으로 실패하면서 공산체제가 무너지고 민주국가로 재탄생한 러시아를 가리킨다. 초대 대통령이었던 보리스 옐친은 체제와 사상의 혼란 속에 혼돈의 시대를 보냈고, 2000년 취임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강력한 리더십으로 자원외교를 강화하고 국가 위상을 높이면서 안정기를 맞았다.



옐친, 1991년 쿠데타 진압 … 실권 장악

소련 무너뜨린 역사적 그날


1996년 6월 록 콘서트에 참석한 보리스 옐친 당시 러시아 대통령이 무대 위에서 댄서들과 춤을 추고 있다. [로스토프 AP=연합뉴스]

1991년 8월 러시아 의회에서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에게 메모를 건네며 낭독하라고 윽박지르고 있다. [모스크바 AFP=연합뉴스]


1998년 8월 옐친 대통령(오른쪽)이 크렘린궁에서 업무 보고를 위해 들어온 푸틴 연방보안국 국장에게 자리를 권하고 있다. [모스크바 AFP=연합뉴스]


그것은 세계를 뒤흔든 사건이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의 일이다. 1991년 8월 19일 보리스 옐친(1931~2007) 당시 러시아 대통령이 모스크바의 러시아공화국 의사당 앞에서 탱크 포탑 위에 올라탔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대통령의 페레스트로이카·글라스노스트(개혁·개방정책)에 반기를 든 공산당 보수파가 쿠데타(18~21일)를 일으켜 그를 체포하려 혈안이 돼 있던 때였다.

옐친은 탱크 위에서 러시아 국민에게 “쿠데타 세력에 당당히 맞서자”고 촉구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리려던 세력에 맞선 옐친은 ‘용기 있는 리더십’으로 공산주의 소련을 무너뜨리고 러시아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이 역사적 장면이 신(新)러시아의 시작이다.

 일요일이던 그해 8월 18일 밤 국가보안위원회(KGB)와 국방·내무부의 공산당 보수 강경파들은 국가비상사태위원회를 구성하고 흑해 크림반도의 별장에서 휴가 중이던 고르바초프를 찾아가 사임을 요구했으며 이를 거절한 고르바초프를 별장에 감금했다. 그리고 탱크부대를 모스크바에 진입시켰다. 쿠데타 세력은 고르바초프로부터 핵미사일 발사장치까지 빼앗았다. 모스크바 인근 별장에서 이 소식을 들은 옐친은 쿠데타에 대항하자는 내용의 대국민 성명을 작성했다.

 이튿날 역사적인 탱크 포탑 연설이 이뤄졌다. 옐친은 쿠데타군이 모스크바를 장악할 경우 임시정부를 만들어 대항할 계획까지 세워놓았다. 쿠데타군이 모스크바 시내로 밀고 들어온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수천 명의 옐친 지지자들이 의사당 주변으로 몰려들어 바리케이드를 설치했다. 20일 청년 3명이 쿠데타군의 총에 맞아 숨지자 더 많은 시민이 모여 항의했다. 국제적 비난도 거세졌다. 그러자 쿠데타에 참가한 군부대는 갈팡질팡하다 21일 탱크를 철수시켰다. 쿠데타 주모자 대부분은 곧바로 체포됐다.

 공산체제로의 복귀를 꾀했던 쿠데타는 72시간 만에 진압됐다. 옐친은 쿠데타 진압을 계기로 공산당의 활동을 금지시키는 등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손발을 묶었다. 정치적 치명상을 입은 고르바초프는 그해 말 사임하고 옐친이 신러시아와 독립국가연합(CIS)을 이끄는 최고 권력자가 됐다.

