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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8월 18일 ~ 신(新)러시아 탄생 그 후 20년

옐친은 탱크 올랐고, 푸틴은 ‘21세기 표트르’ 꿈꾼다
강대국 부활시킨 그들의 리더십


1991년 8월 18일 공산당 보수파가 쿠데타를 일으키자 이튿날 보리스 옐친 당시 소련 산하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이 모스크바의 러시아공화국 의사당 앞에 배치돼 있던 진압군 탱크 포탑 위에 올라가 국민에게 쿠데타에 맞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중앙포토]

모스크바 크렘린궁에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59) 총리의 집무실에는 표트르 대제(Pyotr I·1672~1725)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표트르는 ‘강한 러시아’를 위해 부국강병 정책을 추구했던 차르(czar·황제)다. 러시아를 유라시아 두 대륙의 강대국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로 쌍두 독수리 문장을 채택한 인물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표트르의 도시라는 뜻으로 그가 건설했다) 출신인 푸틴은 표트르 대제를 닮으려고 애쓰고 있다.

 그런 푸틴 총리가 지난 1일 “미국은 세계 경제에 기생충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푸틴은 전날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의회 지도자들이 연방정부 부채상한 증액 협상을 타결하자 “미국이 엄청난 부채를 쌓아가면서 전 세계 금융을 위협하고 있다”며 독설을 퍼부었다. 러시아 지도자가 미국을 이토록 원색적으로 비난한 것은 과거 냉전시대 소련에서도 드문 일이다.

 푸틴이 이처럼 큰소리를 칠 수 있는 배경은 러시아의 신장된 국력이다. 러시아의 명목 GDP는 1조4650억 달러로 세계 11위다(2010년 국제통화기금 자료). 스페인(1조4099억 달러), 호주(1조2355억 달러), 멕시코(1조392억 달러), 한국(1조70억 달러) 등이 뒤를 따르고 있다. 1인당 명목 GDP는 1만440달러로 세계 40위다(세계은행 2010년 기준).


 공산국가 소련이 1991년 8월 무너지고 민주국가인 신러시아가 탄생한 지 이달로 20주년을 맞는다. 오랜 공산통치로 인한 무능과 비효율로 가난하고 힘없는 나라로 재출발했던 러시아는 20년이 지난 지금 강대국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 중심에는 푸틴(2000~2008년 대통령 연임 뒤 현재 총리)의 리더십이 있다.

  급속한 시장경제 도입에 따른 혼란을 겪었던 초대 러시아 대통령 보리스 옐친은 99년 말 국가보안위원회(KGB) 출신의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를 대통령 대행으로 임명한 뒤 물러났다. 푸틴은 ‘안정’과 ‘대국 재건’을 기치로 내걸고 강국 러시아 복원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그는 국력 강화에 자원을 최대한 활용했다. 러시아는 현재 석유와 가스를 비롯한 에너지와 광물을 앞세운 자원외교로 국제사회의 강자로 자리 잡고 있다. 88년 소련 시절 세계 최대 산유국이었던 러시아는 소련 붕괴 뒤 석유 생산량이 8위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푸틴 집권 뒤 석유생산량 1위, 천연가스 생산량·매장량 1위(2010년 기준)로 다시 올라섰다.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은 2573억 달러(275조원)로 수출 총액의 3분의 2에 이른다. 푸틴은 전 세계 천연 가스 생산량의 20%를 차지하고 있는 민영기업 가즈프롬을 2004년 국유화했다. 그가 ‘에너지 차르’로 불리는 이유다. 푸틴 집권 후 경제성장률은 매년 4% 이상(2009년 제외)을 기록했다.

 최근 들어선 이라크전·리비아전과 관련, 미국과 서유럽에 대항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러시아는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과 2018년 FIFA 월드컵까지 유치했다. 군사적으로는 신형대륙간탄도탄(ICBM) 블라바를 개발하며 핵 보유국 지위를 강조하고 있다. 그 결과 러시아는 21세기 들어 국력과 함께 과거의 자신감까지 회복했다.

 하지만 푸틴의 강권 리더십 이면의 그늘에 대한 우려도 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ev·80) 전 소련 대통령은 “푸틴이 이끄는 통일러시아당은 소련공산당을 연상시킨다. 푸틴은 러시아의 역사를 거꾸로 돌려 놓으려 한다”며 거세게 비판했다. 언론 탄압과 빈부 격차 때문이다.

임현주 기자


◆신(新)러시아=1991년 8월 소련 공산당 보수파의 쿠데타(8월 18~21일)가 국민 저항으로 실패하면서 공산체제가 무너지고 민주국가로 재탄생한 러시아를 가리킨다. 초대 대통령이었던 보리스 옐친은 체제와 사상의 혼란 속에 혼돈의 시대를 보냈고, 2000년 취임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강력한 리더십으로 자원외교를 강화하고 국가 위상을 높이면서 안정기를 맞았다.



