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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2003년 12월 12일. 모스크바  붉은 광장. 필자는 왼쪽으로 보이는 바실리사원, 오른쪽에 크렘린 성벽과 레닌묘를 등지고 있다.)


모스크바의 심장부인 붉은 광장을 연상하면 대부분 빨간색을 떠올립니다. 막상 붉은 광장에 처음 오는 한국 사람들의 첫마디는 “에이, 붉은 구석이 하나도 없네?” 입니다.
고대 러시아어에 “붉다”(크라스늬)는 단어의 뜻은 “ 아름답다”(크라시븨) 라는 의미로 사용 되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아름다운 광장” 이라고 불렀지만, 후대의 사람들이 “붉다” 라는 말의 어원을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에 “붉은 광장”이 되어진 것이죠.
2차 세계대전 후 1945년 5월 9일 , 당당히 독일군을 이기고 전승 기념식과 축제를 열었던 곳도 역시, 붉은 광장입니다. 붉은 광장의 넓이는 73000km2 에 이릅니다.

넓은 붉은 광장에 빼놓을 수 없는 것! 바로 바실리 사원이지요. (*아래 사진 참조) 바실리 사원은 이반대제가 카잔 칸을 점령하면서 기념으로 1550년 경에 건축된 사원입니다. 당시 이반대제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수도사 “바실리” 의 이름을 따서 바실리 사원으로 지었습니다. 바실리 사원은 보기만 해도, 동화에 나라에 온 것 같이 참으로 신비롭고 아름답습니다. 당시 꽃이나 식물들의 천연 자연의 색상을 이용해 , 사원의 돔을 칠했다고 합니다.

당시 사원을 지은 건축가에게 이반 대제가 물었습니다. “자네, 이렇게 아름다운 사원을 또 지으라면 지을 수 있겠는가?” . 건축가가 대답합니다. 안타깝게도 이반 대제는 건축가의 “네” 라는 대답 한마디에 , 다시는 이렇게 아름다운 건물을 다른 곳에서 지으면 안된다며, 두 눈을 뽑아버렸다고 합니다. (역사책에도 나오는 사실입니다~!!!)

붉은 광장은 크레믈린과도 붙어 있습니다. 크레믈린 궁, 미국의 백악관도 같은 곳이죠? 제정 러시아 시절에는 왕가가 살았던 궁전이었습니다. 크레믈린은 높은 성벽으로 이루어져 있고, 좀더 정확한 발음은 “ 크렘린” 입니다. (러시아에서는 크레믈린 이라는 말을 못 알아 듣지요.) 많은 사람들이 붉은 광장과 크레믈을 착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붉은 광장을 다녀오고, “나는 크렘린까지 다 갔다.”고 우기는 사람들도 있지요.

크렘린의 역사는 12세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147 년 유리 돌고루끼 라는 공에 의해서 모스크바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모스크바 도시가 세워질 당시 , 이곳은 침엽수로만 가득했습니다. 그 침엽수를 모두 깎고, 목조 건물로 , 목조 벽으로 지은 건물이 바로 크레믈 이지요. 크레믈은 러시아어로 “성벽” 을 뜻합니다. 마을 단위를 형성하고 생활하던 사람들이, 시대가 변함에 따라 건축 양식을 석조건물로 바꾸면서, 오늘날의 크렘린은 16~18 세기에 모습을 지켜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크렘린은 총 20개의 망루로 둘러 쌓여져 있습니다. 그 안에 영빈관 , 박물관, 사원, 수도원, 공원 등 다양한 건물들이 있고, 세계 최대의 종과 대포가 있습니다. 20개의 탑은 저마다 이름이 있습니다. “성모 승천 탑”, “삼위 일체탑” 등.. 모두 기독교 성화에서 나온 탑이지요. 공산주의 시절 전까지는 모두 그 탑마다 성화를 걸어놓고, 성화의 이름에 따라 탑의 명칭을 정했는데, 공산주의를 택하면서 종교를 인정할 수 없자 성화를 모두 떼어냈습니다. 그래도
그 명칭은 아직도 그대로 불리어 집니다

크레믈린 19탑은 성화에서 명칭을 따왔다면, 유일한 하나 바로 “ 보로삐츠카야 바쉬냐” 라는 침엽수의 어원을 두고 있는 탑이 있습니다. 실제로 매일 같이 푸틴 대통령과 , 역대 러시아 대통령들이 출퇴근을 했었는데요, 이 탑의 이름이 다른 이유는 바로 이곳에서부터
크렘린의 역사가 시작됐고, (침엽수로만 가득했었다고 했었죠?) 크렘린이 규모를 확장해 나가는 것도 항상 이 탑을 기준으로 했었습니다.

크렘린에서 살던 사람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구가 증가되고, 후에는 크렘린 궁 내에 있던 사람들이 성 밖으로 쫓겨나 , 지금의 붉은 광장 주변에 목조 건물들을 짓게 되면서 상인들이 늘어났다고 합니다. 너무나 크렘린 주변이 지저분하고 , 복잡해지자 16세기의 이반 대제가 “모든 건물을 철거하라!” 는 명령을 내리고, 크렘린에 바실리사원부터 아름다운 건물들을 짓고 , 주변을 깨끗하게 정돈해 사람들이 모두 “ 아름다운 광장 ” 으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반 대제는 실제로 성격이 번개 같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반 대제 보다는 이반 뇌제로 많이 불렀습니다. 바실리 사원의 건축가 두눈을 뽑아버렸다는 예만봐도 , 뇌제로 불릴만 하지요??


(글/ 2003년 MBC 모스크바 통신원으로 활동하던 시절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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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os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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