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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서 살면서 얻은 교훈이 있다.

경제적 가난함은 절대적 가난함이 아니라는 사실.


마스크비치(모스크바 시민)들은 예나 지금이나 주5일제를 철저히 지키고, 금요일 저녁이면 모두 시외에 있는 다차(별장)로 떠난다. 모스크바는 계획도시라 단독 주택이 없다. 스탈린 시절에 지어진 아파트가 대부분이어서 마스크바치들은 잘사는 사람이든 못사는 사람이든 시외에 다차를 하나씩 소유하고 있다.

어린시절 유치원에서 불렀던 노래 가사처럼. (“우~리 집은 내손으로~ 지을 거예요~”.)


경제적인 능력과 관계없이 사람들은 주말마다 다차로 이동해 창문틀, 대문 손잡이를 고치고 자기가 원하는, 자기만의 집을 만들어간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다차에 앞뒷마당에 오이, 토마토, 감자 등 채소를 심어 먹는다. 약간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다차에 사우나 시설까지 만들어 놓고, 겨울이면 그곳에서 사우나를 즐기기도 한다. 우리처럼 녹색 때밀이 타월은 없어도, 자작나무 가지처럼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말려서 몸을 두드리며 열을 낸다.


러시아인들에게 문화생활은 삶이다.

겨울이면 발레, 오페라 공연을 보고 여름이면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음악 콩쿨, 연주회 등을 즐긴다. 학생들은 학생증만 있으면 무료로 입장 가능하다. 음대생들은 음악회가 무료고, 연극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공연이 무료다.

빵 사먹을 돈은 없어도, 생활비를 쪼개서 문화생활은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놀랐다.

문화 예술의 깊이가 하루아침에 쌓인 게 아니구나 싶었다.


한번은 지젤이라는 발레 작품을 보는데, 사람들이 주연이 아닌 조연에게 더 큰 박수를 보냈다. 그들은 프리마돈나라고 해서 무조건 박수를 치지 않는다. 어느 타이밍이 어떻게 손짓을 하고 어떻게 발짓을 하는지 다 평가한 다음에 냉정하게 박수로 답을 한다. 같은 작품을 6번 7번씩 보니까 발레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나도 조금씩 공연을 보는 눈을 뜨게 됐었다.


모스크바 북서쪽에는 전승기념관이 있다. 지하철 역으로는 빠르크 빠뻬듸. 우리말로하면 승리의 공원이다. 전승기념관에는 2차세계대전 당시의 사진 자료들이 많이 담겨있다. 1941년부터 45년까지 전쟁으로 겪으며 270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하에는 2700만명의 용사 이름이 적힌 책이 보관되어있고, 천장에는 길이가 다른 줄마다 크리스탈이 박혀있다. 크리스탈은 전쟁을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가족이 흘린 눈물을 상징한다고 했다.


전승기념관 2층으로 올라가면 1939년 독소불가침조약을 맺었던 서류가 원본으로 보관되어있고, 전쟁 발발 2주전 타스통신에서 “스탈린이 확인해본 바 독일은 절대 러시아로 쳐들어오지 않는다. 이상한 소문에 동요되지 말고 믿으라.”는 내용의 신문 기사가 스크랩되어있다.


1941년부터 시간대별로 전시되어있는 사진을 보면 나치정권이 얼마나 잔인하게 사람을 실험했는지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1층 파노라마 관에는 6개로 나뉘어져 2차세계대전 때 상징적인 전투 상황을 재연해놓았다.

스탈린그라드 전투, 상뜨 뻬쩨르부르그(레닌그라드)에서의 전쟁 상황 등을 실제와 흡사하게 묘사했다.


가장 인상깊었던 파노라마관은 레닌그라드 전투였다. 레닌그라드에서는 900일 넘게 전쟁이 계속됐는데 겨울궁전, 이삭성당 등 문화적 가치가 있는 유산들을 보호하기 위해 공중으로 탄을 발사해 상대의 미사일이 러시아 문화유산을 파괴하지 못하도록 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레닌그라드관 벽화에는 전쟁 중에도 계속됐던 음악회, 연주회 포스터들이 그려져있다.

쇼스타코비치가 지휘하는 콘서트, 몇월 며칠...


우리네 상식으로는 전쟁 중에 음악회를 하고 문화 공연을 한다는 것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러시아인들에게 음악과 예술, 공연은 그들이 긴 전쟁을 견디고 이겨낼 수 있는 힘이자 원동력이 된 것이다.

당시 러시아 사람들이 하루에 배급받았던 빵은 250그램이었다. 작은 빵 쪼가리 하나로 하루를 버텨야하는데, 그 굶주린 배를 붙잡고 음악회를 갔다.


러시아 사람들에게 문화생활은 삶 그 자체였던 것이다.


서울에서는 러시아 생각나서 몇 번 음악회, 공연 등을 다녀보는 시도를 했지만 그때마다 연주자들의 실력에 실망을 하고 돌아왔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악보에 적힌 콩나물만 보면서 연주하는 것과, 연주자와 악기가 하나가 되서 하나의 영혼으로 연주하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아,
갑자기 러시아에서 누렸던 문화생활이 그리워진다.



Posted by mos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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