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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통위 “북한은 IP주소 없다” 배후설 근거 부인                     2009년 7월 13일자 경향신문
 임현주기자 korearu@kyunghyang.com
 
ㆍ“일부 언론보도는 소설”… 美업체도 “증거없다”
ㆍ기계硏 광주전산망 없고 디도스 공격도 안받아

지난 7일 시작된 분산서비스거부(디도스·DDoS) 공격에 대해 ‘북한 배후설’을 제기한 국가정보원이 나름의 근거를 계속 내놓고 있다. 하지만 방송통신위원회와 국내·외 보안업체 등 민간 전문가들은 여전히 “기술적 근거가 없다”며 부정적인 입장이다.

국정원은 지난 10일 한나라당 지도부와의 비공개 간담회 등에서 북한을 배후로 판단한 이유를 설명했다.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국정원은 지난달 30일 중국 선양의 북한인 해커 조직이 한국기계연구원 광주전산망에 대해 디도스 공격을 감행했다고 이날 전했다. 이때 사용된 악성 코드 확장자 역시 NLS였고, 따라서 북한이 이번 공격을 위해 사전훈련까지 했다는 것이 국정원의 얘기였다. 그러나 한국기계연구원에는 광주전산망이 없는 것으로 밝혀져, 국정원의 설명은 근거 없는 주장이 됐다. 한국기계연구원 관계자는 “연구원은 대전에 있으며 광주에는 아무것도 없다”면서 “최근에 전산망 공격을 받은 사실도 없다”고 말했다.

국정원이 꼽은 또다른 근거 가운데 하나는 디도스 공격에 사용된 악성 코드 안의 NLS(*nls) 확장자다. NLS는 북한 해커들이 주로 사용하는 확장자이기 때문에 이번 공격의 배후 역시 북한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보안업체 관계자는 “NLS는 마이크로소프트(MS) 윈도의 확장자 중 하나일 뿐”이라며 “만약 해커가 완전범죄를 하려 했다면 확장자를 반복해 사용할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국정원이 북한 해커 조직의 IP가 동원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힌 것에 대해서도 반응은 부정적이다. 방통위 황철증 네트워크정책국장은 “국제인터넷기구(ICANN)에서 도메인과 메인 IP 주소를 설정해주는데, 북한은 IP 주소 할당이 안돼 있다”면서 “북한 IP 주소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북한 IP 주소 확인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국정원이란 정보기관의 자료가 십수년에 걸쳐 만들어진 부분은 인정한다”면서도 “북한을 디도스 공격의 배후로 지목할 만한 기술적 증거는 없다”고 말했다. 또 일부 언론의 ‘북한 해커 조직 IP 확인’이란 보도에 대해서도 “권위 있는 사람의 소설밖에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에서 인터넷을 사용하려면 중국에서 IP를 끌어와 쓰거나 해외 IP를 이용한다”며 “북한 도메인(.kp) 자체 소유권도 독일 사람인 얀 홀트만이 갖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플로리다에 위치한 보안업체 선벨트 소프트웨어사는 공식 블로그를 통해 “한국이 디도스 배후로 북한을 의심하고 있지만 명확한 증거는 전혀 없다”면서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될까 우려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회사는 “악성 코드 최초 진원지로 확인된 미국 플로리다와 독일의 IP를 대상으로 한국이 철저히 분석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보안업체들은 이번 사건의 배후를 확인하는 일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어 사건 자체가 미궁에 빠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1·2차 공격 때 IP 역추적을 예상하고 흔적을 남기지 않고, 3차 공격 후엔 자신이 심어진 컴퓨터 부팅 영역을 파괴하면서 끝나는 시나리오였다”면서 “악성 코드 샘플도 공격 유발, 스팸메일 발송, 다운로드 파일 등 역할분담이 이뤄져 종합적으로 샘플을 분석하는 게 힘들다”고 말했다.

방통위 황 국장은 “시나리오가 3차 공격에 이어 자진 삭제, 자신이 담겼던 컴퓨터도 삭제하고 끝나는 것”이었다며 “상당히 용의주도하다”고 말했다. 그는 “물리적인 공간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데 ‘장갑끼고 마스크 쓰고 흔적을 지우는 것’과 똑같다”고 덧붙였다.

<임현주기자 korear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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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국제인터넷기구 미가입…해외서버 이용                    2009년 7월 13일자 경향신문 
 임현주기자 korearu@kyunghyang.com
 
 
북한은 IP 주소가 없다. 국제인터넷기구(ICANN)에서 북한에 IP 주소를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한이 IP 주소를 할당받기 위해서는 ICANN 회원국으로 가입 신청을 한 뒤 이사회 승인을 받아야 하며, ICANN 운영자금을 납부해야 한다. 다만 현재까지 북한 정부 차원에서 직접적인 가입신청 등의 움직임은 없었다.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독일 주재 북한 대사관 직원을 지낸 독일인 얀 홀트만은 2007년 9월 100만유로를 투자해 조선컴퓨터센터(KCC) 유럽 법인을 설립했다. 이 과정에서 홀트만은 ICANN으로부터 2개의 IP 주소를 부여받았다. ICANN은 IP 주소, 기술적 서버 관리 등은 모두 독일에서 이뤄지는 조건으로 북한에 도메인(.kp)을 허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적으로 북한은 홀트만을 통해 도메인을 확보했고, 홀트만이 이를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북한에 할당된 IP 주소가 없기 때문에 북한에서 인터넷을 사용하려면 중국 등 해외 서버를 이용해야 한다. 다만 북한이 해외 몇개국의 IP 주소를 사용하는지는 확인된 바 없다. ICANN은 북한에 IP 주소를 할당하지 않은 상황에서 도메인이 운영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암묵적인 허용’만 한 상태다. 2009년 7월 현재 ICANN 회원국은 248개국이며, 한국은 1986년에 정식 가입됐다.

<임현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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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7월 11일자 경향신문
‘사이버 공격’ 징후 탐지…국정원 ‘안일 대처’ 혼란 키웠다
 이주영·임현주·송윤경기자 young78@kyunghyang.com
 
방통위에 통보도 안해… ‘경보’ 연기 요구도

국내 보안정책을 총괄하는 국가정보원과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 7일 1차 사이버 공격이 발생하기 3일 전 공격 징후를 탐지하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 혼란을 키웠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국정원은 10일 국회 정보위원회 간담회에서 한·미 주요 기관 인터넷 사이트에 대한 분산서비스거부(디도스·DDoS) 공격의 첫 징후를 지난 4일 파악했다고 보고했다.

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간담회 뒤 브리핑에서 “4일 한국 1만2000대, 미국 8000대의 컴퓨터에 문제가 생기면서 국정원이 사이버 공격의 징후를 파악했던 것으로 보고받았다”고 말했다. 국정원은 4일 징후를 탐지하고도 방통위에 알리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박 의원은 또 “사이버 공격을 탐지한 7일 저녁부터 주의경보령 발령까지 8시간이 걸리는 등 대처가 늦었다는 지적이 있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국정원은 “백신 보급 조치 등의 대응이 급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방통위도 1차 공격이 벌어진 7일 이전 디도스 관련 정보를 수집했지만 대응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한국정보보호진흥원 류찬호 분석예방팀장은 “하루에도 수십건의 해킹 정보가 수집되고 있어 특이한 상황이 아니면 조사 분석을 안한다”며 “7일 이전에 나타난 공격에 대해선 경미하다고 보고 특별히 대응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악성 코드 감염 PC의 데이터 파괴 현상에 대한 긴급 경보가 늦어진 것도 국정원과 방통위 간 혼선에서 비롯된 것으로 확인됐다. 방통위는 지난 9일 밤 11시쯤 하드디스크 파괴 기능 실행 시각이 10일 0시라는 점을 파악해 긴급경보를 내려 했으나 국정원이 “우리도 확인이 다 됐으니 잠시 기다려달라”고 요청해 발령 시각이 늦춰졌다.

