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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29일자 경향신문 기사 입니다.

LG톱타자 이대형 도루1위 질주… ‘대도’ 노리는 슈퍼소닉
 ‘슈퍼소닉.’ 프로야구 LG의 날쌘돌이 이대형(24)의 별명이다.

바람, 총알보다 빠른 초음속으로 다이아몬드를 휘저어 시즌 중반 도루 1위를 질주 중인 그를 지난 27일 잠실구장에서 만났다. 팔다리에 빨갛고 파랗게 터지고 멍든 자국. 이대형은 “영광의 상처”라며 환하게 웃었다. 매일 슬라이딩에 다치고 찢어져도, 일단 1루에 나가기만 하면 “그라운드를 훔치고 싶은 욕망이 솟아오른다”는 이대형.

프로 데뷔 후 5년 만에 붙박이 주전 톱타자로 발돋움해 3할 방망이를 휘두르고 있는 그는 올 시즌 LG 신바람 상승세의 당당한 선봉이다.

#꼬마 육상선수, 야구에 눈 뜨다

100m를 11초에 주파하는 이대형은 어린 시절 육상선수였다. 달리기라면 누구보다 자신있어 초등학교때 육상대회에는 빠짐없이 출전했다. 그러던 어느날 TV로 야구 생중계를 보다 한 선수에게 시선이 꽂혔다. 해태 타이거즈 이종범이었다. 바람처럼 달리고 짜릿한 안타를 뽑아내는 플레이에 11살 꼬마는 마음을 뺏겼다.

“야구가 정말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제가 살던 충남 대천에는 야구부 있는 초등학교가 없는 게 문제였어요.”

매일 밤낮으로 부모님을 붙잡고 광주로 전학보내달라고 떼를 썼다. “그렇게 원한다면 조금만 기다려보라”고 했던 아버지가 어느날 광주로 근무지를 옮겼다. 5학년때였다. 대천에는 왼손잡이 글러브가 없어 제대로 야구 한번 못했는데 광주에는 없는 게 없었다.

#고교 4학년, 투수를 포기하다

중·고교때 이대형은 투수였다. 그런데 변변한 성적을 못 냈다. 1·2학년때 선배들에게 밀려 벤치만 지키다 3학년이 됐는데도 신통찮긴 마찬가지였다. 그대로 졸업하면 ‘갈 곳이 없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1년 더 다녔다.

“막다른 골목길에 다다른 기분이었어요. 고민 끝에 ‘빠른 발을 살려야겠다’고 마음먹고 투수를 포기했어요.”

투수 대신 중견수로 자리잡으면 적어도 프로 2군에는 들어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야구를 다시 시작했다. 투수때는 선배 그늘에 가려 제대로 못 뛰었는데 중견수가 되니 매일 훈련하며 빠짐없이 경기에 나갈 수 있었다. 실력도 늘고 자신감도 얻었다. 중견수가 되고나서 처음으로 전국대회 우승을 맛봤다. 그리고 LG로부터 2차 지명을 받았다. 유급을 하면서 잃은 것보다 얻은 게 더 많았다.

#소심한 O형, 김재박 감독을 만나다

혈액형이 O형인데 지독히 내성적이다. 미니홈피에 비방 글이 올라오면 크게 상처를 받았고 결국 홈피를 없앴다. 소심한 성격을 감추려고 겉으로 잘 웃고 소탈한 척했다. 그러다가 김재박 감독을 만났다. 김감독은 이대형에게 “전쟁터에서 총들고 웃는 사람은 없다”며 “투수와의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강한 눈빛으로 승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감독은 전지훈련 중에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대형에게 육두문자를 큰 소리로 외쳐보라고 시켰다. 이대형은 김감독의 마음을 읽었다.

“이젠 나름대로 카리스마를 갖게 됐어요(웃음). 그라운드에서 집중력이 더 높아진 것 같습니다. 전보다 방망이도 더 잘 터지고요.”

#프로 5년차, 도루왕 향해 ‘훔친다’

이대형은 ‘듀라셀’ 배터리 광고 속 주인공 ‘토끼’를 닮았다. 빠른 발과 지칠줄 모르는 체력은 둘째가라면 서럽다. 이대형의 배터리 충전은 어머니가 지어주신 가물치 보약이다. 매일 아침·저녁 가물치를 먹고 힘을 낸다.

28일 현재 도루 25개를 성공해 이 부문 단독 1위를 달리고 있는 이대형의 ‘올 시즌 최고’ 도전 뒤에는 숱한 상처가 가려져 있다. 중견수가 되고나서 지금까지 한번도 새 살이 돋아본 적 없는 오른쪽 무릎. 슬라이딩하다 까진 팔·다리 상처는 이제 감각을 잃었다. 그래도 좋다. 몸이 부러지고 으스러지지 않는 한 계속 베이스를 훔치고 싶단다. 얼마전에는 베이징 올림픽 국가대표 예비 엔트리에 뽑히는 기쁨도 누렸다.

