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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로호 발사가 실패를 하면서, 2008년 4월8일 이소연씨가 우주로 날아가던 그날의 기억을 떠올려봤습니다.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에서는 소유즈 우주선이 발사되는 곳과 1.5km 떨어진 곳에 세계 최초여성우주인 발렌티나 테레시코바와, 세계 최초로 우주를 유영한 알렉세이 레오노프가 있었습니다.


러시아 출장을 떠나기 전부터 발렌티나 테리시코바와 관련된 인터뷰 기사를 읽고, 또읽었으며, 그의 젊은 시절 사진부터 70대 모습까지 앞모습, 옆모습을 익혔습니다. 국내에서는 이소연씨가 ‘우주인이다, 아니다’라는 자격 논란이 있었지만, 왠지 그 현장에는 발렌티나 테리시코바가 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로 출장을 떠나기 전, 러시아 대사관에 근무하는 지인에게 도움을 요청해 러시아 연방우주청 공보담당관 전화번호를 따냈습니다. 시차를 맞춰가며 통화를 시도하고, 이메일을 보내며 연락을 취한 끝에 “발렌티나 테레시코바가 4월 8일 바이코누르로 가는 전용기에 탑승을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죠.


교육과학기술부, 항공우주연구원에 ‘발렌티나 테레시코바 인터뷰를 요청한다’고 했지만 “불가능하다. 스케줄 확인조차 어렵다”고 말했었지요. 간절히 원하고 원했던 까닭인지, 러시아 출장길에 모스크바를 들러,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 가서 소유즈호가 하늘로 발사되는 광경을 발렌티나 테레시코바와 함께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박종구 교과부차관과 한국 기자단이 관람을 했던 위치는 야구장 1루석쯤 됐습니다. 정 중앙에는 3층 건물이 있었고, 소유즈 우주선을 정 중앙으로 바라보는 그곳에는 발렌티나 테레시코바가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매일경제 김은표 선배가 취재 기자단 간사를 하는데, 선배에게 이야기를 했죠. “발렌티나 테레시코바 인터뷰를 꼭 따내고 싶다. 저 건물 안에 있을 것 같은데, 인터뷰 성공하면 꼭 풀을 할테니 나만 들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김 선배는 박종구 차관을 불러 얘길 했습니다. “임기자만 들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러시아 경비에게 저는 정부측 사람인 것으로 얘길하고 들어갔지요. 3층 건물은 경비가 삼엄했는데, 박 차관과 이소연씨 가족이 발사 장면을 지켜보는 그 곳 주변을 3바퀴쯤 맴돌며 경비가 삼엄한 그 상황을 확인했습니다. 2-3바퀴쯤 돌면서 입구와 위치를 파악하고 있는데,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는 난관에 어떤 할아버지를 러시아 방송 기자들이 인터뷰하고 있더라고요. 갑자기 사람들이 “어, 레오노프다!”라고 소리치는 것을 들었습니다.

발렌티나 테레시코바는 알았는데, 레오노프는 잘 몰랐습니다. --;

일단 저기다 싶어서 1층 경비가 소홀한 틈을 타서 건물 안으로 들어갔죠.

중앙 문을 지나자마자 왼쪽에 계단을 따라 올라갔습니다. 2층을 지나 3층으로 올라가는데 레오노프가 인터뷰를 하고 있었고, 철 사다리같은 난간 위쪽으로 검은색 선글래스를 낀 한 70대 여성이 눈에 띄었습니다. 바로 발렌티나 테레시코바였죠.


어렵게 다가갔습니다. “한국에서 온 기자인데, 잠깐 인터뷰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한 마디로 딱 잘라서 말했습니다.

 “음. 여긴 나만 보는 장소인데. 미안하지만 내려가 줘요. 당신 얼굴에 ‘한국사람’이라고 써있으니, 멀리서 왔다고 설명 안 해도 한국에서 온 기자인지 알겠어요.”

좀 당황스러웠지만, 그냥 내려갈 순 없었죠. 보름 넘게 준비한 인터뷰였고, 사실 1963년 세계 여성 최초로 우주를 갔던 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이소연을 바라보는지 궁금했습니다.

“딱 1분만요. 1분만 있다가 내려갈게요. 재촉하지 마세요.”..

