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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21일자 중앙일보


브레이빅, 십자군 전쟁 ‘사자왕’ 리처드 1세가 우상

6개 키워드로 본 테러범 정신세계

노르웨이 테러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25일 오슬로 시청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서로 부둥켜 안고 슬퍼하고 있다. [오슬로 AP=연합뉴스]

노르웨이 연쇄테러범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빅(왼쪽)이 25일(현지시간) 오슬로 지방법원에서 구금심리가 끝난 뒤 이송되고 있다. [오슬로 AFP=연합뉴스]
‘평화의 낙원’ 노르웨이를 하루아침에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넣은 테러범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빅(32). 그는 1m80㎝ 키에 금발 머리, 녹색 눈동자를 가진 손색없는 외모의 평범한 청년이었다. 한 살 때 부모가 이혼하긴 했지만 어머니와 양아버지 밑에서 경제적인 어려움도 모르고 자랐다. 이런 청년이 연쇄테러로 무고한 76명의 목숨을 앗아가고도 자신은 죄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테러를 위해 쓴 돈은 31만7000유로(약 4억8300만원). 노르웨이를 패닉(공황)에 빠뜨린 브레이빅은 무엇 때문에 연쇄 테러를 저질렀을까. 현지 지방지 베르겐스 디텐드에 실린 브레이빅의 셀프 인터뷰 등을 통해 그의 정신세계를 들여다봤다.

#1. 네오나치즘(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어난 극우인종주의)=브레이빅은 16세 때 진보당 청소년 조직에 가입한다. 그는 인터넷에 올린 ‘2083:유럽 독립 선언문’에 “진보당이 다문화주의에 반대하는 유일한 정당이기 때문에 끌렸다”고 말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나치·파시스트·인종차별주의자’라고 비판했지만 브레이빅은 이민 정책에 반대하고 시장경제를 지지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브레이빅은 이 시점부터 사회적 문화와 정치에 관심을 쏟는다.

#2. 템플기사단(12세기 십자군 전쟁에서 이슬람과 맞서 싸운 조직)=20세 때 브레이빅은 민주당이 유럽의 이슬람화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다문화주의자들과의 40년 동안의 대화는 끝났고 재앙이 시작됐다”며 “유럽인들은 이제 마이너리티(소수집단)가 됐다”고 말했다. 브레이빅은 “다문화주의에 반대할 수 있는 대안을 찾고 싶었지만 별다른 수가 없었다”며 “이때부터 (테러)계획을 세우게 됐다”고 말한다.

#3. 유나바머=이번 노르웨이 연쇄테러는 유나바머 사건과 흡사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나바머는 미국 하버드대 출신의 교수 시어도르 카진스키가 현대 문명과 기술발전의 폐해가 인류를 파괴한다며 1978년부터 95년까지 총 16회에 걸쳐 우편물 연쇄폭탄 테러를 일으키며 미국을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다. 문명 혐오주의자였던 카진스키는 주로 대학과 항공사에 있는 사람들에게 폭발물을 보냈다. 이 사건은 브레이빅이 다문화주의를 혐오하며 연쇄폭탄 테러를 저지르고, ‘2083:유럽 독립 선언문’ 내용이 카진스키가 발표했던 내용문 일부를 표절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게 됐다.

#4. 리처드 1세=제3차 십자군전쟁에서 여자와 어린아이 할 것 없이 무슬림(이슬람교도)을 무차별 살해해 악명을 떨친 인물이다. 용맹한 리처드 1세는 사자의 심장을 지녔다는 의미에서 ‘사자왕’으로 불렸고, 브레이빅은 사자왕을 닮고 싶어했다. 브레이빅은 “다문화주의자들이 무슬림 이민을 중단하고 모든 무슬림을 국외로 추방했다면 그들의 지난 잘못을 용서했을 것이다”며 “만약 그들이 2020년까지 항복을 거부한다면 그들을 모두 쓸어버리겠다”고 말했다. 연쇄테러 범행 후에도 “(테러는) 잔인하지만 필요했다”고 말했던 브레이빅은 리처드 1세와 흡사하다.