“국가대표가 됐으니 더욱 열심히 뛰어야죠. 도루왕이 되는 게 목표예요. 타율도 3할대를 유지하면 더 좋겠지요. 물론 부상 없이 주전을 지키는 건 기본이고요.”

〈글 임현주·사진 김문석기자 korearu@kyunghyang.com〉

■이대형은

▲생년월일=1983년 7월19일

▲체격=1m84·78㎏

▲학력=광주 서림초-무등중-광주일고

▲2003년 LG 입단

▲수상=대통령배·청룡기·황금사자기 도루왕(2002년)

▲올시즌(2007년) 성적(27일 현재)=타율 3할(13위), 70안타(공동 6위), 38득점(공동 4위), 25도루(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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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전화 25년史 함께 한 내 번호, 뿌듯해요”

 임현주기자 korearu@kyunghyang.com  
ㆍ카폰부터 휴대전화까지 011의 200 국번 쓰는 공동석씨


 
자유로운 번호이동으로 ‘010’ 식별번호 사용자가 70%를 넘는 요즘. 이동전화가 처음 탄생했던 날부터 지금까지 25년간 그 번호 그대로 사용해온 사람이 있다.

카폰부터 휴대전화까지 011의 200국번을 쓰고 있는 순덕철강 대표이사 공동석씨(61). 올해로 창립 25주년을 맞은 SK텔레콤과 역사를 같이한 사람이다.

1984년 이동통신회선이 많지 않던 시절. 공씨는 법인명의로 카폰 4대를 신청해 어렵게 2대를 개통받던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당시 카폰 회선이 전체 2000개밖에 없었기 때문에 추첨을 통해 번호를 받았다. 로또 당첨된 것처럼 운좋게 카폰을 개통했다.”

서울 용두동 본사에서 최근 기자와 만난 공씨는 손바닥보다 작은 휴대폰을 보며 “격세지감(隔世之感)”이라고 말했다.

공씨는 “카폰을 달고 차 뒤쪽에 1m 안테나를 세우고 다니면 교통경찰도 항상 경례를 했다”면서 “나보다 운전기사가 더 뿌듯하다며 어깨를 들썩이고 다녔다”고 회상했다.

당시 카폰을 장만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기계 값만 290만원이었고 가입비는 200만원 가까이 냈다. 그때 그 돈이면 포니 한 대를 살 수 있었던 금액이다. 통신요금은 좀 비싼가. 전화 한 통화당 요금이 1000원을 넘었다. 그 시절 직장인들 한 달 임금이 6만~7만원 정도 했으니 카폰 통화량이 조금만 늘어나면 일반 직장인들 월급을 통신비로 내는 셈이었다.

카폰에 얽힌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다. 94년 10월21일 아침. 성수대교를 건너 출근을 해야 하는데 “대교가 붕괴됐다”며 진입을 차단해 동호대교로 돌아서 회사에 늦게 도착했다. 그날따라 카폰을 끄고 출근했던 공씨는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직원들이 “집에서 전화가 수십통쯤 걸려왔다”고 전했다. 공씨가 집으로 전화를 걸어 “여보세요”라는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부인이 수화기를 붙잡고 펑펑 울었다. 공씨는 “집사람이 사고 소식을 듣고 카폰으로 전화를 했는데 계속 연결이 안돼서 사고를 당한 줄 알았다”면서 “그 뒤로 카폰을 휴대전화로 바꿨다”고 말했다.

공씨는 지금까지 휴대전화 단말기는 3번 바꿨다. 그는 “통화나 문자 외에 복잡한 기능은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기계를 오래 쓴다”면서 지금은 공짜폰이 되어버린 삼성 애니콜 구형 모델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처음 휴대전화로 문자 보내는 것은 공씨에게 너무나도 어려운 숙제였다. 삐삐처럼 누르고 녹음하는 단순한 기능이면 얼마나 좋으련만. 문자를 보내기 위해 타자 키보드 연습하는 것처럼 부단히 노력했다.

그랬던 그가 요즘은 두 며느리와 수시로 문자를 주고 받느라 정신이 없다.

정부에서 휴대전화 번호를 010으로 통합하게 되면 가장 아쉬움이 남는 사람은 공씨다. 25년간 정들었던 번호를 바꿔야 한다면 그 기분은 어떨까.

