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전화 25년史 함께 한 내 번호, 뿌듯해요”
ㆍ카폰부터 휴대전화까지 011의 200 국번 쓰는 공동석씨
자유로운 번호이동으로 ‘010’ 식별번호 사용자가 70%를 넘는 요즘. 이동전화가 처음 탄생했던 날부터 지금까지 25년간 그 번호 그대로 사용해온 사람이 있다.
카폰부터 휴대전화까지 011의 200국번을 쓰고 있는 순덕철강 대표이사 공동석씨(61). 올해로 창립 25주년을 맞은 SK텔레콤과 역사를 같이한 사람이다.
1984년 이동통신회선이 많지 않던 시절. 공씨는 법인명의로 카폰 4대를 신청해 어렵게 2대를 개통받던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당시 카폰 회선이 전체 2000개밖에 없었기 때문에 추첨을 통해 번호를 받았다. 로또 당첨된 것처럼 운좋게 카폰을 개통했다.”
서울 용두동 본사에서 최근 기자와 만난 공씨는 손바닥보다 작은 휴대폰을 보며 “격세지감(隔世之感)”이라고 말했다.
공씨는 “카폰을 달고 차 뒤쪽에 1m 안테나를 세우고 다니면 교통경찰도 항상 경례를 했다”면서 “나보다 운전기사가 더 뿌듯하다며 어깨를 들썩이고 다녔다”고 회상했다.
당시 카폰을 장만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기계 값만 290만원이었고 가입비는 200만원 가까이 냈다. 그때 그 돈이면 포니 한 대를 살 수 있었던 금액이다. 통신요금은 좀 비싼가. 전화 한 통화당 요금이 1000원을 넘었다. 그 시절 직장인들 한 달 임금이 6만~7만원 정도 했으니 카폰 통화량이 조금만 늘어나면 일반 직장인들 월급을 통신비로 내는 셈이었다.
카폰에 얽힌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다. 94년 10월21일 아침. 성수대교를 건너 출근을 해야 하는데 “대교가 붕괴됐다”며 진입을 차단해 동호대교로 돌아서 회사에 늦게 도착했다. 그날따라 카폰을 끄고 출근했던 공씨는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직원들이 “집에서 전화가 수십통쯤 걸려왔다”고 전했다. 공씨가 집으로 전화를 걸어 “여보세요”라는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부인이 수화기를 붙잡고 펑펑 울었다. 공씨는 “집사람이 사고 소식을 듣고 카폰으로 전화를 했는데 계속 연결이 안돼서 사고를 당한 줄 알았다”면서 “그 뒤로 카폰을 휴대전화로 바꿨다”고 말했다.
공씨는 지금까지 휴대전화 단말기는 3번 바꿨다. 그는 “통화나 문자 외에 복잡한 기능은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기계를 오래 쓴다”면서 지금은 공짜폰이 되어버린 삼성 애니콜 구형 모델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처음 휴대전화로 문자 보내는 것은 공씨에게 너무나도 어려운 숙제였다. 삐삐처럼 누르고 녹음하는 단순한 기능이면 얼마나 좋으련만. 문자를 보내기 위해 타자 키보드 연습하는 것처럼 부단히 노력했다.
그랬던 그가 요즘은 두 며느리와 수시로 문자를 주고 받느라 정신이 없다.
정부에서 휴대전화 번호를 010으로 통합하게 되면 가장 아쉬움이 남는 사람은 공씨다. 25년간 정들었던 번호를 바꿔야 한다면 그 기분은 어떨까.
공씨는 “세월이 변하면 모든 것이 바뀌게 마련이니까, 그렇게 생각한다”면서 “아쉬움은 남겠지만 바꿔야 하면 또 거기에 맞춰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임현주기자 korearu@kyunghyang.com>
카폰부터 휴대전화까지 011의 200국번을 쓰고 있는 순덕철강 대표이사 공동석씨(61). 올해로 창립 25주년을 맞은 SK텔레콤과 역사를 같이한 사람이다.
1984년 이동통신회선이 많지 않던 시절. 공씨는 법인명의로 카폰 4대를 신청해 어렵게 2대를 개통받던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당시 카폰 회선이 전체 2000개밖에 없었기 때문에 추첨을 통해 번호를 받았다. 로또 당첨된 것처럼 운좋게 카폰을 개통했다.”
서울 용두동 본사에서 최근 기자와 만난 공씨는 손바닥보다 작은 휴대폰을 보며 “격세지감(隔世之感)”이라고 말했다.
공씨는 “카폰을 달고 차 뒤쪽에 1m 안테나를 세우고 다니면 교통경찰도 항상 경례를 했다”면서 “나보다 운전기사가 더 뿌듯하다며 어깨를 들썩이고 다녔다”고 회상했다.
당시 카폰을 장만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기계 값만 290만원이었고 가입비는 200만원 가까이 냈다. 그때 그 돈이면 포니 한 대를 살 수 있었던 금액이다. 통신요금은 좀 비싼가. 전화 한 통화당 요금이 1000원을 넘었다. 그 시절 직장인들 한 달 임금이 6만~7만원 정도 했으니 카폰 통화량이 조금만 늘어나면 일반 직장인들 월급을 통신비로 내는 셈이었다.
카폰에 얽힌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다. 94년 10월21일 아침. 성수대교를 건너 출근을 해야 하는데 “대교가 붕괴됐다”며 진입을 차단해 동호대교로 돌아서 회사에 늦게 도착했다. 그날따라 카폰을 끄고 출근했던 공씨는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직원들이 “집에서 전화가 수십통쯤 걸려왔다”고 전했다. 공씨가 집으로 전화를 걸어 “여보세요”라는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부인이 수화기를 붙잡고 펑펑 울었다. 공씨는 “집사람이 사고 소식을 듣고 카폰으로 전화를 했는데 계속 연결이 안돼서 사고를 당한 줄 알았다”면서 “그 뒤로 카폰을 휴대전화로 바꿨다”고 말했다.
공씨는 지금까지 휴대전화 단말기는 3번 바꿨다. 그는 “통화나 문자 외에 복잡한 기능은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기계를 오래 쓴다”면서 지금은 공짜폰이 되어버린 삼성 애니콜 구형 모델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처음 휴대전화로 문자 보내는 것은 공씨에게 너무나도 어려운 숙제였다. 삐삐처럼 누르고 녹음하는 단순한 기능이면 얼마나 좋으련만. 문자를 보내기 위해 타자 키보드 연습하는 것처럼 부단히 노력했다.
그랬던 그가 요즘은 두 며느리와 수시로 문자를 주고 받느라 정신이 없다.
정부에서 휴대전화 번호를 010으로 통합하게 되면 가장 아쉬움이 남는 사람은 공씨다. 25년간 정들었던 번호를 바꿔야 한다면 그 기분은 어떨까.
공씨는 “세월이 변하면 모든 것이 바뀌게 마련이니까, 그렇게 생각한다”면서 “아쉬움은 남겠지만 바꿔야 하면 또 거기에 맞춰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임현주기자 korear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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