정현목 기자



푸틴 vs 메드베데프 … 내년 3월 또 한번 선택

중·장년층 - 청년층 지지 엇갈려

내년 3월로 다가온 러시아 대선은 향후 러시아의 20년을 좌우하는 중대한 기로다. 옛 소련 공산체제를 경험한 중·장년층과 ‘소련’ 자체를 모르는 젊은 층이 어떤 선택을 내릴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강한 러시아’의 부활을 꿈꾸는 이들은 푸틴을 지지한다. 특히 미국에 맞섰던 강대국이었던 옛 소련에 향수를 가진 중·장년층은 푸틴의 안정적인 지지 기반이다. 반면 지식인과 청년층 사이에는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추구하는 ‘서구식 근대화’가 필요하다는 여론도 확산되고 있다. 독선과 부패로 얼룩진 러시아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달 러시아 여론조사기관 라바다가 조사한 결과 푸틴과 메드베데프의 선호도는 각각 68%, 66%(복수 선택)로 팽팽했다. 카리스마와 리더십을 앞세운 푸틴이 최근 수년간 80%대 지지율을 보인 것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푸틴은 5월 여당인 통일러시아당의 구심력이 떨어지는 것에 위기감을 느끼고 새로운 정치조직 ‘국민전선’을 결성했다. 대선을 향한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메드베데프는 “러시아의 미래는 새로운 기술에 있다”고 주장하며 근대화가 러시아의 최우선 과제임을 강조한다. 이는 푸틴을 수구세력으로, 자신을 개혁세력으로 포장해 재선 주자로 각인시키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러시아 정치 전문가들은 “대선 출마를 놓고 둘 간에 합의가 이뤄졌다는 추측도 있지만 둘 모두 대선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하고 있다. 최근 양측의 자발적인 응원부대가 결성되는 등 이번 대선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어느 때보다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러시아의 미래를 내 손으로 결정하겠다는 바람이다.

민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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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21일자 중앙일보


브레이빅, 십자군 전쟁 ‘사자왕’ 리처드 1세가 우상

6개 키워드로 본 테러범 정신세계

노르웨이 테러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25일 오슬로 시청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서로 부둥켜 안고 슬퍼하고 있다. [오슬로 AP=연합뉴스]

노르웨이 연쇄테러범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빅(왼쪽)이 25일(현지시간) 오슬로 지방법원에서 구금심리가 끝난 뒤 이송되고 있다. [오슬로 AFP=연합뉴스]
‘평화의 낙원’ 노르웨이를 하루아침에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넣은 테러범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빅(32). 그는 1m80㎝ 키에 금발 머리, 녹색 눈동자를 가진 손색없는 외모의 평범한 청년이었다. 한 살 때 부모가 이혼하긴 했지만 어머니와 양아버지 밑에서 경제적인 어려움도 모르고 자랐다. 이런 청년이 연쇄테러로 무고한 76명의 목숨을 앗아가고도 자신은 죄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테러를 위해 쓴 돈은 31만7000유로(약 4억8300만원). 노르웨이를 패닉(공황)에 빠뜨린 브레이빅은 무엇 때문에 연쇄 테러를 저질렀을까. 현지 지방지 베르겐스 디텐드에 실린 브레이빅의 셀프 인터뷰 등을 통해 그의 정신세계를 들여다봤다.

#1. 네오나치즘(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어난 극우인종주의)=브레이빅은 16세 때 진보당 청소년 조직에 가입한다. 그는 인터넷에 올린 ‘2083:유럽 독립 선언문’에 “진보당이 다문화주의에 반대하는 유일한 정당이기 때문에 끌렸다”고 말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나치·파시스트·인종차별주의자’라고 비판했지만 브레이빅은 이민 정책에 반대하고 시장경제를 지지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브레이빅은 이 시점부터 사회적 문화와 정치에 관심을 쏟는다.

#2. 템플기사단(12세기 십자군 전쟁에서 이슬람과 맞서 싸운 조직)=20세 때 브레이빅은 민주당이 유럽의 이슬람화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다문화주의자들과의 40년 동안의 대화는 끝났고 재앙이 시작됐다”며 “유럽인들은 이제 마이너리티(소수집단)가 됐다”고 말했다. 브레이빅은 “다문화주의에 반대할 수 있는 대안을 찾고 싶었지만 별다른 수가 없었다”며 “이때부터 (테러)계획을 세우게 됐다”고 말한다.