방통위는 또 이날 “디도스 공격용 악성코드를 유포하는 ‘숙주 사이트’가 5개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8일 “이번 디도스는 과거와 달리 좀비PC 집단에 공격을 명령하는 메인서버(C&C)가 없는 새로운 유형”이라고 밝힌 것과 배치된다. 하지만 방통위는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못했다. 한편 지난 7일부터 사흘 연속 계속됐던 사이버 공격은 10일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주영·임현주·송윤경기자 young78@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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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PC에도 치명적 손상                                     2009년 7월10일자 경향신문
 임현주기자 korearu@kyunghyang.com 
 
ㆍ“감염땐 모든 데이터 파괴” 경고 ‘대량 스팸메일’ 악성코드도 발견

지난 7일 저녁 시작된 디도스 공격의 여파가 당초 알려진 것보다 큰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당초 악성 코드에 감염된 이른바 ‘좀비PC’ 자체에는 큰 타격을 주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시스템 파괴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 새롭게 밝혀졌다. 또 특정 인터넷 사이트를 마비시키는 것으로만 알려졌지만 공격 대상 이외의 사이트에도 영향을 미쳤다.

방송통신위원회는 9일 “안철수연구소로부터 10일 0시 이후부터 실행되는 신종 악성 코드로 인해 큰 피해가 우려된다는 분석결과를 통보받았다”고 밝혔다. 안철수연구소의 분석 결과 이 악성 코드는 감염된 좀비PC의 하드디스크를 포맷, PC 내 모든 저장정보를 자동 삭제해버릴 것으로 예상됐다.

이 악성 코드는 시스템의 부팅 기능을 마비시켜 정상적인 부팅이 안되게 만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철수연구소는 또 “doc, xls, ppt, pdf 등의 문서 파일을 파괴해 PC에 저장된 중요한 데이터를 잃게 된다”면서 “이렇게 손상된 데이터는 복구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방통위는 이에 따라 PC 사용자들은 즉시 한국정보보호진흥원(KISA)이 운영하는 보호나라 홈페이지(www.boho.or.kr)이나 안철수연구소 등의 백신 프로그램을 업데이트해 치료받을 것을 당부했다.

보안업체들에 따르면 이번 공격 때 이용된 좀비PC에 침투한 악성 코드들 중에서 이용자도 모른 채 대량의 스팸메일을 보내도록 하는 악성 코드가 발견됐다. 스팸메일 때문에 일부 기업의 메일서버는 과부하로 다운됐다.

이 악성 코드는 2차 디도스 공격이 있던 8일 저녁 ‘Memory of Independence’라는 제목의 스팸메일을 대량 송수신했다.

메일 본문에는 ‘last’로 적힌 메시지가 있으며, 20바이트가량의 용량이 작은 RAR 압축 파일이 첨부됐다. 이 첨부 파일은 아무런 동작을 하지 않기 때문에 사용자 PC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보내진 스팸메일 때문에 9일 오전 상당수 기업의 메일서버가 정상 작동하지 않아 업무에 차질을 빚었다. 그러나 특정 사이트만을 대상으로 한 이번 1·2차 디도스 공격과는 달리 대상 사이트가 정해지지 않아 정확한 피해규모는 확인되지 않았다.

<임현주기자 korear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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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 은행 피해… 실시간 모니터링·백신 배포 안간힘             2009년 7월 10일자 경향신문
 김다슬·임현주기자 amorfati@kyunghyang.com 
 
분산서비스거부(디도스·DDoS) 공격이 전 은행권으로 확산되면서 은행들이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금융당국도 관계기관과 합동으로 위기상황 대응반을 24시간 가동하고, 모든 금융회사에 실시간 모니터링 실시와 보안시스템 점검을 지시했다.

9일 금융당국과 은행권에 따르면 지난 7일 신한·외환은행, 농협에 이어 8일에는 국민·우리·하나·기업은행까지 7개 은행이 디도스 공격을 받았다. 국민은행 홈페이지는 8일 오후 6시부터 4시간20분가량 디도스 1차 공격을 받아 접속이 지연됐고, 9일 새벽에도 공격이 이어졌다. 우리은행도 8일 오후 6시부터 디도스 공격을 받았고, 오후 10시 이후 접속이 지연되자 차단시스템 전달 회선을 늘리는 긴급 조치를 취했다. 하나·기업은행도 8일 저녁 디도스의 공격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금융위원회는 “디도스 공격을 받은 7개 은행의 인터넷뱅킹 서비스가 일부 중단되거나 지연됐으나 금융정보 유출이나 불법이체 등의 금융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국내 18개 은행은 지난해 8월 공동으로 디도스 탐지 시스템을 구축했지만 은행별 용량을 초과한 공격의 방어에는 한계가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우리은행 조덕제 e-비즈니스사업단장은 “트래픽이 은행서버의 용량을 초과하거나 차단 타이밍을 놓칠 경우 침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은행은 금융결제망이 각 금융기관과 폐쇄 전용선으로 연결돼 있어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

증권사들도 9일 오후까지 피해사례가 보고되지 않았다. 증권거래시스템은 별도의 프로그램(HTS)을 통해 작동하기 때문에 웹사이트를 공격하는 디도스의 표적이 되지 않았다는 분석도 있다.

주요 통신업체들도 비상대응책을 내놓고 있다. KT는 지난 8일 저녁부터 디도스 공격에 사용된 ‘좀비 PC’를 사용하고 있는 가입자에게 무료 백신프로그램인 ‘쿡닥터’를 설치해 치료토록 했다.

SK브로드밴드는 2차 디도스 공격이 있던 8일 오후 6시부터 ‘좀비 PC’ 보유고객을 대상으로 텔레마케팅을 실시해 백신검사와 마이크로소프트(MS) 윈도 운영체제 업데이트를 요청했다.

<김다슬·임현주기자 amorfat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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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2003년 대란 뛰어넘는 최악의 사태”                           2009년 7월 10일자 경향신문
 박지희·임현주기자 violet@kyunghyang.com
ㆍ안철수연구소 김홍선 대표이사
ㆍ다음 타깃 파악 힘들어… 변종 나올 땐 속수무책… 보안 인프라 구축 시급

“컴퓨터 보안 업계에 몸담은 지 15년 만에 최악의 사이버 공격입니다.”

안철수연구소 김홍선 대표이사는 9일 이번 분산서비스거부(디도스·DDoS)공격에 대해 “1·2차에 이은 다음 공격들이 언제까지 계속될지조차 파악이 힘든 상황”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김 대표는 일본 출장 중 급거 귀국, 2003년 1·25 인터넷 대란 이후 최고 수준의 전사적인 비상 대응 체제를 내리고 이번 사태에 임하고 있다.

그는 이번 사이버 공격이 “조직적이고 집요하게 설계된 지능적 공격”이라고 말했다.

“디도스 공격으로 정보 유출 피해가 없다는 점에서 다른 해킹보다 단순하다고 생각하지만 변종이 계속 생기고 스케줄에 따라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어 대응이 쉽지 않다”는 것.

공격 패턴은 기존과 다르지 않지만, 좀비 PC의 규모와 악성코드의 설계 구조를 보면 1인 해커의 작품이라기보다는 오랜 기간 준비된 조직적인 공격 같다는 설명이다.

김 대표는 특히 “감염된 좀비 PC가 내부 시스템 파괴를 일으킬 경우 그 피해 규모가 1999년의 CIH바이러스 사건보다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CIH바이러스 당시 국내에서 PC 110만대가량이 감염된 바 있다.

문제는 공격당하는 정부·기업들이 하드웨어 보안 장비를 갖추고도 공격을 막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는 9일 저녁의 3차 공격에 대해서는 “해당 사이트가 준비할 수 있도록 미리 공지했지만 변종코드가 나올 수도, 공격 타깃이 바뀔 수도 있다”며 “미리 모니터링을 하면서 막을 수 있도록 준비가 필요하다”고 경계했다.