#5. 콜 오브 듀티=브레이빅이 페이스북에 가장 즐기는 게임으로 꼽은 ‘콜 오브 듀티:모던 워페어 2’에 등장하는 ‘노 러시안(No Russian)’ 미션은 민간인 대량학살 장면이 등장한다. 게임 속 장면은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는 민간인을 마구 조준 사격하고, 피를 흘리며 쓰러진 희생자를 잔인하게 확인 사살한다. 게이머가 러시아의 극우 민족주의 테러조직 소속이라는 설정은 브레이빅이 다문화주의를 반대하는 극우 테러리스트라는 점과 매우 흡사하다. 브레이빅은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 푸틴 러시아 총리를 꼽았다.

#6. 페미니즘=브레이빅은 여자친구가 없었다. 3년 전 연쇄 테러를 본격적으로 준비할 무렵엔 미국으로 건너가 이마와 코·턱 성형수술을 받았다. 브레이빅의 친구는 “나는 한 번도 브레이빅이 여자와 있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브레이빅은 연쇄 테러 전에도 성매매 여성과 잠자리를 하기 위해 2000유로를 모으기도 했다. 그리고 우퇴야 섬에서 얼굴이 예쁜 여자아이부터 살해했다는 목격자 증언이 있다. 브레이빅의 정신적 세계엔 무슬림과 여성에 대한 증오와 혐오가 담겨 있었다.

 채규만 성신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브레이빅은 전형적인 사이코패스로 백인우월주의를 해치면 큰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는 과대망상증에 사로잡혀 있었다”며 “여성관계 문제도 개인의 문제로 보지 않고 사회적 문제로 보는 심리에서 나타난 행동이다”고 말했다.

임현주·민경원 기자




2011년 7월 26일자


테러범, 탄저균 살포도 구상

브레이빅 “유럽 반역자 처단” 주장


브룬틀란 전 총리
노르웨이 테러범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빅이 25일 법원 심리에서 “내가 소속된 단체에 두 개의 하부 조직이 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공범이 존재할 가능성이 주목받고 있다. 노르웨이 경찰은 전날 그가 단독 범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진술에 변화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사건 당일인 22일 브레이빅의 집에 머물고 있던 7명을 체포했다가 다음 날 모두 풀어줬다. 혐의점이 없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브레이빅은 테러 수시간 전 1500쪽에 이르는 ‘2083:유럽 독립 선언문’이라는 제목의 글을 시사토론 웹사이트(www.freak.no)에 올렸다. 이 글에서 그는 2002년 4월 영국 런던에서 ‘템플 기사단’을 재건하기 위한 모임에 참석했다고 주장했다. 템플 기사단은 십자군전쟁 때인 1118년 기독교 성지 보호를 목적으로 설립된 조직이다. 브레이빅은 이 모임에 영국·프랑스·폴란드 등 8개국에서 9명이 참가했다고 기록했다. 노르웨이 경찰은 그의 주장이 사실인지를 조사 중이다.

 그는 구속 여부를 결정하는 법원의 심리를 공개적으로 진행할 것으로 주장했으나 법원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에 대한 시민들의 공격이나 경찰 수사 내용의 유출 우려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법원은 그를 후문으로 입장시켜 언론 접촉을 차단했다. 이에 따라 정식 재판 때까지 그의 모습은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는다. 판사는 그를 독방에 구금시켰다. 가족과 변호인 이외의 면회도 차단했다. 법원의 심리는 35분 동안 진행됐다.

 네덜란드 일간지 텔레그라프는 25일 브레이빅은 ‘유럽의 반역자’들을 처단할 탄저균의 분량을 계산한 바 있다고 보도했다. 브레이빅은 범행 전 인터넷에 올린 글에서 “네덜란드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에서 A급과 B급 반역자들을 죽이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탄저균이 필요한지를 계산했다” 고 적었다.

 브레이빅은 인터넷에 올린 글에서 “임무(연쇄 테러)를 실행하기 1주 전 두 명의 고급 성매매 여성을 고용하고 고급 프랑스 와인을 마시기 위해 2000유로(약 300만원)를 모았다”며 “임무를 앞두고 긴장을 풀기 위해 잠자리를 계획했다”고 밝혔다.