난 그렇게 그와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발렌티나 테레시코바는 부유하지 않은 가정 형편에, 소련이 미국과 우주 경쟁을 벌이며 세계 최초 여성 우주인을 누가 먼저 탄생 시킬 것이냐 신경전을 벌일 당시 높은 경쟁률을 뚫고 관문을 통과했던 여성이었습니다. 모스크바에 ‘마이’라는 유명 항공하고 출신 지원자도 있었지만, 불우한 형편에 지방에서 생활하며 공장에서 일을 했던 그녀에게 ‘천운’의 기회가 올 줄은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죠.


“1963년, 당신이 저기 저 소유즈 안에 있었을 때 어떤 마음으로 기도를 했나요.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두려움도 있었을 텐데, 그때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나요.”

발렌티나 테레시코바는 입을 열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를 했지요. 눈을 뜰 수 없었죠. 왜 긴장이 안됐겠어요. 난 1년 넘게 치열한 체력 테스트를 받고, 혹독한 훈련을 했어요.”

“당신은 45년전 ‘조종사’신분으로 우주를 갔지만, 이소연씨는 ‘연구원’신분으로 우주를 가요. 아무래도 준비 과정이나 우주에서 임무 수행하는 영역에서 차이가 있을텐데. 이소연씨에게 선배로써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어요.”

“음... 이소연은 즈뵤즈드늬이 고로독(star city)에서 잠깐 봤어요. 그와 깊은 대화를 나눠보지 못했지만, 속이 깊고 참 괜찮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죠. 이소연씨가 연구인 신분으로 우주를 가던, 내가 조종사 자격으로 갔던 그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전문적인 지식의 깊이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우주에서 임무를 수행한다는 것은 같지 않나요.”


발렌티나 테레시코바는 이소연에 대해 부정적인 야이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잠시 후 방송이 나왔고, 소유즈 호가 발사된다는 신호가 나왔다. 발렌티나 테레시코바는 나에게 “난간을 꼭 잡으라”고 조언했고, 잠시 후 강한 지진이 일어난 것 처럼 땅이 흔들리고 건물이 울리면서 나는 정면에서 소유즈호가 발사되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나로호가 비스듬이 발사되는 것과는 다르게 소유즈는 정 중앙으로 반듯하게 하늘로 올랐습니다. 마치 용이 땅 아래로 불을 뿜듯 강한 열을 쏟아내며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저는 두려웠습니다. 온 몸으로 느껴지는 전율이 마치 나를 귀머거리로 만들어버릴 것만 같이 나의 두 귀를 감싸고, 두 눈은 우주선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방송에서 ‘성공적으로 발사됐다’며 소유즈 우주선이 어느 높이만큼 날아갔는지 중계를 해줬고, 레오노프는 “우라!(만세)”를 외치며 성공적으로 발사되었다고 좋아했죠. 발렌티나 테레시코바 할머니는 “얼마나 아름다운 전율이냐!”며 감탄사를 내뿜었다.



(사진설명. 2008년 4월 8일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발사대 정 중앙 건물 3층에서 세계 최초 여성우주인 발렌티나테레시코바(가운데)와 알렉세이 레오노프와 함께 기념 촬영을 했다.)

 

 


발렌티나 테레시코바는 소유즈가 우리 시야를 벗어나고, 시간이 40분쯤 경과됐을 때 “한나(러시아에서 쓰는 제 이름), 우리 같이 내려가서 샴페인을 터뜨리자”고 제안을 했죠.

건물 2층에는 가슴에 완장을 차고있는 러시아 연방우주청 관계자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샴페인을 터뜨리고 초콜릿을 먹으며 ‘또스트(축사)’를 건넸죠.


발렌티나 테레시코바가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슬라바 보그! (하나님께 영광을~!). 먼저 오늘 소유즈가 성공적으로 발사된 것이 참으로 기쁘다. 우리가 봄, 가을마다 우주선을 쏘아올리면서 이렇게 수익을 거둘 수 있어서 다행이다. 우주산업이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면 여기 있는 여러분과 나는 실업자로 전락했을텐데, 다행이 우리는 먹고 살 걱정 없이 이렇게 잘 살고 있다. 올 가을에도 이곳 바이코누르에서 우주선이 발사 될텐데, 문제 없이 성공을 거둘 수 있기를 바란다.”


그녀의 축사는 내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러시아는 돈을 위해, 순전히 돈을 받고 연례 행사로써 한국의 우주인을 배출한 것이었다는 고백을 듣는거나 다름 없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는 우주인을 배출하고 싶은 여러 나라들로부터 돈을 벌어들여서 달탐사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우주 사업을 확장하는데, 우린 우리기술로 우주선은 커녕, 제대로된 우주인 하나 배출할 수 없어서 ‘연구원’신분으로 첫 우주인을 보내야했다는 게 마음이 아팠습니다.