김 대표는 “현재로서는 공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얼마나 확산될지 가늠할 수 없다”며 “공격 패턴을 분석해서 실시간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저희 연구소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우리 사회의 허약한 보안 의식이 이번 사태를 더욱 크게 키웠다고 꼬집었다. 사이버 테러의 심각성이나 보안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보니 대응 체제 역시 허술했다는 것. 연이어 보도가 계속되고 있지만 여전히 상당수가 개별적인 PC 보안 점검을 하지 않아 좀비 PC가 계속 늘고 있는 한 디도스 공격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이번 디도스 공격은 PC와 웹서버 취약점을 방어할 보안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바탕에서 이뤄진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성수대교 붕괴나 9·11 테러와도 다를 바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선진국은 정부 정보통신(IT) 예산의 5~12%를 보안에 배정하는 데 우리는 1%도 안 되는 형편에, 보안전문가도 부족하다”며 정부의 대책 마련 필요성을 환기시켰다.

김 대표는 “앞으로는 PC뿐 아니라 인터넷TV(IPTV)나 인터넷전화(VoIP)도 바이러스와 해킹 공격의 매개체가 될 수 있다”며 “이번 사이버 공격이 우리 사회가 보안 인프라를 갖출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지희·임현주기자 viole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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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PC 그룹 여러개… 시간차 공격”                         2009년 7월 9일자 경향신문
 임현주기자 korearu@kyunghyang.com
 
ㆍ악성코드 주소 스스로 지워 추적도 못해

8일 변종 악성코드를 통한 2차 분산서비스거부(디도스·DDoS) 공격이 이뤄지면서 사태 장기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신종 수법이면서도 교묘한 방법을 쓰고 있어서라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정보보호진흥원(KISA) 인터넷침해사고대응센터 이명수 센터장은 이날 “악성코드가 숨어있던 주소를 스스로 지우는 기능이 있어 추적이 안된다”면서 “단시간 내에 해결 안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진흥원에 따르면 이번 디도스는 C&C(공격 명령을 내리는 메인 서버)의 명령 없이 자체적으로 공격을 하는 신종 수법이다. 이렇게 C&C가 없는데도 2차 공격을 할 수 있는 것은 별도의 장치를 만들어놨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게 이 센터장의 설명이다.

이 센터장은 “공격자가 ‘좀비PC(악성 코드에 감염된 PC)’를 만들 때 A·B·C 등 여러 군(群)으로 만들어 후속 공격을 가능하게 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A군이 공격하고 24시간이 지나면 B로 갈아타고, 다시 C로 갈아타는 형식으로 공격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센터장은 “2차 공격 후에도 3차, 4차 공격이 예상된다”면서 “악성코드가 숨어있던 사이트 주소가 자동으로 지워지기 때문에 단시간 내에 해결 안될 가능성이 높아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결국 이른 시일 안에 악성코드에 감염된 PC가 정확히 몇대이고 몇개의 IP로 공격이 이뤄졌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임현주기자 korear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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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도 진원지도 깜깜… 허약한 ‘인터넷 강국’                    /2009년 7월 9일자 경향신문
 임현주기자 korearu@kyunghyang.com
 
미국 “한국發에 문제”… 먼저 차단2003년 ‘대란’ 겪고도 대응체계 부실

분산서비스거부(디도스·DDoS) 공격으로 인한 주요 기관 사이트의 접속장애는 8일 저녁까지도 곳곳에서 이어졌다. 청와대, 한나라당, 국방부 등의 사이트는 지역에 따라 접속이 안되는 현상이 지속됐고, 농협 사이트는 인터넷뱅킹이 어려울 만큼 속도가 느려졌다.

이처럼 공격이 계속됐지만 정부는 속수무책이었다. 누가, 어디서 공격하는지도 알아내지 못했고 공격의 종류도 새로운 것이었다. 이 때문에 대응책 마련도 어려웠다.

경찰 수사 착수 정석화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 수사팀장이 8일 청와대 등 국내외 주요기관 웹사이트에 장애를 일으킨 분산서비스거부(DDoS) 공격의 특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지윤기자


이번 디도스 공격은 한국과 미국에서 발생했다. 미국의 일부 사이트는 한국에서 들어오는 트래픽에 문제가 있다며 한국 IP의 접속을 차단했다. 하지만 정확한 발생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정보보호진흥원(KISA) 인터넷침해사고대응지원센터 이명수 센터장은 8일 “현재 디도스 발생지가 미국인지, 중국인지, 한국인지 확인이 안된다”고 밝혔다.

해커들의 목적도 오리무중이다. 보통 디도스 공격을 하는 해커들은 금품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해당 사이트 관리자에게 협박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 해커의 검거도 대부분 협박과정에서 이뤄진다. 그러나 이번에는 금품요구나 협박이 없어 목적을 알아낼 길이 없다. 공격 종류도 새롭다. 방송통신위원회 황철증 네트워크정책국장은 “디도스는 보통 ‘좀비 PC’(공격을 수행하는 악성코드 감염 PC) 집단에 공격을 명령하는 C&C(공격명령을 내리는 메인서버)가 있는데, 이번에는 C&C 명령 없이 디도스를 발생하는 새로운 유형”이라고 말했다.

이번 공격의 유형은 “국내 해커들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해커가 악성 봇(Bot)을 제작해 홈페이지 등 다양한 방법으로 봇을 배포하면, 악성코드가 은닉된 홈페이지에 방문한 이용자의 PC는 봇에 감염된다. 봇에 감염된 PC로 디도스 공격 명령이 내려지면 악성코드에 감염된 ‘좀비 PC’는 특정 사이트를 공격하게 된다. 이런 ‘좀비 PC’는 어제 저녁 1만8000대에서 이날 오후 2만3000대로 늘어났다.


해결책은 ‘좀비 PC’를 찾아서 네트워크를 차단하고, 백신을 공급해야 하지만 과정이 복잡하다. 방통위 관계자는 “정부가 PC의 IP 주소를 직접 가지고 있지 않고, 개인 PC 이용자들은 아직도 유동 IP를 쓰는 경우가 많아 치료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사태확산에는 정부의 ‘늑장대응’도 한몫했다. 방통위에 따르면 디도스 공격이 처음 알려진 것은 지난 7일 오후 6시45분쯤이었다. 이어 이날 오후 7시40분부터 국내 주요 기관 사이트에 디도스 공격이 동시다발적으로 퍼졌다. 방통위는 오후 8시쯤 디도스 관련 신고를 접수받았지만 ‘주의’ 경보는 자정이 넘은 뒤 내렸다.

정부는 2003년 1월25일 악성 트래픽으로 인해 인터넷 업체 과부하가 발생하면서 9시간 동안 전국의 인터넷망이 마비된 ‘인터넷 대란’을 경험하고도 현재까지 디도스 장비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임현주기자 korear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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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호 월간조선 /임현주 경향신문 체육부 야구전문 기자
  [인물연구] 2007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제패한 김성근 SK 감독
 2006년 6위 팀을 우승까지 견인한 힘은「무한 경쟁」
 
한 번 날아간 공은 다시 오지 않는다!

1942년 일본 교토 출생. 일본 교토 가쓰라高 졸업, 동아大 중퇴, 교통부 선수,
기업은행 선수, 마산商高 감독, 기업은행 감독, 프로야구 OB 코치, OB 감독,
태평양 감독, 삼성 감독, 쌍방울 감독, LG 감독. 일본 지바 롯데 마린스 코치 역임.
현재 SK 감독.

프로감독 데뷔 23년 만의 첫 우승

가을밤이 깊어 가던 지난 10월29일 인천문학구장.
 