#3. 유나바머=이번 노르웨이 연쇄테러는 유나바머 사건과 흡사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나바머는 미국 하버드대 출신의 교수 시어도르 카진스키가 현대 문명과 기술발전의 폐해가 인류를 파괴한다며 1978년부터 95년까지 총 16회에 걸쳐 우편물 연쇄폭탄 테러를 일으키며 미국을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다. 문명 혐오주의자였던 카진스키는 주로 대학과 항공사에 있는 사람들에게 폭발물을 보냈다. 이 사건은 브레이빅이 다문화주의를 혐오하며 연쇄폭탄 테러를 저지르고, ‘2083:유럽 독립 선언문’ 내용이 카진스키가 발표했던 내용문 일부를 표절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게 됐다.

#4. 리처드 1세=제3차 십자군전쟁에서 여자와 어린아이 할 것 없이 무슬림(이슬람교도)을 무차별 살해해 악명을 떨친 인물이다. 용맹한 리처드 1세는 사자의 심장을 지녔다는 의미에서 ‘사자왕’으로 불렸고, 브레이빅은 사자왕을 닮고 싶어했다. 브레이빅은 “다문화주의자들이 무슬림 이민을 중단하고 모든 무슬림을 국외로 추방했다면 그들의 지난 잘못을 용서했을 것이다”며 “만약 그들이 2020년까지 항복을 거부한다면 그들을 모두 쓸어버리겠다”고 말했다. 연쇄테러 범행 후에도 “(테러는) 잔인하지만 필요했다”고 말했던 브레이빅은 리처드 1세와 흡사하다.

#5. 콜 오브 듀티=브레이빅이 페이스북에 가장 즐기는 게임으로 꼽은 ‘콜 오브 듀티:모던 워페어 2’에 등장하는 ‘노 러시안(No Russian)’ 미션은 민간인 대량학살 장면이 등장한다. 게임 속 장면은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는 민간인을 마구 조준 사격하고, 피를 흘리며 쓰러진 희생자를 잔인하게 확인 사살한다. 게이머가 러시아의 극우 민족주의 테러조직 소속이라는 설정은 브레이빅이 다문화주의를 반대하는 극우 테러리스트라는 점과 매우 흡사하다. 브레이빅은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 푸틴 러시아 총리를 꼽았다.

#6. 페미니즘=브레이빅은 여자친구가 없었다. 3년 전 연쇄 테러를 본격적으로 준비할 무렵엔 미국으로 건너가 이마와 코·턱 성형수술을 받았다. 브레이빅의 친구는 “나는 한 번도 브레이빅이 여자와 있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브레이빅은 연쇄 테러 전에도 성매매 여성과 잠자리를 하기 위해 2000유로를 모으기도 했다. 그리고 우퇴야 섬에서 얼굴이 예쁜 여자아이부터 살해했다는 목격자 증언이 있다. 브레이빅의 정신적 세계엔 무슬림과 여성에 대한 증오와 혐오가 담겨 있었다.

 채규만 성신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브레이빅은 전형적인 사이코패스로 백인우월주의를 해치면 큰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는 과대망상증에 사로잡혀 있었다”며 “여성관계 문제도 개인의 문제로 보지 않고 사회적 문제로 보는 심리에서 나타난 행동이다”고 말했다.