 그는 우퇴야 섬에서 덤덤탄(dumdum bullet)이란 특수 총알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25일(현지시간)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따르면 브레이빅은 짧은 시간 동안 많은 희생자를 내기 위해 인체 내부에 큰 손상을 입힐 수 있도록 고안된 덤덤탄을 사용했다. 덤덤탄은 다른 총알보다 무게가 가볍고 명중률이 높기 때문에 주로 동물을 사냥할 때 쓴다. 이 총알은 몸에 맞으면 인체 내에서 탄체가 쪼개지면서 납 알갱이가 퍼지는 게 특징이다. 총격 테러 희생자들을 치료하는 노르웨이 링그리켓 병원 콜린 풀레 박사는 “환자 16명의 몸에서 온전한 모양의 총알은 발견할 수 없었다”며 “특수 제작된 총알을 사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아프가니스탄 출신 후세인 카제미(19)는 덤덤탄 4발을 맞고도 살아남았다. 총격 테러로 숨진 희생자 중에는 메테마리트 왕세자비의 이복 오빠 트론드 베른첸도 포함되어 있었다.

빨간 옷 입고 법정 출두한 테러범 브레이빅

 브레이빅이 예쁜 여자아이부터 총격을 가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영국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생존자의 증언을 인용해 “우퇴야 섬에 도착한 브레이빅은 사람들을 불러모은 뒤 가장 예쁜 여자부터 쐈다”고 보도했다. 브레이빅은 사건 전 자신의 일기장에 “친구들 모두 여자친구가 있는데 나만 없다”는 불평을 적어놨던 것으로 전해졌다.

 브레이빅은 노르웨이 경찰 조사에서 “그로 할렘 브룬틀란(72) 전 총리를 사살하려 했다”고 진술했다고 노르웨이 신문 아프텐포스텐이 보도했다. 그는 “브룬틀란 전 총리가 22일 우퇴야 섬을 방문하는 줄 알고 있었으나 이미 21일 청소년 캠프에서 연설을 마치고 떠난 뒤였다”고 말했다. ‘노르웨이의 어머니’로 불리는 브룬틀란 전 총리는 노르웨이 노동당 대표 출신으로 1981년과 86~96년에 총리를 세 차례 역임한 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을 지냈다.

 노르웨이 경찰은 이번 테러가 브레이빅의 단독 범행이라는 데 무게를 두고 있으나 우퇴야 섬에서 브레이빅 이외에 또 한 명의 저격수가 있었다는 목격자 증언이 나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오슬로(노르웨이)=이상언 특파원, 임현주 기자





2011년 7월 25일자 중앙일보


범행 전 “나는 가장 거대한 괴물될 것” … 범행 뒤 “잔혹하지만 필요했다”

목격자들이 전한 참사 순간

아비규환의 테러 현장인 노르웨이 우퇴야 섬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끔찍했던 당시를 떠올리며 치를 떨었다. 이들은 “현장에서 테러범의 얼굴을 볼 순 없었지만 그가 큰 소리를 지르고 웃었다”며 “그는 한 명 한 명씩 무자비하게 죽였으며, 사망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정교하게 두 번씩 총알을 발사했다”고 말했다.

 AP·이타르타스 등 외신에 따르면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빅(32)은 22일 오후 3시30분쯤(현지시간) 오슬로 정부청사 폭탄테러를 한 뒤 그곳에서 30㎞ 떨어진 우퇴야 섬으로 이동했다. 섬에는 집권 노동당 청소년 여름 캠프가 열리고 있었다. 참가자 대부분은 초·중·고·대학생들이었다. 테러범은 오후 4시50분쯤 경찰로 위장해 학생들을 불러모은 뒤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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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존자 엘리사(15)는 “경찰관 차림의 젊은 남성이 건물로 들어왔고 갑자기 총성이 났다”며 “건물 안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서 소리 지르며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남성은 ‘아무 문제 없다, 걱정 말고 모두 가까이 오라’며 불러 모은 뒤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노르웨이 최대 노조인 자치구 일반 노조 조합장인 라세 크리스티안센은 “사고 당시 두 딸 모두 캠프 현장에 있었다”며 “둘 다 다른 장소에 있었는데 다행히 모두 무사하다”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크리스티안센은 두 딸에게서 들은 목격담을 대신 전했다. “큰딸(헬렌·21)은 수영을 잘하는 편이어서 총성을 듣자마자 2층 창문에서 뛰어내린 뒤 물가로 달렸다. 테러범은 헬렌을 포함해 몇 명이 헤엄치는 모습을 보고 건물 밖으로 나와 물가를 향해 총격을 가했다. 건물 안에서 희생된 사람은 대부분 10대 청소년들이었다. 고학년 학생들은 대부분 헤엄쳐서 달아났다 .”