  SK 와이번스 金星根(김성근·65) 감독은 프로야구 감독 데뷔 23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2연패를 한 뒤 4연승 하는 진기록을 추가했다.
 
  지난 10월31일 오후 2시. 서울 청담동 리베라호텔 커피숍에서 金星根 감독을 만났다. 같은 시각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는 프로야구 2007 신인왕과 MVP 시상식이 열리고 있었다.
 
  『11월5일 일본으로 출국할 예정이어서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다』는 金감독을 졸라 어렵게 시간을 만들었다. 청바지를 즐겨 입는 金감독은 짙은 남색 면바지에 흰색 셔츠, 검은색 니트를 입고 나왔다.
 
  ―이틀 동안 좀 쉬셨나요.
 
  『우승하던 날 샴페인 세례를 받아서 감기에 걸렸어요. 시즌 때는 경기 구상을 하느라 두세 시간밖에 못 잤는데, 요즘은 감기 때문에 잠을
설쳐요』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소감은.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너무 정신없이 지나갔거든요.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축하전화를
 받을 때 우승했다는 실감이 나요』
 
  ―우승하고 가장 먼저 생각났던 사람은 누군가요.
 
  『집사람이죠. 40년 같이 살면서 야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와줬어요.
항상 나를 위해 기도해 줬고, 말없이 곁에서 힘이 되어 줬습니다』
 
  ―「야구의 神」이라는 별명을 갖고 계신데, 어떻게 생긴 건가요.
 
  『삼성 김응룡 사장이 붙여 준 별명이지요. 2002년 LG를 이끌고 한국시리즈에 올라가서
삼성한테 2승4패로 졌어요. 김응룡 사장이 한국시리즈 우승 후 인터뷰에서 저를 「야구의 神」
이라고 불렀대요. 시합에 진 내가 神이면, 神을 이긴 사람은 뭡니까(웃음).
하늘인가요?』
 

지난 10월29일 인천문학야구장에서 열린 2007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SK가
두산을 맞아 승리한 후 SK 선수들이 한국시리즈 우승을 축하하며 환호하고 있다.

 
  「야구의 神」
 
  ―김응룡 사장이 「야구의 神」이라고 부른 이유가 있었을 것 아닙니까.
 
  『시즌 내내 LG가 삼성만 만나면 성적이 형편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시리즈에 나선
김응룡 감독이 초조해하는 모습을 보이더라고요. 그동안 삼성만 만나면 필요 이상으로
긴장했는데, 삼성도 우리와 똑같은 팀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마음에 여유가
생겼고, 여유를 가지니까 金감독의 수가 보였어요. 제가 김응룡 감독을 읽으니까, 金감독이
고생을 많이 했죠. 그래서 저를 「神算(신산)」이라고 평가해 준 모양입니다』
 
  ―정규시즌에서 1위를 차지해서 한국시리즈로 직행한 SK가 한국시리즈 1·2차전에서
연패했습니다. 왜 그렇게 됐나요.
 
  『이번 시즌에 두산만 만나면 참 힘이 들었어요. 어차피 일곱 경기 중 4승을 먼저 한 팀이
이기는 것이니까, 한국시리즈 1·4·7차전을 내주고 2·3·5·6차전을 이기겠다는 생각으로
준비했어요.
 두산 에이스 리오스 선발 때는 과감하게 경기를 내주고, 나머지를 잡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초반부터 계산이 어긋났습니다. 두산이 워낙 강하다는 인식이 박혀 있어서
저나 선수들이나 많이 긴장했어요.
2차전에서 예상했던 시나리오가 빗나갔고, 어긋난 계산에 집착하다 보니 선수교체
타이밍을 계속 놓쳤습니다』
 
  ―金星根 감독의 상징은 「데이터 야구」입니다. 왜 1·2차전에서 계산이 맞지
않았나요.
 
  『정규시즌 1위를 확정짓던 날(9월28일) 한국시리즈 맞상대로 두산을 염두에
뒀습니다. 두산에 관한 데이터를 집중분석했고, 두산 선발투수에 맞춰 「맞춤훈련」을
 시켰습니다.  두산은 어리고 경험 없는 선수들이 최상의 컨디션을 보이고 있었어요.
발 빠른 두산의 이종욱과 고영민의 도루 견제를 위해 「피치 아웃」 훈련까지
 했으니까요. 너무 데이터에 집착하다 보니까 조금만 계산이 어긋나도 생각이
복잡해지더군요』
 
김성근 감독은 자신만의 기록법을 개발해 경기상황을 실시간으로 적는다.
고등학교를 일본에서 나온 까닭에 일본어로 쓰는 것이 더 편하다고 한다(사진 왼쪽).
1982년 OB 코치시절부터 야구일기를 써 왔다(사진 오른쪽).

 
  『무한경쟁은 기회를 공평하게 주는것』
 
  ―3차전 이후 분위기가 확 달라졌는데, 이유가 있습니까.
 
  『3차전부터 데이터에 집착하지 않았어요. 「작은 것에 집착하기보다 타이밍을 놓치지 말자」
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어차피 4승을 챙겨야 끝나는 게임이니까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선수들에게 「편하게 경기를 하라」고 주문했더니, 3차전부터 선수들 방망이가
터졌습니다.
 3차전에서는 우리 선발투수 로마노가 잘 던져 줬고, 4차전에서는 왼손 투수 김광현이 잘
해줬습니다. 2패 후 2승을 챙기니까 자신이 생기더군요. 말을 아꼈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준비했습니다』
 
  ―3차전 「빈볼싸움」 이후 SK 선수들의 氣(기)가 무섭게 살아났는데.
 
  『SK 선수들은 정말 순박하고 순진합니다. 누구 하나 나서거나 말 많은 선수가 없습니다.
두산은 베테랑 선수 홍성흔, 김동주 등 경험 많은 선배들이 후배들을 이끌잖아요.
「파이팅」이 자연스럽게 배어 있는 팀입니다.
 
  단기전에서는 선수들의 氣가 특히 중요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주눅 들지 말고, 절대
 氣싸움에서 밀리지 말라」고 강조했습니다. 선수들이 그 지시를 잘 지켜 줬던 거죠』
 
  ―2007 시즌 동안 SK에는 고정된 4번타자가 없었습니다. 타순과 수비 위치를 매일
바꾸셨죠.
「토털 야구」, 「벌떼야구」라는 이름을 얻었구요. 무한경쟁이 선수들에게 큰 마음의
짐이 됐을 텐데.
 
  『1년 전 SK 선수들을 고려대학교 송추 구장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그때 선수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형편없었어요. 「이렇게 야구를 하니까 2006년 시즌 6위를 했구나」 싶더라고요. 저는 「이기는 야구」가 뭔지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무한경쟁은 반대로 말하면 기회를 공평하게
 준다는 얘기입니다. 한두 명의 스타 플레이어에 의존하지 않고, 모두 노력해서 발전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지요』
 
 
  『하고자 하는 의욕과 열정이 생겼다』
 
김성근 감독이 끼고 있는
반지는 지바 롯데 마린스
 코치 시절 2006 일본
 시리즈에서 우승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것이다. 김감독은 코치로서
「2006년 일본시리즈 우승」,
감독으로서「2007년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진귀한 기록을
세웠다.

  ―지난 1년간 SK 선수들이 가장 변화된 부분은 뭔가요.
 
  『하고자 하는 의욕과 열정이 생겼지요. 그게 가장 큰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한국시리즈에 나서면서 선수들에게 「야구장에서 절대 고개 숙이지 마라. 자신 있게 해라. 즐겨라」 했습니다. 김재현, 박재홍, 박경완 같은 고참들이 옛날 전성기 때의 스윙을 되찾고, 어린 선수들이 기대 이상으로 좋은 경기를 보여 줬습니다.
 