임현주·민경원 기자




2011년 7월 26일자


테러범, 탄저균 살포도 구상

브레이빅 “유럽 반역자 처단” 주장


브룬틀란 전 총리
노르웨이 테러범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빅이 25일 법원 심리에서 “내가 소속된 단체에 두 개의 하부 조직이 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공범이 존재할 가능성이 주목받고 있다. 노르웨이 경찰은 전날 그가 단독 범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진술에 변화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사건 당일인 22일 브레이빅의 집에 머물고 있던 7명을 체포했다가 다음 날 모두 풀어줬다. 혐의점이 없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브레이빅은 테러 수시간 전 1500쪽에 이르는 ‘2083:유럽 독립 선언문’이라는 제목의 글을 시사토론 웹사이트(www.freak.no)에 올렸다. 이 글에서 그는 2002년 4월 영국 런던에서 ‘템플 기사단’을 재건하기 위한 모임에 참석했다고 주장했다. 템플 기사단은 십자군전쟁 때인 1118년 기독교 성지 보호를 목적으로 설립된 조직이다. 브레이빅은 이 모임에 영국·프랑스·폴란드 등 8개국에서 9명이 참가했다고 기록했다. 노르웨이 경찰은 그의 주장이 사실인지를 조사 중이다.

 그는 구속 여부를 결정하는 법원의 심리를 공개적으로 진행할 것으로 주장했으나 법원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에 대한 시민들의 공격이나 경찰 수사 내용의 유출 우려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법원은 그를 후문으로 입장시켜 언론 접촉을 차단했다. 이에 따라 정식 재판 때까지 그의 모습은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는다. 판사는 그를 독방에 구금시켰다. 가족과 변호인 이외의 면회도 차단했다. 법원의 심리는 35분 동안 진행됐다.

 네덜란드 일간지 텔레그라프는 25일 브레이빅은 ‘유럽의 반역자’들을 처단할 탄저균의 분량을 계산한 바 있다고 보도했다. 브레이빅은 범행 전 인터넷에 올린 글에서 “네덜란드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에서 A급과 B급 반역자들을 죽이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탄저균이 필요한지를 계산했다” 고 적었다.

 브레이빅은 인터넷에 올린 글에서 “임무(연쇄 테러)를 실행하기 1주 전 두 명의 고급 성매매 여성을 고용하고 고급 프랑스 와인을 마시기 위해 2000유로(약 300만원)를 모았다”며 “임무를 앞두고 긴장을 풀기 위해 잠자리를 계획했다”고 밝혔다.

 그는 우퇴야 섬에서 덤덤탄(dumdum bullet)이란 특수 총알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25일(현지시간)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따르면 브레이빅은 짧은 시간 동안 많은 희생자를 내기 위해 인체 내부에 큰 손상을 입힐 수 있도록 고안된 덤덤탄을 사용했다. 덤덤탄은 다른 총알보다 무게가 가볍고 명중률이 높기 때문에 주로 동물을 사냥할 때 쓴다. 이 총알은 몸에 맞으면 인체 내에서 탄체가 쪼개지면서 납 알갱이가 퍼지는 게 특징이다. 총격 테러 희생자들을 치료하는 노르웨이 링그리켓 병원 콜린 풀레 박사는 “환자 16명의 몸에서 온전한 모양의 총알은 발견할 수 없었다”며 “특수 제작된 총알을 사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아프가니스탄 출신 후세인 카제미(19)는 덤덤탄 4발을 맞고도 살아남았다. 총격 테러로 숨진 희생자 중에는 메테마리트 왕세자비의 이복 오빠 트론드 베른첸도 포함되어 있었다.

빨간 옷 입고 법정 출두한 테러범 브레이빅

 브레이빅이 예쁜 여자아이부터 총격을 가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영국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생존자의 증언을 인용해 “우퇴야 섬에 도착한 브레이빅은 사람들을 불러모은 뒤 가장 예쁜 여자부터 쐈다”고 보도했다. 브레이빅은 사건 전 자신의 일기장에 “친구들 모두 여자친구가 있는데 나만 없다”는 불평을 적어놨던 것으로 전해졌다.

 브레이빅은 노르웨이 경찰 조사에서 “그로 할렘 브룬틀란(72) 전 총리를 사살하려 했다”고 진술했다고 노르웨이 신문 아프텐포스텐이 보도했다. 그는 “브룬틀란 전 총리가 22일 우퇴야 섬을 방문하는 줄 알고 있었으나 이미 21일 청소년 캠프에서 연설을 마치고 떠난 뒤였다”고 말했다. ‘노르웨이의 어머니’로 불리는 브룬틀란 전 총리는 노르웨이 노동당 대표 출신으로 1981년과 86~96년에 총리를 세 차례 역임한 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을 지냈다.