공씨는 “세월이 변하면 모든 것이 바뀌게 마련이니까, 그렇게 생각한다”면서 “아쉬움은 남겠지만 바꿔야 하면 또 거기에 맞춰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임현주기자 korear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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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청앞 광장에 울려퍼지는 상록수가 끝내 많은 이들의 가슴을 적셨지요.
29일은 바보 노무현 전 대통령님을 떠나보내는 수많은 인파들로 세종로-태평로를 가득 메웠습니다.
광화문 방송통신위원회 기자실(13층)에서 노 전 대통령님이 떠나가시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양희은씨가 부르는 '상록수'가 끝내 많은 사람들의 눈 시울을 붉게 만들었지요.
가사 한마디 한마디가 어쩌면 그분의 '바보 철학'과도 같은지.
살아 생전 즐겨 부르셨다는 그 노래가, 그렇게 깊은 뜻을 갖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부디 하늘에서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상록수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비바람 맞고 눈보라쳐도
온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
서럽고 쓰리던 지난 날들도
다시는 다시는 오지 말라고
땀흘리리라 깨우치리라
거치른 들판에 솔잎 되리라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흘리니
우리 나갈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흘리니
우리 나갈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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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7대 불가사의 쿠푸왕 피라미드. 이집트 카이로 기자에 위치해 있다. 6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집트에는 현재(2009년) 95개의 피라미드가 남아있는데 현존하는 피라미드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이집트는 '무덤 문화'로 사후의 세계를 중시했다. 4500년전 만들어진 쿠푸왕 피라미드는 20년에 걸쳐 만들어 졌으며 높이 137m로 석회암 260만개가 쌓여있다.
매년 6월에서 9월까지 나일강이 범람하기 때문에 물이 닿으면 더 단단하게 굳는 석회함으로 만들었다고. 쿠푸왕 피라미드를 만드는데 동원된 인원은 약 15-20만명.
피라미드를 초정밀레이더로 측정했을 때 수평(피라미드 오차)가 0.02%로 나타나 현대 과학의 기술로는 절대 만들 수 없다고.




9세기경 칼리프 알마문이 국가적 재정난으로 쿠푸왕 피라미드 내부를 고개하기 위해 입구를 찾았는데 망치로 두드리다 균열이 많이 났고, 1303년부터 1349년까지 대지진으로 일부 석회암이 떨어져나갔다.
돌 1개당 평균 높이 1m 무게 2.5톤인데 나일강이 범람할 때마다 땜목을 이용해 돌을 옮겨왔다고. 피라미드가 완성된 다음에는 위에서부터 외장석을 발랐다.
 


쿠푸왕 파리미드 뒤에는 쿠푸왕의 아들 카프라 피라미드가 있다.



쿠푸왕 피라미드 및 3대 피라미드를 관람하는 입장료는 60파운드, 카프라 피라미드 내부 관람료는 30파운드이다. 피라미드 내부는 다락방을 올라가는 것처럼 좁은 통로와 계단으로 한참 오르락 내리락 해야하고, 안에는 진품인지 의심스러운 무덤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져 있기 때문에 비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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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를 가다...  (4) 2009.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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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월에 혼자서 이집트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7박 8일동안 호텔팩으로 러시아에서 이집트로 날아가 나일강 크루즈를 하면서 룩소르, 아스완 등 대 도시들을 둘러봤던 기억이 선하네요. 위에 사진은 이집트에서 나일강 크루즈를 할 때 같은 유람선을 이용했던 멤버들어이었어요. ^^ ;; 동양인은 저 하나였는데. ^^

이제 몇시간 자면 이집트 카이로로 떠납니다. 중동지역 취재를 가는데 이집트에서 1박을 하게 됐어요.
6년만에 가는 이집트. 감회가 참 새로울 것 같아요. 카이로에서 피라미드를 보고 '오랜만이야'라고 말해주고 와야하나? ㅋ

이집트- 요르단-두바이를 다녀옵니다. 먼 길을 떠나는데 가슴이 참 설레는군요.
학생시절에는 '전 세계를 내 무대로 가슴에 품겠다'는 큰 꿈이 있었는데, 그래서 방학이면 여기 저기 여행도 다니면서 견문을 넓혔는데, 막상 직장생활하면서는 다니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여기는 관광도시 '후르가다'의 파피루스 상점이에요. 제 왼쪽에는 체코 할머니, 오른쪽에는 이집트 상인들과 체코 할머니의 이웃 주민 '마르낀'네 가족입니다. 외로운 여행길에 우연히 대화를 나누게 됐던 할머니. ^^ ;; 손녀딸이 '바비'라고 부르길래 저도 '바비'라고 부르면서 같이 시장도 가고,  상점도 다녔던 기억이 나네요.

사람의 마음의 문을 여는데 '언어'는 그리 큰 장벽이 되지 않다는 것을 느꼈던 여행이지요. 할머니는 '체코어'를, 저는 '러시아어'를  사용했지만 서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데 큰 지장이 없었거든요. ^^



이 사진은 맨 위에 사진에 있는 팀들과 유람선 안에서 이집트 게임을 즐기던 장면입니다. ^^;; 그때는 디카가 없어서 필름 카메라로 러시아 사람들에게 부탁했던 기억이 나네요. 이집트 전통의상이 예뻐보여서 기념으로 장만했었는데, 지금은 어디 있는지 기억도 안나요. 옛 추억을 떠올려보니 카이로로 날아가는 13시간이 그리 긴 시간이 될 것 같진 않네요. 