  「생각을 바꾸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을 바꾸면 성격이 바뀌고, 성격을 바꾸면 운명이 바뀐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선수들이 깨달았습니다. 2008년에도 SK의 무한경쟁은 계속됩니다. 「선발 라인업 고정」이 무리라는 것을 선수들이 더 잘 알고 있으니까요』
 
  2007 한국시리즈 우승이 확정되던 날 기자들을 한바탕 웃게 만든 소동이 벌어졌다.
 
  점잖은 金星根 감독이 잠실 원정경기에서 3연승을 챙긴 그 느낌을 간직하려고 점퍼 속에, 원정경기 때 입는 빨간색 유니폼을 입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날씨가 쌀쌀했던 탓에 金감독은 원정 유니폼 입은 걸 들키지 않았다. 선수들이 헹가래를 치고 샴페인을 퍼붓는 동안에도 감독은 점퍼를 벗지 않았다. 우승 시상식을 하기 위해 우승 기념 티셔츠를 갈아입으려고 金감독이 점퍼를 벗는 순간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金星根 감독은 쑥스러운 듯 웃으며 말했다.
 
  『올 시즌에 또 하나의 「징크스」가 생겼습니다. 시즌 중에 집에 다녀오는 날이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입니다. 이번 시즌 후반에 원정경기를 가기 전 집에 들렀다 가면 그 경기는 꼭
이기더라고요. 시즌 후반부터는 원정경기를 하러 아무리 일찍 출발해도 무조건 집에 들렀다가
갔습니다』
 
 
  아들 김정준이 말하는 金星根 감독
 
김포공항으로 날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사진
왼쪽부터 김성근 감독의 외아들 김정준씨,
김성근 감독, 임현주 기자.

  SK 전력분석원 팀장 김정준(37)씨는 김성근 감독의 외아들이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초등학교 4학년 때 야구를 시작한 김정준씨는 충암中·高를 거쳐 연세大에서 선수생활을 계속했다. 1992년 LG에 입단하며 프로선수가 됐다.
 
  하지만 몸이 좋지 않아 1년 반 만에 선수생활을 접었다. 이후 11년간 LG 전력분석원으로 일을 했다. 2001년 시즌 중간에 부친 金星根 감독이 감독대행으로 LG로 부임했고, 처음 함께 일을 했다.
 
  2001년 6위였던 팀을 1년 만에 2위로 끌어 올렸는데, LG는 김성근 감독을 해고했다. 김정준 전력분석원은 LG를 떠나 2003년부터 SK에 몸을 담았다. 지난 11월3일 오전 9시30분. 김정준 팀장과 서울역에서 만났다. 3시간 동안 KTX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가면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金星根 감독이 SK 감독직을 제안받았을 때 처음에 거절했고, 가족회의 끝에 마지못해 SK행을
결정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일본에서 지바 「롯데 마린스」의 코치를 하면서, 인생에서 가장 편한 시간을
보내고 계셨어요. LG 감독을 그만두시고 일본에서 자리 잡아 롯데 마린스가 우승까지 해냈잖아요.
또다시 힘들고 어려운 자리에 돌아오기 싫으셨던 것 같아요. 아버지가 일본에 계실 때
「코치가 이렇게 편한 줄 몰랐다」고 하셨어요. 아버지는 일본에 남기를 원하셨는데 가족들은
아버지와 함께 있고 싶었어요. 막내 동생 희성이가 아버지 밥 해드리느라 2년 가까이 일본에서
생활했어요. 동생도 나름대로 지쳐 있었고요. 그래서 가족들이 모두
「SK 감독을 하셨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아버지와 다시 1년간 함께 일해 보니 어떤가요.
 
  『아버지가 한국에 오시기로 결정하고나서 저를 불러서 「3년 정도 일본에서 공부를 하라」고
했어요. 롯데 마린스에서 저를 연수시키기로 얘기가 다 끝난 상태였어요. 월급은 70만 엔을 주고,
아버지가 일본에서 사셨던 집을 그대로 쓸 수 있는 조건이었습니다. 저야 배우는 입장에서 정말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거절했습니다』
 
 
  감독이라는 고독한 직업
 
  ―그렇게 좋은 기회를 왜 잡지 않았나요.
 
  『앞으로 아버지 얼굴을 보고 함께할 날이 많이 남지 않았더라고요. 전에 LG 감독 하실 때 정말
힘들었던 과정이 자꾸 생각났어요. 이번만큼은 꼭 곁에서 힘이 되어 드리고 싶었어요. 어머니께서
제가 아버지와 함께하기를 바라셨고요. 지금 돌아보니 그때 결정을 참 잘한 것 같아요.
 
  경기에서 진 날은 감독실에 아무도 못 들어갑니다. 수석코치도 못 들어가죠. 한번은 아버지
혼자 머리 싸매고 계시는 감독실에 들어가서 말없이 한참을 앉아 있다가 나왔어요. 마음이 너무
아프더라고요. 아버지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죠. 「대장이 힘들어하면 어떻게 합니까. 힘내세요.
사랑합니다」 라고요』
 
  ―한국시리즈 초반에 2연패 했을 때는 무슨 생각이 들던가요.
 
  『2연패 하고 하루 쉬었잖아요. 충격이 너무 커서 제가 삭발을 했습니다. 두산 선수들의
모든 정보를 모으고 철저히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허무하게 무너졌거든요. 그날 감독실에
새벽 1시까지 불 켜진 것을 보고 나왔어요. 아버지는 새벽 4시까지 3차전 고민을 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경기를 포기하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더라고요. 아버지 입장이 한번 되어 봤어요.
 
  아버지는 이미 내 나이 때 감독을 하고 계셨고, 스무 살 청년 때 혈혈단신으로 한국 땅을 밟으셨는데
 위기의 순간에서 청년 김성근은 어떻게 했을까? 아버지라면 도망가지 않았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시작해 보겠다는 마음으로 머리를 잘랐습니다. 선수들이 제 머리를 보고 자극을
받은 것 같아요. 제가 삭발한 걸 보고 아버지도 놀랐다고 하시더라고요』
 
 
  「빈볼싸움」의 영향
 
한국시리즈 우승 자축연에서 SK 선수들이 김성근 감독에게 샴페인을 쏟아붓고 있다.

  ―3차전 때의 빈볼싸움이 SK 우승에
 좋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나요.
 
  『플레이오프 때부터
한국시리즈
1·2차전까지 두산의
젊은 선수들이
신들린 듯 야구를 했어요.
 4번 타자
김동주나 베테랑 안경현,
 홍성흔이 뒤에
서 후배들을 받쳐 주니 「
5연 경기 연속
무패」 행진을 이어 갔던
 것이죠.
그런데 3차전 빈볼싸움에서
김동주와
리오스가 심하게
흥분했어요.
 
빈볼싸움 전까지 두산의 이종욱, 김현수,
고영민이 시즌 때처럼 편하게 경기를
했었는데 고참 선배들이 크게 흥분한 모습을
 보면서 충격을 받은 것 같아요. 그러면서
두산 젊은 선수들의 氣가 꺾인 것 같아요.
반대로 우리 팀 선수들의 氣는 살아나고,
 집중력이 향상된 것 같습니다』
 
  ―당시 두산 쪽에서 「SK가 고의적으로 빈볼을 많이 던진다」고 문제를 제기했죠.
 
  『1·2차전에서 투수들에게 「몸쪽 공을 많이 던지라」고 주문한 바람에 사구가 7개나 났습니다.
 고의성은 전혀 없었거든요. 그런데 3차전이 끝나고 두산에서 `「그렇게까지 해서 이기고
싶냐」고 인터뷰를 했어요.
 
  두산 선수들은 발이 빠른 장점을 살리기 위해 어떻게든 출루해야겠다는 의욕이
 대단했어요. 우리 투수로서는 까다로운 볼을 선택할 수밖에 없죠. 두산이 흥분할수록
우리는 더 침착해졌어요. 그러면서 자연히 경기 흐름이 우리 쪽으로 넘어온
것 같습니다』
 
  ―우승이 확정됐을 때 무슨 생각이 들었나요.
 