 노르웨이 경찰은 이번 테러가 브레이빅의 단독 범행이라는 데 무게를 두고 있으나 우퇴야 섬에서 브레이빅 이외에 또 한 명의 저격수가 있었다는 목격자 증언이 나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오슬로(노르웨이)=이상언 특파원, 임현주 기자





2011년 7월 25일자 중앙일보


범행 전 “나는 가장 거대한 괴물될 것” … 범행 뒤 “잔혹하지만 필요했다”

목격자들이 전한 참사 순간

아비규환의 테러 현장인 노르웨이 우퇴야 섬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끔찍했던 당시를 떠올리며 치를 떨었다. 이들은 “현장에서 테러범의 얼굴을 볼 순 없었지만 그가 큰 소리를 지르고 웃었다”며 “그는 한 명 한 명씩 무자비하게 죽였으며, 사망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정교하게 두 번씩 총알을 발사했다”고 말했다.

 AP·이타르타스 등 외신에 따르면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빅(32)은 22일 오후 3시30분쯤(현지시간) 오슬로 정부청사 폭탄테러를 한 뒤 그곳에서 30㎞ 떨어진 우퇴야 섬으로 이동했다. 섬에는 집권 노동당 청소년 여름 캠프가 열리고 있었다. 참가자 대부분은 초·중·고·대학생들이었다. 테러범은 오후 4시50분쯤 경찰로 위장해 학생들을 불러모은 뒤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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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존자 엘리사(15)는 “경찰관 차림의 젊은 남성이 건물로 들어왔고 갑자기 총성이 났다”며 “건물 안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서 소리 지르며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남성은 ‘아무 문제 없다, 걱정 말고 모두 가까이 오라’며 불러 모은 뒤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노르웨이 최대 노조인 자치구 일반 노조 조합장인 라세 크리스티안센은 “사고 당시 두 딸 모두 캠프 현장에 있었다”며 “둘 다 다른 장소에 있었는데 다행히 모두 무사하다”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크리스티안센은 두 딸에게서 들은 목격담을 대신 전했다. “큰딸(헬렌·21)은 수영을 잘하는 편이어서 총성을 듣자마자 2층 창문에서 뛰어내린 뒤 물가로 달렸다. 테러범은 헬렌을 포함해 몇 명이 헤엄치는 모습을 보고 건물 밖으로 나와 물가를 향해 총격을 가했다. 건물 안에서 희생된 사람은 대부분 10대 청소년들이었다. 고학년 학생들은 대부분 헤엄쳐서 달아났다 .”

 또 다른 생존자 프라블린 카우르는 자신의 블로그에 급박했던 상황을 상세히 증언했다. “총소리에 놀라 죽은 척하며 쓰러진 사람들이 있었는데, 테러범은 진짜 죽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쓰러진 사람들 머리에 다시 총을 쐈다. 내 몸 위로 2명이 쓰러졌고, 주변에는 다른 시체들이 널려 있었다.” 다수의 목격자들은 “테러범이 오슬로 폭탄 공격 때문에 행사 안전을 돕기 위해 배치됐다고 속였다” 고 증언했다.

우퇴야 섬 인근 주민들은 총기 테러 당시 소식을 전해 듣고 구조활동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퇴야 섬과 가까운 곳에 살던 캐스퍼 일로그(53)는 5.5m의 낚싯배를 띄웠다. 곧 현장에 도착한 그는 테러범을 피해 호수로 뛰어든 청소년들을 발견하고 배에 태웠다. 그는 세 번씩이나 우퇴야 섬을 왕복하며 모두 15명을 구조했다.