 또 다른 생존자 프라블린 카우르는 자신의 블로그에 급박했던 상황을 상세히 증언했다. “총소리에 놀라 죽은 척하며 쓰러진 사람들이 있었는데, 테러범은 진짜 죽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쓰러진 사람들 머리에 다시 총을 쐈다. 내 몸 위로 2명이 쓰러졌고, 주변에는 다른 시체들이 널려 있었다.” 다수의 목격자들은 “테러범이 오슬로 폭탄 공격 때문에 행사 안전을 돕기 위해 배치됐다고 속였다” 고 증언했다.

우퇴야 섬 인근 주민들은 총기 테러 당시 소식을 전해 듣고 구조활동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퇴야 섬과 가까운 곳에 살던 캐스퍼 일로그(53)는 5.5m의 낚싯배를 띄웠다. 곧 현장에 도착한 그는 테러범을 피해 호수로 뛰어든 청소년들을 발견하고 배에 태웠다. 그는 세 번씩이나 우퇴야 섬을 왕복하며 모두 15명을 구조했다.

 이날 오슬로 시내에서 먼저 발생한 정부청사 인근 폭탄테러도 끔찍했다. BBC는 “정부청사 인근에서 ‘펑’하는 소리와 함께 폭탄테러가 발생하자 17층 높이의 총리 집무실 유리창이 모두 깨졌 다”고 보도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52) 총리는 이날 자택에서 업무를 보고 있어서 화를 면했다.

임현주 기자




2011년 7월 23일자 중앙일보

노르웨이 정부청사 밀집지역 대형폭발 … 10여 명 사상

석유부 청사 불길 … 총리는 청사에 없어 무사
‘아프간 파병 보복’ 알카에다 테러 가능성 무게

22일(현지시간) 노르웨이 오슬로 정부청사 밀집지역에서 테러로 의심되는 대형 폭발 사고가 발생해 옌스 스톨텐베르그 총리 집무실이 있는 건물이 크게 훼손됐다. 폭발로 화재가 발생하며 연기가 피어 오르고 있다. 현지 언론은 이날 폭발이 알카에다와 연계된 테러조직의 소행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오슬로 AP=뉴시스]

노벨 평화상을 시상하는 노르웨이에서 테러로 의심되는 대형 폭발 사고가 발생해 최소 2명이 숨지고 10여 명이 다쳤다.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22일 오후 3시30분(현지시간)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의 정부청사 밀집 지역에서 거대한 폭발이 있었다. 이 지역에는 총리실 건물과 재무부·석유부 청사, 노르웨이 최대 타블로이드 신문 VG 건물 등이 있었다. 폭파 당시 옌스 스톨덴베르그(52) 총리는 총리실에 있지 않아 무사하다고 현지 공영 라디오 NPK가 전했다.

 폭파로 석유부 청사에서 불길이 타올랐으며, 주변 건물들의 유리창이 대부분 파손됐다. 라디오 노르웨이는 “사전에 건물에 설치된 폭탄이 폭발하면서 사고가 났다”며 “폭발음은 오슬로 시내 전체에 들릴 정도였다”고 보도했다. 오슬로 경찰은 건물 주변에 추가로 설치된 폭발물이 있을 것으로 보고 청사 주변 도로를 봉쇄하고 폭발물 제거 작업에 나섰다.

 로이터 통신은 “오슬로 시민들이 패닉에 빠졌다”며 “소방관들이 화재 진압을 하고 있지만 건물에 연기가 자욱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목격자들은 “‘펑’ 소리와 함께 건물 일부가 폭발했고 순식간에 거리는 자욱한 연기로 뒤덮였다”며 “주변 차량들도 크게 손상을 입었다”고 말했다.

 정확한 사고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현지 언론은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테러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인 노르웨이는 2001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후 아프간에 파병하고 있고, 지난 3월 이후 나토의 리비아 공습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지난 5월 2일 오사마 빈 라덴 사망 이후 알카에다 최고지도자가 된 아이만 알자와히리는 2007년 “이슬람을 적대하는 전쟁에 참여한 노르웨이는 알카에다의 보복 대상”이라고 밝힌 바 있다. 노르웨이 신문은 2006년 초 이슬람을 창시한 예언자 무함마드를 테러리스트로 묘사한 덴마크 신문 만평을 다시 게재해 이슬람권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당시 시리아와 파키스탄에서는 노르웨이 대사관이 불타고 노르웨이 기업 사무실이 공격당했다.

임현주 기자
Posted by mos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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