  『정말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머니와 막내 동생에게 정말
고마웠습니다. 시즌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성수동 집에서 인천까지 밥을
지어 날랐거든요. 항상 아버지와 SK를 위해서 기도해 줬습니다』
 
  ―어린 시절에 봤던 아버지 모습은 어땠어요.
 
  『말이 없으셨어요. 집에 오시면 아버지는 어린아이나 마찬가지였어요. 어머니가 늘
「아버지는 밖에서 고생하시고 들어오니까, 집에서 편하게 쉬실 수 있도록 해드려야 한다」
고 말씀하셨어요. 올해 처음으로 아버지와 깊은 대화를 나눠본 것 같습니다』
 
  ―일본어는 아버지께 배웠나요.
 
  『아버지가 집에서 한국말로도 말을 안 하시는데 어떻게 일본어를 배웠겠습니까.
선수생활을 그만두고 LG에 입사했을 때 6개월 동안 학원 다니면서 공부했어요.
그 다음부터는 일본 전지훈련 갈 때마다 조금씩 사용하면서 늘었습니다』
 
  ―앞으로 바람은.
 
  『시즌 초반에 아버지께서 몸이 몇 번 안 좋으셨어요. 한번은 밥숟가락을 못 들을 정도로
왼쪽 팔꿈치에 이상이 왔었어요. 왼손잡이인 아버지가 왼손으로 사인을 못 할
 정도였습니다.
 
  시즌 중간에 하루 동안 소리 소문 없이 일본에 가서 치료를 받고 오신 적이 있었습니다.
 늘 건강하신 줄로만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한국시리즈 때는 신경성 대장염으로 벤치를
지키는 게 힘들었어요. 아버지가 감독직을 하시면서 아프지 않고 건강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제가 능력이 닿는 한 아버지 뒤에서 힘이 되어 드리고 싶습니다』
 
 
  다섯 번째 주례
 
해운대 앞의 한 식당에서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는 김성근 감독.

  서울 청담동의 리베라호텔에서
 잠깐 인터뷰를 하긴 했지만,
 月刊朝鮮에 실을 긴 기사를
 쓰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었다. 「
月刊朝鮮을 위해 시간을 더 내달라」고 여러 차례 요청했지만, 金星根 감독은
『11월5일에 일본으로 간다. 그 전에
정리해야 할 일이 많아서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다』고 했다.
 
  내 사정이 딱해 보였던지 평소 알고
지내는 아들 김정준 팀장이 『아버님이 토요일인 11월3일 부산에서 주례를 보신다』고
귀띔을 해주었다.
 
  주례를 끝낸 金감독을 붙들고 이야기를
 나눌 심산으로 김정준 팀장과 함께
부산으로 내려갔던 것이다. 해운대 앞 오션두 웨딩홀 20층에 도착한 것은 11월3일 오후 2시쯤이었다.
 金星根 감독은 주례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金감독은 『생에 다섯 번째 주례』라고 했다.
 
  한국시리즈 3차전이 열리던 10월25일 SK 톱타자 정근우(25)가 감독실을 노크했다.
11월3일 부산에서 결혼을 하는데 주례 확답을 받기 위해서였다. 정규시즌에서 3할대 타율을
유지했던 정근우는 한국시리즈 1·2차전 동안 안타가 없었다.
 
  金감독은 정근우에게 『주례를 서 줄 테니 마음 편하게 경기하라』고 말했다. 그날부터다.
정근우의 방망이는 불을 뿜었다. 6차전 때는 2점 홈런포를 쏘아 올리며 팀 승리를 이끌었다.
 
  金감독은 『주례 부탁이 들어오면 대개 거절하는데, 큰 시합을 앞두고 선수의 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며 『정근우가 감독의 약점을 잘 파고들었다』며 웃었다. 金감독은 『주례사 고민하는 게
 야구 경기 오더 짜는 것보다 더 힘들다』고 했다.
 
 
  숫자「8」
 
신혼시절의 김성근-오효순 부부.

  金감독의 주례사는 2007년 한 해 동안 인연이 닿았던 숫자 「8」에 관한 이야기였다.
 
  『신랑 정근우는 발이 빨라 야구할 때만 「스틸」을 하는 줄 알았는데 예쁜 신부감을 「스틸」하는 능력도 있었네요. 신랑의 선수 번호 「8」은 올 한 해 저와 큰 인연이 있었습니다. SK가 올 시즌 첫 승을 거둔 날이 4월28일이었고, 정규시즌 1위를 확정짓던 날이 9월28일이었습니다. 숫자 8은 중국에서는 「행운」을 뜻하고, 유교에서는 「지혜」를 뜻합니다. 이슬람에서는 「성스럽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지요.
 
  두 사람이 결혼생활을 하면서 숫자 8처럼 균형 있게 밸런스를 이뤄 행복한 결혼생활을 만들어 가기 바랍니다. 8은 위아래 균형이 흔들리면 다른 한쪽으로 무게가 더 실리게
됩니다. 그래도 부부는 8처럼 항상 붙어 있어야 하는 운명이란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주례사가 끝나자 큰 박수가 터져나왔다. 金감독은 『주례사를 준비하면서 시간이 길어지면
 어쩌나, 혹시 발음을 못 알아 듣는 사람이 있으면 어쩌나 고민했다』며 『박수소리에 긴장했던
 마음이 다 녹아내렸다』고 했다.
 
SK의 우승이 확정된 직후 SK 선수들이 구단주인 최태원 SK 회장을 헹가래 치고 있다.

  결혼식이 끝나고 金감독과 함께 식당으로 갔다.
 
  ―신랑·신부보다 주례가 더 긴장을 한 것 같습니다. 힘드셨죠.
 
  『야구할 때는 더그아웃에 앉아서 오더를 내리면 되는데 결혼식 주례는 한참을 서 있어야 하니 힘이 더 드네요. 다리가 아파서 혼이 났습니다. 일본 가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을 이제 다 매듭지은 것 같네요』
 
  金감독의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한참을 일본어로 통화했다. 잠시 후 또 전화벨이 울린다. 이번에는 한국어로 통화했다. 전화를 끊더니 金감독은 『11월5일 비행기 스케줄을 다음날로 미뤄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최태원 회장의 전화
 
SK 우승기념 티셔츠를 입은 최태원 회장.

  ―무슨 전화인가요.
 
  『SK 최태원 회장이 5일날 점심을 같이 하자고
하네요. 바쁘신 분께서 일부러 약속을 다 미루고
시간을 냈다는데, 제가 비행기 시간을 좀 늦춰야죠.
 한국시리즈 중에 최태원 회장님이 몇 번 응원을
오셨잖아요. 정말 힘이 되더라고요. 회사 차원에서
더 많이 도와주려고 하고. 이젠 한국 야구도 母기업에
도움 받는 차원을 벗어나서 구단 운영을 잘 해서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독립할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金감독은 일본 인맥이 넓다. 그는 『한국시리즈가
끝났으니까 해주는 얘기』라며 『일본의 친구가 전해
 준 정보로 두산전을 수월하게 풀어갈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一球二無
 
국가대표 시절의 김성근 감독.
뒷줄 왼쪽.

  『플레이오프 전에 일본에서 전화를 한 통 받았어요. 두산의 김동주가 일본 에이전트와 비밀리에 계약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두산 4번 타자 김동주가 올해 FA(자유계약 선수)되는 해잖아요. 일본으로 진출할 계획이라는 말이 많았는데, 그 전화를 받고 나니까 김동주의 행동을 더 유심히 관찰하게 되더라고요. 수비가 시즌 때 같지 않고, 타석에서 전같은 열의가 안 보였어요. 「마음이 떠났구나」 싶더라고요』
 
  金星根 감독은 식사할 틈이 없었다. 신랑·신부의 친인척, 친구들이 흰 종이를 가져와 사인해 달라며 줄 서서 기다렸다. 金감독은 종이에 「一球二無(일구이무)」라는 글귀를 적었다.
 