 이날 오슬로 시내에서 먼저 발생한 정부청사 인근 폭탄테러도 끔찍했다. BBC는 “정부청사 인근에서 ‘펑’하는 소리와 함께 폭탄테러가 발생하자 17층 높이의 총리 집무실 유리창이 모두 깨졌 다”고 보도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52) 총리는 이날 자택에서 업무를 보고 있어서 화를 면했다.

임현주 기자




2011년 7월 23일자 중앙일보

노르웨이 정부청사 밀집지역 대형폭발 … 10여 명 사상

석유부 청사 불길 … 총리는 청사에 없어 무사
‘아프간 파병 보복’ 알카에다 테러 가능성 무게

22일(현지시간) 노르웨이 오슬로 정부청사 밀집지역에서 테러로 의심되는 대형 폭발 사고가 발생해 옌스 스톨텐베르그 총리 집무실이 있는 건물이 크게 훼손됐다. 폭발로 화재가 발생하며 연기가 피어 오르고 있다. 현지 언론은 이날 폭발이 알카에다와 연계된 테러조직의 소행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오슬로 AP=뉴시스]

노벨 평화상을 시상하는 노르웨이에서 테러로 의심되는 대형 폭발 사고가 발생해 최소 2명이 숨지고 10여 명이 다쳤다.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22일 오후 3시30분(현지시간)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의 정부청사 밀집 지역에서 거대한 폭발이 있었다. 이 지역에는 총리실 건물과 재무부·석유부 청사, 노르웨이 최대 타블로이드 신문 VG 건물 등이 있었다. 폭파 당시 옌스 스톨덴베르그(52) 총리는 총리실에 있지 않아 무사하다고 현지 공영 라디오 NPK가 전했다.

 폭파로 석유부 청사에서 불길이 타올랐으며, 주변 건물들의 유리창이 대부분 파손됐다. 라디오 노르웨이는 “사전에 건물에 설치된 폭탄이 폭발하면서 사고가 났다”며 “폭발음은 오슬로 시내 전체에 들릴 정도였다”고 보도했다. 오슬로 경찰은 건물 주변에 추가로 설치된 폭발물이 있을 것으로 보고 청사 주변 도로를 봉쇄하고 폭발물 제거 작업에 나섰다.

 로이터 통신은 “오슬로 시민들이 패닉에 빠졌다”며 “소방관들이 화재 진압을 하고 있지만 건물에 연기가 자욱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목격자들은 “‘펑’ 소리와 함께 건물 일부가 폭발했고 순식간에 거리는 자욱한 연기로 뒤덮였다”며 “주변 차량들도 크게 손상을 입었다”고 말했다.

 정확한 사고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현지 언론은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테러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인 노르웨이는 2001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후 아프간에 파병하고 있고, 지난 3월 이후 나토의 리비아 공습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지난 5월 2일 오사마 빈 라덴 사망 이후 알카에다 최고지도자가 된 아이만 알자와히리는 2007년 “이슬람을 적대하는 전쟁에 참여한 노르웨이는 알카에다의 보복 대상”이라고 밝힌 바 있다. 노르웨이 신문은 2006년 초 이슬람을 창시한 예언자 무함마드를 테러리스트로 묘사한 덴마크 신문 만평을 다시 게재해 이슬람권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당시 시리아와 파키스탄에서는 노르웨이 대사관이 불타고 노르웨이 기업 사무실이 공격당했다.

임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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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갖고 장난해’ … 뿔난 푸틴

[중앙일보]입력 2011.07.18 00:05 / 수정 2011.07.18 01:00                             중앙일보 18일자 국제1면(14면)

‘독일이 본받을 만한 인물’
수상자 발표 하루만에 철회



블라디미르 푸틴(59·사진) 러시아 총리에게 상을 주려던 독일의 비영리단체가 국내외 반발에 밀려 시상 계획을 하루 만에 철회했다.