일주일 후 '업데이트' 할게요!  그때까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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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모스크바 아르바뜨에 위치한 푸쉬킨 부부 동상)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말라...."


누구나 한번쯤 어디선가 들어봤던 시의 한 구절이죠. 이 시를 쓴 작가가 러시아 18세기의 대 문호가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쉬킨 입니다.


사진에 보이는 동상은 푸쉬킨과 그의 아내 나탈리아입니다.

푸쉬킨은 아내와 17살 차이가 났습니다. 두 사람은 결혼 후 신혼 살림을 모스크바 시내 중심에 있는 아르바뜨 거리에 차리게 됐죠.

(몇년 전 롯데백화점이 모스크바에 지점을 낸 곳과 가까운 자리에 있어요.)


푸쉬킨의 아내는 당시 'Miss Moscow'로 불릴 정도로 빼어난 미모를 자랑했습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러시아 상류층 사회에서도 유명했으니까요.

서른 네살쯤 장가를 갔던 푸쉬킨은 아내를 정말 사랑했습니다.


두 사람은 아르바뜨에서 6개월 정도 신혼생활을 즐기다 이사를 갔어요.

언제부턴가 모스크바 상류층 모임에서는 "나탈리아가 푸쉬킨 누이 남편과 자주 만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실상은 이러했지요.


글쓰기에 여념이 없었던 푸쉬킨이 집을 비운 사이에 푸쉬킨 누이 남편이 나탈리아에게 흑심을 품고 계속 푸쉬킨 집을 드나들었고, 그런 행동들이 소문의 발단이 된 것입니다.


몇년 후. 푸쉬킨은 누이 남편에게 결투 신청을 받습니다.

"당신의 아내를 사랑하니 총으로 결투를 해서 진 사람이 깨끗이 물러납시다."


2주일간 고민끝에 푸쉬키는 그 결투를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결국 결투에서 총을 맞은 뒤 시름시름 앓다가 38세라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게 되지요.


러시아 국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푸쉬킨'입니다.

농노 계급사회 시절, 지배계층을 위한 글이 아닌 서민과 농민들을 위한 글을 썼던 작가였으니까요.

그들의 정서를 이해하고, 존중하고. 사회적 시대적 배경의 모순들을 짚어줬던 푸쉬킨.

그래서 지금까지 러시아 사람들은 푸쉬킨을 그리워한답니다.


푸쉬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읽으면, 푸쉬킨의 삶이 그려집니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글을 썼던 그의 마음이 전해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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Если жизнь тебя обманет...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푸쉬킨

Если жизнь тебя обманет,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Не печалься, не сердись!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В день уныния смирись:
슬픈 날엔 참고 견디라

День веселья, верь, настанет.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

Сердце в будущем живет;
마음은 미래를 바라느니

Настоящее уныло:
현재는 한 없이 우울한 것

Все мгновенно, все пройдет;
모든 것 하염 없이 사라지나

Что пройдет, то будет мило.
지나가 버린 것 그리움 되리니





                              (사진설명: 모스크바 국립 미술관 '뜨레찌야코프스카야 갈레리야'에 있는 푸쉬킨 초상화 입니다. 푸쉬킨이 생전에 가장 좋아했던 초상화였죠. 당시 이탈리아에서 유학했던 끼프린스키가 그린 작품입니다. 푸쉬킨의 외할아버지는 흑인이었습니다. 그래서 머리가 곱슬이었지요. 그림 오른쪽에 하프를 연주하는 인형은 푸쉬킨이 글을 쓸 때마다 영감을 받았던 물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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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러시아 크렘린 궁전 앞에 '알렉산드르 공원 Александровский Сад )

러시아의 황금연휴가 시작됐네요.
러시아에서는  5월의 기념일 (마이스끼 쁘라즈닉 Майский праздник)이라고 부르죠.
5월 1,2일은 노동절이고 9일은 전승기념일이어서 보통 1일부터 9일까지 풀~ 로 쉽니다.
어떻게 가능하나고요? 러시아는 주5일 근무제를 철저히 지키기 때문에 5월 2일이 토요일이면
그 날을 4일(월요일)로 옮겨서 쉽니다. 5월 9일 전승 기념일도 9일(토)이니까 8일로 앞당겨서 쉬고요. 중간에 5,6,7일은 4월 마지막주와 5월 셋째주 토요일에 나눠서 미리 일하거나 공부하고 그 한주간을
쉬는 곳이 많습니다. 정말 살기 좋은 나라죠? ^^;;

