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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7월 31일자 경향신문

‘오늘은 단역, 내일은 주연’ 프로야구 2군의 하루
 
프로야구 1군이 영화의 주연이라면 2군은 단역이다. 온종일 땀을 쏟아 짧디 짧은 한 컷에 출연하면서도 내일의 스타를 꿈꾸며 사는 게 2군이다.

두산 2군 박종훈 감독이 지난 27일 SK전을 마친 뒤 선수들을 집합시켜 총평을 하고 있다. |두산베어스 제공


영화와 야구의 공통점은 일단 감독 눈에 들어야 한다는 것. 배역은 한정돼 있고 누구나 번듯한 역할을 맡고 싶어하지만, 실력이 없으면 기회도 없다. 단 한번의 기회를 잡기 위해 폭염보다 뜨거운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는 땀의 현장, 두산의 2군 훈련장을 찾았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지난 27일 오전 8시. 잠실구장 앞에서 두산 2군 선수 20여명이 코칭스태프와 함께 45인승 버스에 올랐다. 목적지는 경기 이천시 백사면의 베어스필드. 팀 숙소를 배정받지 못해 출퇴근을 감수하는 선수들이 버스에 탔다. 2군에서도 좀더 나은 실력을 보여야 숙소 생활을 할 수 있다.

덩치 큰 선수들의 무릎이 앞 좌석에 닿는 비좁은 버스. 1군 선수단의 25인승 버스가 비행기 비즈니스 클래스라면 2군 버스는 ‘이코노미’다. 좌석을 업그레이드하려면 마일리지가 아닌 실력을 쌓아야 한다.

1시간후쯤 도착한 2군 훈련장. 숙소 멤버 15명은 이미 워밍업을 시작했다. 오전 6시30분에 일어나 조깅, 샤워, 식사를 마쳤다. 오전 9시, 모두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그라운드에 집합. 선수들의 얼굴이 중남미 용병처럼 시커멓다. 선크림을 잔뜩 바르며 늘 신경은 쓰는데도 하루종일 땡볕 아래 구르다보니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이동하는 사이에 화장실을 찾아 2층 건물을 뒤졌으나 오직 ‘남자 화장실’뿐. 마치 군부대같다.

◇야구만 하는 게 아니다=오전 9시부터 시작한 훈련은 2시간 남짓 이어졌다. 훈련 외에 부수적인 일까지 선수들의 몫이다. 선수들은 코치를 따라 불펜과 그라운드로 나뉘었다. 타격훈련 할 때 제 차례가 아니면 공을 줍고, 장비를 날랐다. 30도를 웃도는 무더운 날씨에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비오듯 쏟아지는데, 선수들은 “힘들다”는 말 한마디 안하고 씩씩하게 훈련에 임했다.

오전 11시30분 점심시간. 땡볕 아래서 뛰고 왔는데 식당의 점심 메뉴는 뜨거운 돌솥 김치 알밥이었다. 선수들은 “이열치열”이라며 밥 한톨 안남기고 싹싹 비웠다. 그리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그라운드에 나와 경기 준비를 했다.

오후 1시 SK와의 2군 경기. 출전 선수 명단에서 빠진 몇몇이 기록원, 볼보이, 주전자 당번을 맡았다. 2층 기록실에 올라가는 보직은 그나마 나은 편. 경기 내내 공을 줍고 얼음물을 나르는 보조 요원은 금세 땀으로 뒤범벅이 됐다.

5회말이 끝나자 더그아웃에 있던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우르르 몰려나가 물을 뿌리고 땅을 골랐다. 심판 빼고는 모든 일을 선수들이 자체 해결한다.

그런데 딱 하나 해결 못하는 일이 있다. 관중이다. 두산 4번타자 이두환은 “몸이 힘든 건 차라리 낫다”면서 “홈런을 쳐도 아무 반응이 없을 땐 정말 서럽다”고 말했다.

관중이 없다 보니 더그아웃이 바로 관중석이다. 상대 공격때 심판이 “스트라이크”를 외치면 선수들은 “그거야, 그거”라고 소리쳤다. 선풍기 하나 돌아가지 않는 더그아웃은 늘 찜질방처럼 후끈 달아올라 있다.

2시간 만에 경기가 끝났다. 박종훈 2군 감독은 “곧바로 훈련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선수들의 얼굴이 붉은 감자처럼 익었는데 강행군은 계속됐다. 그러나 불평은 단 한마디도 없었다.

박감독은 말했다. “힘든 과정을 극복해야 1군에 가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 체력·기술·정신력, 이 3박자를 모두 갖춰야 2군에서 ‘하산’할 수 있다”고.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오후 4시쯤 훈련이 끝났다. 샤워를 마친 선수들이 세탁실로 왔다. 노란 바구니에 빨래를 구분해 담는 그들. 2군 안에서도 1·2군이 있다. 2군의 2군은 매일 직접 빨래를 해야 한다. 고단한 빨래도 내일의 주전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준비운동이다.

오후 6시 저녁식사 시간. 모처럼 소고기 반찬이 나왔다. 고기를 열심히 굽는데 주방장 아저씨가 나와서 한마디했다.

지난 27일 이천 두산 2군경기장 기록실에서 김강률과 정진수가 기록을 하고 있다. 김강률은 경기후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며 동료들과 오순도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일과를 마친 선수는 가방을 챙겨 숙소로 들어가고 있다. |두산베어스 제공


“현수는 훈련도 무섭게 했지만, 밥도 두세그릇씩 뚝딱 해치웠어. 밥이 보약이거든. 잘 먹고 체력을 쌓아야 현수처럼 1군으로 갈 수 있는 거야.”

최근 1군 주전으로 자리잡은 김현수 얘기였다. 아저씨의 말이 떨어지자 갑자기 젓가락 경쟁이 붙었다. 저마다 “나도 밥 잘먹고 현수형처럼 1군에 올라갈거야”라면서. 그리고 언젠가는 내가 1군 무대의 주인공이 될거라고 다짐하면서.

〈이천|임현주기자 korear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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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os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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