 러시아 국영통신 리아노보스티는 16일(현지시간) 독일의 비영리 단체 ‘베르크슈타트 도이칠란트’가 독일 통일을 기념해 ‘2011년 독일이 본받을 만한 인물’로 선정한 푸틴 등 4명의 후보에 대한 시상 계획을 모두 취소했다고 보도했다. 통신에 따르면 푸틴은 전날까지 이 단체가 시상하는 콰드리가(Quadriga)상 수상자 명단에 있었다. 콰드리가는 독일 수도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문 위에 세워진 4마리 말이 끄는 2륜 전차를 일컫는다. 수상자에게는 콰드리가를 작게 축소한 모형을 수여한다. 그러나 푸틴의 수상 소식이 알려지자 야당과 시민단체, 언론이 비난에 나섰고 결국 시상 계획이 철회됐다.

 이 단체는 매년 10월 3일 독일 통일을 기념해 혁신적인 아이디어나 개척 정신을 갖춘 인물이나 단체를 선정해 시상해 왔다. 푸틴은 러시아에 평화와 번영을 가져오고 독일·러시아 관계를 안정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수상자로 선정됐다.

 그러나 이 단체의 이사회 멤버 일부마저 “푸틴은 민주주의를 후퇴시켰고 자유를 억압했다”며 “인권을 존중한 인물과 거리가 멀다”며 이사회를 탈퇴했다. 2009년 이 상을 탄 바츨라프 하벨 전 체코 대통령은 “만약 푸틴이 상을 받게 되면 내가 받은 상은 반납하겠다”고 말했다. 이런 반발은 결국 4명의 수상 후보자 전원에 대한 시상 계획을 철회시켰다.
 
 이에 대해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총리 공보실장은 “상당히 모순되고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처음에 수상자를 결정한 뒤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을 때에도 절차상의 문제가 없다고 했다가 하루 만에 취소 결정을 내린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임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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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가린, 인류 첫 우주비행 50돌 … 런던에 기념 동상

당시 영국여왕 접견을 기념
딸 가가리나 제막식에 참석

                                                                                                                  중앙일보 7월 16일자 기사



최초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의 딸인 옐레나 가가리나가 14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우주 비행 50주년 기념으로 건립된 가가린 동상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런던 AP=연합뉴스]

옛 소련 우주인 유리 가가린(Yuri Gagarin·1934~68)의 동상이 영국 수도인 런던 한복판에 세워졌다. 50년 전인 1961년 세계 최초로 우주 비행에 성공했던 인물이다.

15일 이타르 타스 통신에 따르면 14일(현지시간) 가가린의 딸인 옐레나 가가리나(52)가 참석한 가운데 런던 중심부 트래펄가 광장 인근의 영국문화원 본원 앞에서 가가린 동상 제막식이 열렸다.

 유리 가가린은 1961년 4월 12일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보스토크 1호를 타고 지상 300㎞까지 올라가서 지구 한 바퀴를 돌고 108분 만에 지상으로 귀환했다. 우주에 다녀온 뒤 영국을 공식 방문했던 가가린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만났다. 그 뒤 가가린은 68년 3월 27일 모스크바 근교 블라디미르주의 항공기지에서 훈련 중 비행기 추락으로 34년간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모스크바 크렘린박물관 부관장을 맡고 있는 가가리나는 가가린의 우주 비행 50주년 기념행사와 가가린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만남을 기념하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영국을 공식 방문했다.

그는 이타르 타스와의 인터뷰에서 “50년 전 아버지를 따뜻하게 맞아줬던 도시 런던에 아버지 동상을 세우게 돼서 영광”이라며 “미지의 세계를 향한 아버지의 우주 비행을 표현한 동상을 보니 기쁘다”고 말했다.

 런던에 세워진 동상은 84년 가가린의 50번째 생일을 기념해 모스크바 외곽에 세웠던 티타늄 동상의 복제품이다. 러시아 연방 우주청이 영국 의회에 선물하는 형식으로 런던에 세워졌다.