러시아의 5월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러시아에도 4계절은 다 있는데 겨울이 6개월, 봄 1개월, 여름 3개월, 가을 2개월쯤 되거든요.
3월까지 긴 겨울을 이겨내면 4월쯤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들이 녹으면서 땅의 식물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하죠. 5월부터는 숲이 무성해지고, 서울보다 더 따뜻한 날씨로 바뀝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러시아에 여름이 없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러시아의 여름은 영상 30도 이상 올라갈 정도로 정말 더워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2000년도 이후 러시아 에어컨 시장에서 빛을 본 이유도 이같은 계절적인 영향이 많이 작용했습니다.
상대적으로 겨울이 길고 여름이 짧은데 에어컨을 장만할까 싶은데, 러시아의 여름은 최고 40도까지
올라가는 경우가 있어서 정말 에어컨 없이는 견딜수가 없을 정도랍니다
그래도 러시아 여름이 한국보다 견딜만한 것은 곳곳에 나무가 많고,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줍니다. 한국처럼 습하지 않아 끈적끈적함이 덜하죠.

아~ , 5월의 황금연휴를 모스크바에서 즐기지 못해 참 아쉽네요.

5월부터 9월까지 모스크바에는 넘쳐나는 유럽 관광객들 때문에 정말 빈 방 하나 잡기가 힘듭니다.
러시아의 여름은 유럽인들도 감탄하고 돌아갈만큼 아름답거든요. ^^;;

모스크바, 상트 페테르부르그(구, 레닌그라드) 등 유럽에 위치한 러시아 수도의 건축양식은 그야말로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답니다.

위 사진에 보이는 공원은 알렉산드르 공원이에요. 모스크바 크렘린 궁전 앞에 있는 곳인데 오른쪽으로 보이는 붉은 탑이 크렘린 20개 망루 중 하나고요, 그 밑에 무명용사들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과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이 있습니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에 대해서는 전승기념일 앞두고 자세히 말씀드릴게요.

제작년에 일본 오사카 성을 가봤더니 성 주변에 다리로 연결되어 있고, 그 밑에 연못인지 강이 흐르게 되어있더라고요. 크렘린도 마찬가지 입니다. 11세기 크렘린의 역사가 시작되면서 수많은 전쟁을 치르다보니 성벽으로 연결되는 다리 밑에는 강이 흐르게 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물이 흐르던 터를 공원으로 만든 것이고요.
사진 왼쪽으로는 모스크바 지하백화점이 있어요. 가끔 백화점에서 스바로 피자를 먹던 기억이 나네요.

러시아는 지금 '휴가중'인데, 우리는 근로자의 날(1일)도 근무하는 사람이 많았고, 석가탄신일(2일)도 토요일이라 그냥 여느 주말과 다름없이 보내는 사람들이 제법 많던데. 참 아쉽죠?. 우리도 러시아처럼 주말과 겹친 기념일을 주말 전후로 하루 이틀씩 당기고 늦춰서 더 쉬면 좋을텐데. ^^

그래도 여러분은 저보다 덜 우울하실겁니다.
저는 근로자도, 어린이, 어버이도 아니어서 3일(일) 딱 하루 쉬고 계속 근무거든요. --;;

그럼 행복한 '황금연휴' 잘 마무리 하시고!!!
곧 있을 러시아의 '전승기념일'을 앞두고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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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연을 시작으로 한국이 우주서 큰 꿈 펼치길”
 바이코누르 | 임현주기자
ㆍ소유스 발사 지켜본 세계 첫 여성우주인

8일 우주선 소유스호 발사 1분 전. 우주 발사대에서 1.5㎞가량 떨어진 관람대에는 이소연씨의 성공적 임무 수행을 응원하는 한 선배 우주인이 있었다.

세계 최초 여성 우주인 발렌티나 테레시코바(가운데)와 첫 우주 유영에 성공한 알렉세이 레오노프(오른쪽)가 8일 소유스 우주선 발사 직후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경향신문 임현주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세계 최초의 여성 우주인 발렌티나 테레시코바(72). 그는 발사 30분 전부터 발사 관람대 2층 옥상에 올라 소유스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는 기자에게 “우주선이 참 잘 생겼죠”라며 “전망대 위에 서면 항상 처음 우주로 떠났을 때처럼 가슴이 뛴다”면서 미소를 지었다.

바이코누르 우주기지는 그가 1963년 6월16일 여성 최초로 우주여행에 성공했던 곳. 그는 바이코누르에서 1년에 두 번 우주발사가 있는 날이면 빠뜨리지 않고 찾는다고 말했다. 관람대에서 가장 높은 VIP 자리는 항상 그의 차지. 그는 “발사의 감격과 흥분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이라서 누구에게도 이 자리만은 양보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주선이 강한 굉음과 불꽃을 내뿜으며 하늘로 치솟은 뒤 우주선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는 “소연이를 몇번 만나봤는데 가능성이 많은 사람 같았다”며 “소연이를 시작으로 한국이 우주에서 큰 꿈을 펼치길 바란다”고 말했다.