  ―「一球二無」가 무슨 뜻인가요.
 
  『일구이무요. 한 번의 공은 두 번 다시 없다. 즉 기회는 한 번뿐이라는 것이죠. 투수는 매 순간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던지고, 타자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스윙을 하면, 9회말 투아웃에서도 기적은 일어나요. 제 야구인생의 철학입니다』
 
  김성근 감독, 김정준 팀장과 함께 김해공항으로 이동했다. 오후 7시20분 김포행 비행기를 탔고,
대화는 계속됐다.
 
  ―그동안 한국에서 고생하신 보람이 있으시죠.
 
  『저는 인생에 있어 결과보다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우승하고 마음
한 구석이 씁쓸하기도 했어요.
 
  「동지보다는 적이 더 많다」고 생각했는데, 우승하니까 저를 싫어했던 사람들까지 저를 인정을
해주더라고요. 젊었을 때 한국말이 짧아서 「반 쪽바리」라는 수모를 겪었어요. 마음 터놓고
대화할 사람이 많지 않았죠.
 
  그런데 이번에 우승을 하면서 「그래도 적보다 동지가 더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저 혼자만의 힘으로 우승한 것이 아니었어요.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나보다 더 걱정해 주고,
 생각해 준 덕분이었어요.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원래 말수가 적고, 내성적이신가요.
 
  『원래는 활달하고 적극적인 성격이었어요. 17세가 되던 해 재일교포 선수 출신으로
봉황기(1959년)에 참가하면서 처음 한국 땅을 밟았죠. 그리고 이듬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행을 택했어요. 동아대학교와 교통부에서 활동하다가, 1962년 신생 기업은행에 발탁돼
본격적으로 야구선수 생활을 시작했어요. 어려움이 많았죠.
 
  환경 낯설지, 한국말 서투르지… 적극적이고 활달했던 성격을 점점 잃어버리게 되더라고요.
일본에서 학교 행사 때마다 사회를 보는 게 저였어요. 공부하기 싫은 날 운동장에 나가면
 같은 반 친구들이 우르르 따라 나왔어요. 그때는 밝고 씩씩했던 것 같아요. 한국에 와서 한국말을
 못 하다 보니 말수가 적어졌고, 성격이 좀 바뀌었지요』
 
 
  혹독한 조련
 
롯데 마린스 감독으로 2006년 일본시리즈에서 우승한 보비 발렌타인.

  ―金감독이 1989년 1월 태평양 선수단을 이끌고 오대산
극기훈련을 가서 얼음 깨고 물속에 들어가게 했던 일이
전설처럼 전해져 옵니다.
 
  『타자는 하루에 2000~3000개씩 배팅 연습을 시켰고, 투수는
500개씩 던지게 했어요. 선수들의 장래가 내 손에 달려 있기
 때문에 힘든 훈련을 강행했던 것이죠. 제가 선수 시절에는 팔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부상이 심해도 감독 오더가 내려오면
무조건 마운드에 올랐습니다. 꾹 참고 공을 던져야 했지요. 저는
 좀 무식하게 운동을 했지만, 선수들을 혹사시킨 적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시합에 내보낼 선수들은 어떤 기준으로 고르고, 타순을
 정합니까.
 
  『정신력이 가장 중요하죠. 저는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합니다.
 최선을 다했는데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치면, 더 노력하면 되잖아요. 정말 열의 있게 하는 선수에게
기회를 줍니다. 지바 「롯데 마린스」의 보비 발렌타인 감독에게서 많이 배웠습니다.
 
  이분은 선수의 컨디션을 중요시하고, 절대 선수 앞에서 험담을 안 합니다. 선수가 타석에서
실수를 했다 하더라도, 결국 그 책임은 선수를 기용한 감독에게 있거든요. 선수를 탓하기 전에
그 선수를 가르친 자신에게서 문제를 찾는 게 진정한 감독이죠. 보비 발렌타인 감독은
 더그아웃에서 선수들에게 장난을 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듭니다. 선수들이 경기를
즐길 수 있도록, 그걸 배우려고 노력합니다』
 
 
  성수동 자택에서
 
  비행기 안에서 金감독에게 『성수동 자택에
일본어로 된 책이 800권 가까이 있다는데 꼭 한번
보고 싶다』고 부탁을 했다. 『金감독의 선수 시절
사진도 보고 싶다』고 했다. 金감독은 비행기가
김포공항에 내릴 때까지 아무런 「사인」을 주지
않았다.
 
  공항 대합실에서 金감독이 『집이 지저분할 텐데
 괜찮냐』고 물었다.
 
  11월3일 오후 9시쯤 서울 성동구 성수동 金감독의
자택에 도착했다. 金감독이 벨을 누르자 부인
오효순(61)씨가 나와 반갑게 맞이했다.
 
  ―사모님께서 내조를 잘 하셔서 金星根 감독이
밖에서 야구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고 말하시던데요.
 
  『아니에요. 밖에서 고생하는 분이 힘드시지, 저는 그냥 제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거예요.
이쪽으로 오세요. 여기가 서재입니다. 거실에 따뜻한 커피 준비했으니까 둘러보시고 나오세요』
 
  金감독의 부인은 하얀 피부에 선한 인상만큼이나 목소리가 고왔다. 간단한 다과를 준비한다며
금세 주방으로 갔다. 집 안에 화분이 가득했다.
 
  『집사람이 다 가꿔요. 나야 가꾸는 게 힘든지 잘 모르죠. 식탁 위에 있는 것은 지바 롯데
마린스에서 보내온 선물이에요. 이번에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더니 일본에서 선물로 보내 줬네요.
 집 안에 꽃과 식물이 있으니까 공기가 맑아서 좋아요』
 
  거실 한쪽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고 적힌 액자가 보였다.
 
  ―교회에 나가십니까.
 
  『아내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서 나보고도 교회에 나오라고 하는데, 잘 안되네요』
 
  서재로 들어갔다. 수백 권의 책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1982년부터「야구일기」써
 
김성근 감독은 부인 오효순씨와의
 사이에 1남2녀를 두고 있다.
사진 맨 오른쪽은 며느리이다.

  ―대부분 일본어로 된 책이군요.
 
  『한국에는 야구 관련 서적이 별로 없어요. 일본에서 사서 모았습니다. 이 책들을 읽으면서 야구를 배웠어요. 틈나는 대로 책 읽고, 생각하고, 그걸 적용했죠』
 
  ―서재에서 50년 가까이 야구를 해온 발자취가 느껴집니다.
 
  『옛날부터 써왔던 야구일기, 노트예요. 1982년 프로야구가 처음 창단된 해에 기록했던 수첩이에요. 한번 보세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야구 일기를 썼어요. 야구 기록지 대신 나만의 기록법을 개발했지요. 타자들이 볼카운트 몇 대 몇에서 어떤 스윙을 하는지, 각 투수별로 자신 있는 구위는 무엇이고 위기의 상황에서 어떻게 승부를 보는지 자세히 적혀 있어요. 초록색 커버로 「OB」라고 적힌 노트를 보니까 세월이 느껴집니다』
 
  ―손으로 적는 게 귀찮을 때도 있을 것 같은데요.
 
  『컴퓨터로 자료를 뽑아서 보면 머릿속에 저장하기가 힘들어요. 손으로 기록해야 기억이 오래 남고, 급박한 상황에서 신속하게 정보를 꺼내 쓸 수 있어요. 그래서 손으로 쓰는 거죠』
 
  잠시 후 아내 오효순씨가 수정과에 잣을 띄워서 갖다 줬다.
 