 3.5m 높이에 아연과 알루미늄 합금으로 제작된 이 동상은 지구를 감싼 뫼비우스 띠 위에 가가린이 두 팔을 벌리고 한 발을 앞으로 내딛는 모습을 하고 있다. 뫼비우스 띠는 가가린이 비행했던 우주 궤도를 상징한다.

이날 제막식에는 우주에서 최장 시간인 800일을 머문 기록을 갖고 있는 우주인 세르게이 크리칼료프(53·러시아)와 러시아 연방 우주청장 블라디미르 포프킨(54) 등이 참석했다.

임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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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변호사 능력 뛰어나 법률시장 개방은 새 기회”

국제검사협회 초청으로 서울 온 송상현 국제형사재판소장

                                                                                                  2011년 6월 30일자 중앙일보

송상현(70·1963년 고시 16회 합격·사진) 국제형사재판소(ICC ·International Criminal Court) 소장은 7월 1일 시행되는 한국 법률시장 개방과 관련해 “시장 개방은 한국 법조인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제검사협회(IAP·International Association of Prosecutors)의 특별초청으로 방한한 송 소장을 27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만났다.

송 소장은 “네덜란드 헤이그의 ICC에는 재판관 18명, 직원 700명이 근무하는데 직원들 가운데 한국인은 단 한 명도 없다”며 “ICC 직원 채용 경쟁률이 700대 1 정도인데 우리나라 법조인은 떨어질 게 무서워선지 도전도 안 한다”고 말했다. 그는 “도전이 없으면 기회도 없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 며칠 앞으로 다가온 법률시장 개방에 대해 어떻게 전망하나.

 “법률시장 개방은 세계화 시대에 필요한 결단이었다고 본다. 일부 걱정과 우려의 목소리가 있으나 나는 상당히 낙관한다. 개방 초기에는 진통도 있겠지만 그것 또한 미래를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 왜 그렇게 보나.

 “우리나라 변호사들이 판·검사에 비해 업무 대응 능력이 뛰어나다. 국내 로펌 등 변호사 업계가 대비를 잘 해왔다고 보며 초기 진통을 잘 넘기고 나면 법률가로서의 실력과 능력이 크게 향상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어학 능력을 갖춘 변호사도 많다. 또 외국계 대형 회사가 한국에 투자하거나 진출하기 위해서는 한국 법을 잘 아는 한국인 변호사에게 법률자문을 구할 수밖에 없다.”

 - 국내 법조인들에게 당부할 말이 있다면.

 “도전정신이 부족한 게 아쉽다. 앞으로 ICC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제사법기구에서 인턴 등 경험을 쌓으며 견문을 넓히는 게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특히 젊은 법조인들이 더 큰 국제무대에 자꾸 도전해야 한다.”

 - ICC소장은 어떤 자리인가.

 “1년에 지구를 10바퀴쯤 돈다. ICC는 반(反)인류범죄를 처벌하는 곳이고, 소장은 전 세계에서 자행되는 반인류범죄와 관련해 최고심 판결을 해야 하고, ICC의 행정을 책임지는 자리다. 회원국(6월 현재 115개국)과 비회원국, 지역별 협력기관 등을 방문해 국제형사정의 확립을 위해 힘쓰고 있다.”

 최근 ICC는 리비아의 민간인 살상과 관련,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 등에 대해 반인류범죄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그는 IAP 부회장직을 맡고 있는 김준규 검찰총장의 대학시절 은사이기도 하다.

송 소장은 “대학 교수 때도 학생들에게 해외사법공조의 중요성을 자주 강조했다. 학생들 중에서 김 총장이 내 말을 잘 따라줬는데 이렇게 만나니 격세지감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같이 범죄가 국경을 초월하며 발생하는 시대에는 검찰조직도 국제 사법공조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글=임현주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송상현 ICC 소장=2002년 ICC가 설립된 이듬해 ICC 재판관을 맡았다. 2009년 3월 ICC 소장으로 선출됐다. 임기는 2012년 3월까지며 1회 연임이 가능하다.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으며 1972년부터 2007년 2월까지 서울대 법대 교수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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