“45년 전 당신은 ‘조종사’ 자격으로 우주에 갔지만 이씨는 ‘연구원’ 신분으로 우주에 가는데 자격이 다르지 않느냐”고 묻자 “전문적인 지식의 깊이에는 차이가 좀 있을 수 있겠지만 우주에서 임무수행을 마치는 것은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굳이 차이점이 있다면 “유리 가가린이나 내가 지구로 귀환했을 때는 70㎞ 상공에서 낙하산으로 내려왔지만 지금은 귀환 모듈로 더 안전하게 내려오는 것뿐”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구 소련 시절 흐루시초프의 홍보계획의 일환으로 러시아 세번째 우주인과 결혼해 최초의 우주인 부부가 됐다. 그는 “죽기 전에 화성에 꼭 한 번 가보고 싶다”면서 “설령 돌아오지 못해도 좋다”고 말했다.

테레시코바 옆에는 65년 세계 최초로 우주 유영에 성공했던 레오노프도 함께 했다. 비행 중이던 우주선 안을 나와 우주공간에서 20분간 유영했던 레오노프는 소유스호가 하늘로 치솟자 큰소리로 “성공”이라며 어린애처럼 환호했다.

〈 바이코누르 | 임현주기자 〉

 2008년 4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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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박 9일간의 여정, 생생 러시아 현지 취재기

경향신문 임현주 기자는 지난 4월 6일부터 14일까지 러시아 현지에서 이소연씨의 우주여행을 밀착 취재했다. 이소연씨 어머니 정금순씨와 아버지 이길수씨를 비롯해 세계 최초의 여성 우주인 발렌티나 테레시코바와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편집자 주)


인천 공항에서 만난 이소연씨 부모님
유리 가가린 이 후 47년
12년 전 모스크바 레닌대로에서 처음 봤던 세계 최초 유인 우주인 유리 가가린 동상을 잊을 수가 없다. 순수 티타늄으로 만든 30m 동상에는 러시아인의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가가린 동상 옆에는 조그마한 공 모양이 눈에 띈다. 1961년 4월 12일 우주에서 지구를 보니 지구가 축구공만 하게 작아 보였다는 가가린의 메시지다.

유리 가가린이 우주 시대를 열고 47년 만에 한국 최초 우주인 이소연씨(30)가 우주로 갔다. 우주에 머무는 동안 18가지 과학 실험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대한민국에 본격적인 우주 시대를 열기 위해 첫 스타트를 끊은 이소연씨. 아시아 두 번째 여성 우주인이자 한국 최초 우주인 이소연씨가 우주로 향하는 모습을 현장에서 보기 위해 8박 9일간 긴 여정을 시작했다.


인천공항에서 만난 이소연씨 가족
지난 4월 6일 인천공항. 출국 준비를 하는 이소연씨 부모님을 만날 수 있었다. 어머니 정금순씨(57)는 “그동안 딸 걱정 하느라 신경 많이 써서 병원에서 링거를 맞고 떠나는 중”이라며 피곤한 모습을 내비쳤다. 아버지 이길수씨(58)가 딸에게 바라는 점은 “무엇보다 몸 건강히 살아서 돌아오는 것”이라고 했다. 어린아이를 물가에 혼자 내놓는 것처럼 근심에 가득 찬 표정이었다.

7일 모스크바 남쪽 브누코바 제3공항. 전세기 티케팅을 기다리면서 이소연씨 남동생 이기백씨(25·카이스트 박사 1년)와 잠시 대화를 나눴다. “어려서부터 ‘은하철도 999’ 그림을 그려서 방에 붙여놓던 큰누나가 우주로 향한 꿈을 이루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어서 기쁘다”며 “남들보다 강인한 체력이 뒷받침되니까 모든 임무를 잘 마치고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제가 워낙 허약 체질이라 네 살 때부터 태권도를 했어요. 근데 큰누나는 통통한 게 콤플렉스였나 봐요. 일반인보다 과근육체질이라고 하던데, 사실 누나는 체중을 좀 줄이고 싶어서 운동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해도 잘 안 되니까 그때부턴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운동을 하더라고요(웃음). 자연히 건강 체질이 됐죠."


발사 직전, 가족들의 긴장
모스크바에서 3시간쯤 남동쪽으로 이동하니 카자흐스탄 영토 내에 바이코누르 우주기지가 나왔다. 기온은 영상 15~18도를 웃돌았다. 끝없이 펼쳐진 대지. 기내 안에서 창밖을 보니 서부영화의 배경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바이코누르는 ‘갈색 대지’라는 의미다.

코프모나프트(우주인) 호텔에서 열린 이소연씨 기자회견. 그는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바이러스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유리벽 사이로 마이크를 이용해 인터뷰를 가졌다.