  ―金감독이 『집에만 가면 어린아이가 된다』고 말씀하던데요.
 
  『집에서는 편하게 쉬셔야죠. 제가 뭘 해드리는 게 있나요. 더 잘 해드려야죠』
 
  ―교회를 열심히 다니신다고 들었어요.
 
  『제가 남편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기도밖에 없거든요. 교회 목사님과 성도들이 남편을 위해
기도해 주시죠』
 
  잠시 후 막내딸이 앨범을 갖고 서재로 들어왔다. 앨범 속에서 「소년 김성근」,
「청년 김성근」, 그리고 「감독 김성근」을 만날 수 있었다.
 
 
  2008년 구상
 
  金星根 감독은 지난 9월28일
정규리그 1위를 확정짓던 날부터
 내년 시즌 준비에 들어갔다. 틈틈이 SK 2군
선수들의 훈련을 지켜봤다. 金감독은
『11월8일부터 11일까지 일본에서
벌어지는 「코나미 컵」을 마친 후 본격적으로
다음 시즌 구상에 들어갈 생각』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의 2008년 구상은 대충 마무리된
 상태였다.
 
  『시즌 중간에 2군 선수를 데려다가
 경기에 쓰고 싶어도, 기량 차이가
크더라고요. 2군 선수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어요. 2008년 SK는 1·2군 간의 무한경쟁을 할 겁니다. 구단에서 2군 선수 지원 비용으로
 5억원을 투자하겠다고 하니까, 일본 코치를 몇 명 뽑아서 혹독한 겨울훈련 체제로
들어갈 겁니다.
 
  2군 선수들의 기량을 끌어 올리는 게 한국 프로야구가 발전하는 길입니다.
2군 선수들에게도 희망이 있어야지요. 그래야 1군 선수들이 더 자극받고 열심히 할 테니까요.
시간이 얼마 안 남았어요. 2008년 시즌 개막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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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os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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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7월 31일자 경향신문

‘오늘은 단역, 내일은 주연’ 프로야구 2군의 하루
 
프로야구 1군이 영화의 주연이라면 2군은 단역이다. 온종일 땀을 쏟아 짧디 짧은 한 컷에 출연하면서도 내일의 스타를 꿈꾸며 사는 게 2군이다.

두산 2군 박종훈 감독이 지난 27일 SK전을 마친 뒤 선수들을 집합시켜 총평을 하고 있다. |두산베어스 제공


영화와 야구의 공통점은 일단 감독 눈에 들어야 한다는 것. 배역은 한정돼 있고 누구나 번듯한 역할을 맡고 싶어하지만, 실력이 없으면 기회도 없다. 단 한번의 기회를 잡기 위해 폭염보다 뜨거운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는 땀의 현장, 두산의 2군 훈련장을 찾았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지난 27일 오전 8시. 잠실구장 앞에서 두산 2군 선수 20여명이 코칭스태프와 함께 45인승 버스에 올랐다. 목적지는 경기 이천시 백사면의 베어스필드. 팀 숙소를 배정받지 못해 출퇴근을 감수하는 선수들이 버스에 탔다. 2군에서도 좀더 나은 실력을 보여야 숙소 생활을 할 수 있다.

덩치 큰 선수들의 무릎이 앞 좌석에 닿는 비좁은 버스. 1군 선수단의 25인승 버스가 비행기 비즈니스 클래스라면 2군 버스는 ‘이코노미’다. 좌석을 업그레이드하려면 마일리지가 아닌 실력을 쌓아야 한다.

1시간후쯤 도착한 2군 훈련장. 숙소 멤버 15명은 이미 워밍업을 시작했다. 오전 6시30분에 일어나 조깅, 샤워, 식사를 마쳤다. 오전 9시, 모두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그라운드에 집합. 선수들의 얼굴이 중남미 용병처럼 시커멓다. 선크림을 잔뜩 바르며 늘 신경은 쓰는데도 하루종일 땡볕 아래 구르다보니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이동하는 사이에 화장실을 찾아 2층 건물을 뒤졌으나 오직 ‘남자 화장실’뿐. 마치 군부대같다.

◇야구만 하는 게 아니다=오전 9시부터 시작한 훈련은 2시간 남짓 이어졌다. 훈련 외에 부수적인 일까지 선수들의 몫이다. 선수들은 코치를 따라 불펜과 그라운드로 나뉘었다. 타격훈련 할 때 제 차례가 아니면 공을 줍고, 장비를 날랐다. 30도를 웃도는 무더운 날씨에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비오듯 쏟아지는데, 선수들은 “힘들다”는 말 한마디 안하고 씩씩하게 훈련에 임했다.

오전 11시30분 점심시간. 땡볕 아래서 뛰고 왔는데 식당의 점심 메뉴는 뜨거운 돌솥 김치 알밥이었다. 선수들은 “이열치열”이라며 밥 한톨 안남기고 싹싹 비웠다. 그리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그라운드에 나와 경기 준비를 했다.

오후 1시 SK와의 2군 경기. 출전 선수 명단에서 빠진 몇몇이 기록원, 볼보이, 주전자 당번을 맡았다. 2층 기록실에 올라가는 보직은 그나마 나은 편. 경기 내내 공을 줍고 얼음물을 나르는 보조 요원은 금세 땀으로 뒤범벅이 됐다.

5회말이 끝나자 더그아웃에 있던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우르르 몰려나가 물을 뿌리고 땅을 골랐다. 심판 빼고는 모든 일을 선수들이 자체 해결한다.

그런데 딱 하나 해결 못하는 일이 있다. 관중이다. 두산 4번타자 이두환은 “몸이 힘든 건 차라리 낫다”면서 “홈런을 쳐도 아무 반응이 없을 땐 정말 서럽다”고 말했다.

관중이 없다 보니 더그아웃이 바로 관중석이다. 상대 공격때 심판이 “스트라이크”를 외치면 선수들은 “그거야, 그거”라고 소리쳤다. 선풍기 하나 돌아가지 않는 더그아웃은 늘 찜질방처럼 후끈 달아올라 있다.

2시간 만에 경기가 끝났다. 박종훈 2군 감독은 “곧바로 훈련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선수들의 얼굴이 붉은 감자처럼 익었는데 강행군은 계속됐다. 그러나 불평은 단 한마디도 없었다.

박감독은 말했다. “힘든 과정을 극복해야 1군에 가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 체력·기술·정신력, 이 3박자를 모두 갖춰야 2군에서 ‘하산’할 수 있다”고.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오후 4시쯤 훈련이 끝났다. 샤워를 마친 선수들이 세탁실로 왔다. 노란 바구니에 빨래를 구분해 담는 그들. 2군 안에서도 1·2군이 있다. 2군의 2군은 매일 직접 빨래를 해야 한다. 고단한 빨래도 내일의 주전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준비운동이다.

오후 6시 저녁식사 시간. 모처럼 소고기 반찬이 나왔다. 고기를 열심히 굽는데 주방장 아저씨가 나와서 한마디했다.

지난 27일 이천 두산 2군경기장 기록실에서 김강률과 정진수가 기록을 하고 있다. 김강률은 경기후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며 동료들과 오순도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일과를 마친 선수는 가방을 챙겨 숙소로 들어가고 있다. |두산베어스 제공


“현수는 훈련도 무섭게 했지만, 밥도 두세그릇씩 뚝딱 해치웠어. 밥이 보약이거든. 잘 먹고 체력을 쌓아야 현수처럼 1군으로 갈 수 있는 거야.”

최근 1군 주전으로 자리잡은 김현수 얘기였다. 아저씨의 말이 떨어지자 갑자기 젓가락 경쟁이 붙었다. 저마다 “나도 밥 잘먹고 현수형처럼 1군에 올라갈거야”라면서. 그리고 언젠가는 내가 1군 무대의 주인공이 될거라고 다짐하면서.

〈이천|임현주기자 korear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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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os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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