10일게 모스크바 임무통제센터(MCC)에서 만난 러시아 신문 매체의 한 기자는 내게 다가와 물었죠.
“정말 이해가 안된다. 러시아에서 지금까지 우주인을 보내면서 한 번도 ‘연구원’이란 신분으로 보낸 적이 없다. 이소연씨도 한국에서 과학도였던데, 물론 준비 기간이 짧긴 하지만 이건 정말 이해가 안된다. 한국에서도 우주관광객 논란이 있었다고 하던데, 좀 안타깝다”고.

 

그날 기자회견장에서 난 러시아 연방우주청 관계자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러시아에서 제작한 카달로그에 이소연씨 신분이 ‘우주인’이 아닌 ‘연구원’ 신분으로 되어있다. 이것은 러시아에서도 이소연씨를 진정한 ‘우주인’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이야기 아닌가.”

러시아 연방우주청 관계자는 “우주인이냐, 연구원이나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며 명쾌하지 않은 답변을 늘어 놓았습니다.


다음날(11일) 한국 기자단은 모스크바 쉐르메쩨보 공항을 통해 출국을 했고, 나는 러시아 우주인의날(4월12일) 기념 행사가 즈뵤즈드늬이 고로독(star city)에서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모스크바 북동쪽에 차량으로 한 시간쯤 이동해야하는 그곳으로 갔습니다.


모스크바 전철역 숄코프스카야(?)에서 마르쉬루트(봉고 택시)를 탔죠. 렌트를 해서 갈 수도 있었지만, 가는 길에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부딪쳐보고 싶었습니다. 오랜만에 방문한 고향인 만큼 가는 길, 골목 골목을 눈과 가슴에 담고 싶었죠.

봉고 택시에 타서 차비를 내고 거스름돈을 돌려받을 때 쯤 내 왼쪽에 앉은 60대 아저씨가 제게 말을 건냈습니다. “스타 시티에는 무슨일로 가냐?”고. 저는 “만날 사람이 있어서 간다.”고 답했죠. 한참을 그분과 얘기하다보니 그분은 이소연, 고산씨가 훈련을 받았던 스타 시티에서 이소연과 고산을 가르쳤던 교수님이었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그분은 말했습니다.

“지금 스타시티에 일본인 우주인들이 훈련을 받고 있어요. 일본은 한국보다 훨씬 앞서서 러시아에서 우주인을 배출하면서 깨달았는지, 지금은 러시아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사람들을 보내왔어. 고산이나 이소연씨랑 수업할 때는 사전 놓고, 가끔 통역 불러 수업하곤 했는데, 일본 사람들은 스폰지처럼 흡수하더라고. 언젠가 한국도 그런 날이 오겠지? 그러다보면 한국 기술로 우주인을 배출할 날도 올테고. 궁금증이 많은 아가씨, 그럼 또봐요. 난 오늘도 수업이 있어서....” (관련기사, 월간조선 2008년 5월호)


봉고 택시가 목적지에 도착할 때쯤 그 아저씨는 서둘러 내렸습니다.

저는 스타시티 구석 구석을 취재할 순 없었지만, 행사장 안에서 발렌티나 테레시코바와 레오노프 할아버지를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었고, 취재 계획의 소기 목적을 달성하고 돌아왔습니다.


사실 우주선이 발사되던 날 발렌티나 테레시코바의 축사 멘트는 한동안 내 기억 속에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 나라가 있어서..... 우리가 실업자가 안되고.....”


오늘 나로호 발사가 실패됐고, 러시아는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 궁금하네요.

3차 발사가 언젠가 이뤄지겠지만, 사실 우주 사업 프로젝트의 핵심은 ‘기술 이전’인데, 2년전 이소연씨가 우주에 갔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우린 ‘러시아’라는 우주 강국 앞에서 눈치만 보면서 할 말 못하고, 끌려가듯 사업을 진행하는 게 아닌지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오늘, 회사에서 야근하다가 방송 중계 자료 화면에 2008년 4월 8일 자료화면을 봤습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오늘은 그 당시 기사로 못 다한 이야기를 풀어놓고 싶어 몇 자 적었습니다.

Posted by mos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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