이소연씨 어머니 정금순씨의 편지
“방에서 편안하게 책 읽다가 내려왔어요. 아직 믿기지가 않아요. 혼자 우주로 가는 게 아니라 남·북한 모든 국민의 눈과 함께 간다고 생각합니다. 한 달 전 갑자기 우주인이 교체되는 바람에 우주에서 바를 로션도 못 챙겼어요. 가족 사진, 친구 사진 그리고 가가린센터에서 함께 고생한 사람들의 사진을 챙겼어요. 러시아 우주인들을 위한 깜짝 선물도 몰래 준비했어요. 우주인들 아들 딸 사진이에요. 최근에 모스크바 근교에서 훈련받으면서 가족들도 함께 와서 휴식을 취했거든요. 그때 제 카메라로 사진을 담아서 인화했죠. 저는 열흘 후면 돌아오지만 세르게이 볼코프나 알렉 코노넨코는 6개월 더 머무르다 오잖아요.”

8일 바이코누르 우주 발사대. 한국 첫 우주인 탄생을 지켜보기 위한 인파가 몰려들었다. 이소연씨는 소유즈 TMA-12호 발사 전에 한 번 더 건강 상태를 점검받았고, 우주 멀미약도 챙겼다. 발사 후 48시간 동안 지구를 34바퀴 도는 과정에서 우주 멀미가 심하면 세르게이 볼코프가 멀미 주사를 놓아주기로 했다. 여성의 생리 현상을 방지하는 억제약도 먹었다. 이제 우주선 발사만 남았다.

이소연씨 가족들과 교육과학기술부 박종구 차관은 VIP 발사 전망대로 갔고, 기자단과 관람객들은 일반 전망대로 이동했다. 원활한 취재를 위해 박 차관에게 부탁해 VIP 전망대로 이동했다.

이소연씨 아버지는 “소연이가 중학교 입학했을 때 수학여행을 보내던 기분”이라면서 “잘 돌아오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로켓이 발사되면 그 밑에 불구덩이도 같이 하늘로 오르는 게 걱정된다”며 기도했다.


세계 최초 여성 우주인 발렌티나 테레시코바의 기도
세계 최초 여성 우주인 러시아 발렌티나 테레시코바와의 인터뷰는 아무리 시도해도 ‘불가능’이란 회신만 돌아왔다. VIP 전망대를 뒤졌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 때 러시아 방송국 카메라맨이 “레오노프다!”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1965년 세계 최초로 우주를 20분간 유영한 레오노프. 그는 전망대 왼쪽 2층 건물 베란다에서 외신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재빨리 건물 안으로 들어가 계단을 올랐다. 베란다에서는 우주선 발사대가 정면으로 보였다. 오른쪽 철 계단 끝에 검은색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갈색 머리의 발렌티나 테레시코바(72)가 소유즈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45년 전에 나는 조종사 자격으로 우주에 갔지만 이소연씨는 연구를 하러 가죠. 하지만 우주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해요. 내가 만나본 이소연씨는 이해력이 뛰어났고, 인품도 훌륭한 친구였어요. 소연씨라면 우주에서 맡은 18가지 실험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올 것입니다. 이제 한국 우주 항공 역사에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거예요. 저는 항상 우주선 발사대 앞에 서면 가슴이 설레요. 소유즈를 한번 보세요. 정말 아름답지 않나요? 우주에서 71시간 50분을 보내고 지구로 귀환할 때 낙하산을 타고 내려왔어요. 넓은 호수가 보이는데 ‘우주에서도 살아온 내가 호수에 빠져 죽는 건 아닌가’하고 걱정했죠. 다행히 무사히 귀환을 마칠 수 있었는데, 우주에 가면 누구나 저처럼 긴장되는 순간이 있어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만 대처하면 사고 없이 돌아올 수 있습니다. 이소연씨도 잘해낼 것입니다.”

모스크바 레닌대로,유리 가가린 동상
테레시코바는 발사 10분 전부터 이소연씨를 위해 기도를 시작했다. 러시아는 미국과 달리 발사 전에 카운트를 하지 않고 정시에 발사한다. 순간 건물이 흔들렸고, 공항 주변에서 들리는 비행기 소음을 100배쯤 압축시킨 것 같은 굉음이 들렸다. 테레시코바는 “소연씨, 놀라지 말고 꽉 잡아”라고 외쳤다.