옐친, 1991년 쿠데타 진압 … 실권 장악

소련 무너뜨린 역사적 그날


1996년 6월 록 콘서트에 참석한 보리스 옐친 당시 러시아 대통령이 무대 위에서 댄서들과 춤을 추고 있다. [로스토프 AP=연합뉴스]

1991년 8월 러시아 의회에서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에게 메모를 건네며 낭독하라고 윽박지르고 있다. [모스크바 AFP=연합뉴스]


1998년 8월 옐친 대통령(오른쪽)이 크렘린궁에서 업무 보고를 위해 들어온 푸틴 연방보안국 국장에게 자리를 권하고 있다. [모스크바 AFP=연합뉴스]


그것은 세계를 뒤흔든 사건이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의 일이다. 1991년 8월 19일 보리스 옐친(1931~2007) 당시 러시아 대통령이 모스크바의 러시아공화국 의사당 앞에서 탱크 포탑 위에 올라탔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대통령의 페레스트로이카·글라스노스트(개혁·개방정책)에 반기를 든 공산당 보수파가 쿠데타(18~21일)를 일으켜 그를 체포하려 혈안이 돼 있던 때였다.

옐친은 탱크 위에서 러시아 국민에게 “쿠데타 세력에 당당히 맞서자”고 촉구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리려던 세력에 맞선 옐친은 ‘용기 있는 리더십’으로 공산주의 소련을 무너뜨리고 러시아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이 역사적 장면이 신(新)러시아의 시작이다.

 일요일이던 그해 8월 18일 밤 국가보안위원회(KGB)와 국방·내무부의 공산당 보수 강경파들은 국가비상사태위원회를 구성하고 흑해 크림반도의 별장에서 휴가 중이던 고르바초프를 찾아가 사임을 요구했으며 이를 거절한 고르바초프를 별장에 감금했다. 그리고 탱크부대를 모스크바에 진입시켰다. 쿠데타 세력은 고르바초프로부터 핵미사일 발사장치까지 빼앗았다. 모스크바 인근 별장에서 이 소식을 들은 옐친은 쿠데타에 대항하자는 내용의 대국민 성명을 작성했다.

 이튿날 역사적인 탱크 포탑 연설이 이뤄졌다. 옐친은 쿠데타군이 모스크바를 장악할 경우 임시정부를 만들어 대항할 계획까지 세워놓았다. 쿠데타군이 모스크바 시내로 밀고 들어온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수천 명의 옐친 지지자들이 의사당 주변으로 몰려들어 바리케이드를 설치했다. 20일 청년 3명이 쿠데타군의 총에 맞아 숨지자 더 많은 시민이 모여 항의했다. 국제적 비난도 거세졌다. 그러자 쿠데타에 참가한 군부대는 갈팡질팡하다 21일 탱크를 철수시켰다. 쿠데타 주모자 대부분은 곧바로 체포됐다.

 공산체제로의 복귀를 꾀했던 쿠데타는 72시간 만에 진압됐다. 옐친은 쿠데타 진압을 계기로 공산당의 활동을 금지시키는 등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손발을 묶었다. 정치적 치명상을 입은 고르바초프는 그해 말 사임하고 옐친이 신러시아와 독립국가연합(CIS)을 이끄는 최고 권력자가 됐다.

정현목 기자



푸틴 vs 메드베데프 … 내년 3월 또 한번 선택

중·장년층 - 청년층 지지 엇갈려

내년 3월로 다가온 러시아 대선은 향후 러시아의 20년을 좌우하는 중대한 기로다. 옛 소련 공산체제를 경험한 중·장년층과 ‘소련’ 자체를 모르는 젊은 층이 어떤 선택을 내릴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강한 러시아’의 부활을 꿈꾸는 이들은 푸틴을 지지한다. 특히 미국에 맞섰던 강대국이었던 옛 소련에 향수를 가진 중·장년층은 푸틴의 안정적인 지지 기반이다. 반면 지식인과 청년층 사이에는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추구하는 ‘서구식 근대화’가 필요하다는 여론도 확산되고 있다. 독선과 부패로 얼룩진 러시아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달 러시아 여론조사기관 라바다가 조사한 결과 푸틴과 메드베데프의 선호도는 각각 68%, 66%(복수 선택)로 팽팽했다. 카리스마와 리더십을 앞세운 푸틴이 최근 수년간 80%대 지지율을 보인 것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푸틴은 5월 여당인 통일러시아당의 구심력이 떨어지는 것에 위기감을 느끼고 새로운 정치조직 ‘국민전선’을 결성했다. 대선을 향한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메드베데프는 “러시아의 미래는 새로운 기술에 있다”고 주장하며 근대화가 러시아의 최우선 과제임을 강조한다. 이는 푸틴을 수구세력으로, 자신을 개혁세력으로 포장해 재선 주자로 각인시키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러시아 정치 전문가들은 “대선 출마를 놓고 둘 간에 합의가 이뤄졌다는 추측도 있지만 둘 모두 대선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하고 있다. 최근 양측의 자발적인 응원부대가 결성되는 등 이번 대선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어느 때보다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러시아의 미래를 내 손으로 결정하겠다는 바람이다.

민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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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os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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