10일, 모스크바 북쪽 MCC 임무통제센터에서 소유즈선과 ISS(국제정거장) 도킹을 기다렸다. 러시아 관계자들은 “모든 것이 계획대로 잘 진행되고 있다”고 자신했다. 이소연씨가 해치를 열고 환하게 웃는 표정으로 ISS에 들어가는 모습은 신비로웠다. 이소연씨는 밝고 씩씩하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12일 러시아 ‘우주인의 날’을 맞아 모스크바 외곽에 있는 가가린 훈련센터도 들렀다. 그곳에서 만난 교수, 우주인 관계자들은 “이소연은 적극적이고, 남을 배려할 줄 알고, 친화력이 좋다”고 입을 모았다. 19일 귀환 이후 이소연씨는 항공우주연구원에 선임연구원 자격으로 한국 항공우주산업 분야의 일을 하게 된다. 이소연씨의 우주 방문을 계기로 한국 항공우주산업에 발전이 있기를 기대해본다.


1 우주에서의 24시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생활하는 우주인의 하루는 미 항공우주국(NASA)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영국 시간(그리니치 표준시)에 따라 움직인다. 지구 주변을 90분마다 한 번 돌기 때문에 하루에 낮과 밤이 16번 반복된다. 생체 시계가 고장 날 수밖에 없어 잠잘 때는 눈가리개와 귀마개가 필수다. 귀마개는 우주선 내 70데시벨(dB) 이상의 기계 소음을 차단하기 위함이다. 수면에 방해를 주는 소음은 40dB 이상이다. 중력이 작용하지 않아 코골이가 사라진다는 점도 특이하다. 코골이는 누워서 잘 경우 혀가 중력에 의해 기도 쪽으로 밀려들어가면서 일어나는 증상이기 때문이다.

우주인은 통상 오전 6시 시설 점검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식사 시간은 6시 40분 정도. 볼일은 진공청소기처럼 생긴 화장실을 이용한다. 남녀 공용이다. 소변은 고무호스처럼 생긴 튜브를 사용하고, 대변은 좌변기에 나 있는 직경 10cm의 구멍에 정확히 맞춰야 한다. 배설물이 무중력 환경에서 둥둥 떠다니면 난감한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이소연씨는 우주로 떠나기 전, 이 같은 시설을 이용해 대소변을 해결하는 훈련을 꾸준히 받아왔다.
점심시간은 대개 12시부터 1시 사이다. 좁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만큼 하루 한 시간씩 운동은 필수다. 사이클 운동기구를 사용하거나 우주용 역기를 들기도 한다. 역기는 중력을 느낄 수 있도록 특수 제작됐다. 운동을 마치고 샤워할 때는 그저 수건에 물을 묻혀 닦는 수준이다. 하루를 마감하는 잠자리는 오후 9시 반부터이며 벽에 고정된 침낭으로 만족해야 한다.


2 우주에서 겪을 법한 병들
이소연씨가 우주에 머무는 시간은 12일에 불과해 심각한 후유증은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장기간 우주에서 생활할 땐 우주 불면증, 골다공증, 피부 노화, 부종(부어오름)의 네 가지 증상을 감내해야 한다.

우주 골다공증의 원인은 무중력 때문이다. 우주선 내에선 지구 중력에 맞서 몸을 일으키거나 걷는 데 필요한 근육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근력이 약해진다. 뼈의 골밀도가 감소해 골다공증의 진행 속도가 빨라진다. 한 달가량 우주에서 생활하면 1% 정도 낮아진다. 우주정류장에서 1년 이상 지냈던 우주비행사가 지구로 귀환한 뒤 한동안 누워 있거나 휠체어 신세를 지는 이유다. 무중력 상태에서는 척추의 뼈와 뼈 사이 연골, 팔다리의 관절이 늘어나 키가 4cm 이상 커질 수 있지만 근육과 신경이 함께 늘어나지는 않는다. 이소연씨도 하루 만에 키가 3cm 늘었다.

피부가 나빠질 가능성도 있다. 우주는 피부 건강에 관한 한 최악의 환경이다. 지구에서는 공기 중 산소 비율이 20%(나머지는 질소)에 불과하지만 우주복 안은 100% 산소로 채워진다. 이때 과잉 생산된 활성(유해)산소가 정상 피부세포에 손상을 주어 피부 노화를 촉진한다. 우주 부종도 나타난다. 지구에선 하반신 쪽으로 피가 몰리지만 우주에서는 머리 쪽에 피가 쏠려 얼굴은 늘 퉁퉁 부은 상태다.

글 / 임현주 기자(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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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MBC 드라마 '내조의 여왕'  촬영장에서 카메오로 출연한 표도르 에밀리아넨코를 만났다. 모든 스텝들이 박수치고,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쉬가 터지자 표도르는 상당히 긴장한 것 같았다.

"Федор ! Скажите пожалуиста что ни-будь."
"표도르! 한말씀만 해주세요"라는 첫 마디에 "무슨 말을 해줄까요?"라며
미소지었던 표도르.  ^^;;





내조의 여왕의 오지호(달수 역)와 멋진 연기를 마무리한 표도르. 다음번 방한 때는 꼭 한번 단독 인터뷰 해주겠다는 약속 지켜주시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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